지난 11일 아직 눈도 못 뜨고 탯줄도 안 떨어진, 갓 태어난 새끼고양이가 비닐봉지에 싸여 버리진 것이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의 한 회원에 의해 발견했다. 새끼고양이는 온몸에 구더기가 가득한 채 비에 흠뻑 젖어 힘없이 울며 애타게 어미를 찾고 있었다.
인간의 잔인함과, 우리 사회의 생명경시 풍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인간의 아이도 변기나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리는 세상에, 그깟 고양이 새끼 한 마리 버린 것이 뭐가 어때서?"갓난아기의 유기는 대개 준비되지 않은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거의 패닉 상태라 할 수 있는 어찌 할 줄 모르는 두려움과 좌절감 속에서 저질러진다. 그러나 동물에 대한 이러한 잔악행위는 명백히 고의에 의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한 잔인함이 사회적으로 제어되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각해보라. 그 잔인성은 다양하게 발휘되고 발전하겠지만, 그 극단의 결과는 연쇄살인범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잔인한 학대의 대상이 동물이든 사람이든 그것은 약하고 방어할 능력이 없는 상대적 약자에게 저지르는 비열한 행위라는 점에서, 인간으로서 수치스럽고 무서운 죄악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생명존중 의식에 기반을 둔 교육과 법을 통해, 우리들은 스스로를 이런 잔인한 행위로부터 분리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사람들의 주변에서 맴돌며 살아가고 또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인 개나 고양이, 이들은 사람들의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한편 사람을 대신해 잔혹한 학대, 심지어는 살인 예행연습의 손쉬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개나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정서적인 문제가 생긴 사람들 중에, 남의 고통에 무감하거나 즐기며, 나아가 살인의 예행연습으로 개나 고양이를 죽이고 고문하고 학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반대로 동물들에 대한 사랑과 보호의 실천은 이런 악성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백신과 같은 치료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경찰청 근무 시절부터 강력범죄 예방에 힘 써온 김병준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신의 저서 <신종범죄론>(조선대 출판부)과 <가정폭력범죄론>(법문사, 2004년)에서 "동물 학대는 소년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초기에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폭력, 문제 아동들이 버림받은 동물을 돌보면서 책임감과 생명에 대한 존중을 일깨우는 PAL(People and Animals Learning) 프로그램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하루 동안 새엄마의 젖을 빨아보기는 했지만...
비닐봉지에 싸여 버려진 새끼고양이는 다행히 그 다음날 수소문 끝에 바로 당일 출산한 다른 어미 고양이의 젖을 빨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단 하루,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이렇게 마무리되고 마는구나 생각했는데, 이날(12일) 더욱 놀라운 일이 발견되었다. 제2의 장소는 비닐봉지가 발견된 장소 바로 곁에 있는 하수구였다.
못 박힌 고양이들이 발견되었던 바로 그 동네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새끼고양이가 왜 하수구에 빠져 있었을까? 눈도 못 뜨고 탯줄도 안 떨어진 새끼고양이들…. 보통의 어미 고양이는 이런 새끼들 곁을 절대 떠나지 않는다. 새끼들도 아직 앞을 못 보는 이 시기에는 스스로 기어 나오는 법이 없으며, 온기를 찾아 어미의 품에 기어들게 마련이다. 어미도 새끼들의 우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들을 정성을 다해 보살핀다.
어미 고양이는 어디에 있으며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누가 비닐봉지에 갓 낳은 새끼고양이들을 싸서 버렸을까? 이 녀석은 살아보겠다고 비닐봉지에서 기어 나오다 불운하게도 하수구에 빠진 걸까?
아니면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누군가가 살아있는 새끼고양이를 하수구에 버린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기지만, 그래도 확실한 건 분명 인간의 손을 탔다는 것이다. 앞도 안 보이는 새끼고양이가 스스로 비닐봉지 속으로 들어가 인적이 드문 길거리로 걸어 나오진 않았을 테니까.
비닐봉지에 쌓여 그 억수같이 오는 비를 맞으며, 죽어라 어미의 온기를 찾았을 새끼고양이. 비록 자신을 낳아준 어미는 아니지만, 죽기 전에 수유묘(授乳猫)의 젖이라도 빨아본 고양이는 그래도 하수구 속 형제 녀석보다는 행복하게 죽었다고 해야 할까?
참고로 이곳은 서울 송파구, 몇 년 전 이마나 허리에 못 박힌 고양이들 사건으로 떠들썩했던 바로 그곳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을 찾지는 못했다. 단지 우연의 일치일 뿐일까? 이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는 이 지역 일대에 "동물을 불법 포획하여 학대하거나 죽이는 행위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경고문 부착을 추진할 계획이다.
고양이 불태워 죽여도 겨우 벌금 20만 원?
지난 6월 4일, 경북 의성에서는 살아있는 고양이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여 화형시켜 죽이는 엽기적인 일이 발생했다. 최근에 대구지검 의성지청 관련 검사와 판사는 이 사건의 피의자 송아무개씨에게 겨우 벌금 20만 원을 부과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겨우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부끄러운 동물학대 금지 법안이 17년간 유지되다가, 간신히 500만 원 이하로 개정되어 200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개정 후 동물학대에 대한 첫 번째 처벌이 기껏 20만 원이라는 선례로 남는다면, 앞으로도 동물학대를 방지하는 일은 여전히 험난할 것이다.
이에 대해 김병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우리나라 사법부나 관리들이 동물보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선진국도 처음부터 동물학대에 대한 벌금이나 처벌 수위가 높았던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 나라의 동물보호단체나 시민단체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고, 우리도 그렇게 노력해주셔야 한다. 가정폭력 방지의 대상도 1차가 부인, 2차가 아동, 그리고 3차가 동물이다. 이제 확산되기 시작하는 '동물도 가족'이란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더 확고해질 수 있도록 시민단체들의 더 많은 캠페인이 필요하다."누가 새끼고양이들에게 몹쓸 짓을 했는지 알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고양이에게 타정총을 쏜 사이코도 아직 잡아내지 못하였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개들에 대한 공공연한 학대조차 죄가 아니라 하고, 고양이를 화형시킨 잔악 행위에 대해 겨우 20만 원 벌금을 내림으로써, 하수구 고양이나 못 박힌 고양이들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하거나 방조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사건을 고발했던
동물보호협회(대구 소재)는 이번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예정이라며, 처벌 수위가 강력해지도록 많은 시민들이
전국검찰청(사건번호 제2009 000326호)과
대구지방검찰청 의성지청에 민원을 요청해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이번 판결을 내린 검사와 판사는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는 비단 동물뿐 아니라 사람들의 안전과 평화를 도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김효진 기자는 동물보호시민단체 KARA에서 발행하는 동물보호 무크지 <숨>의 편집인으로서 자원봉사하고 있습니다. <숨> 1집 <인권을 넘어 생명권으로>에서는 동물권과 생명권에 대한 개론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동물실험, 생명공학, 축산, 모피산업, 동물원, 보양식 문화 등의 현실을 두루 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반려동물 문제를 더 깊이 있게 다룬 <숨> 2집 <반려동물, 그 아름답고도 오랜 우정>(blog.naver.com/mz_soom)을 출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