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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거리에 유난히 고집스런 한 사람을 알고 있다. 처음엔 취재원으로 만났다가 지금은 그의 고집에 매료돼 '절친'이 됐다. 외식프랜차이즈 교육시스템구축 전문가라는 다소 긴 직함을 가졌던 그가 직접 외식업에 뛰어든 지 1년. 이론가였던 그가 실전을 치러보겠다고 했을 때 주위서는 '외식업계 허구연'이 되는 게 아니냐며 우려했다. 그런 걱정에 아랑곳 않고 뚜벅뚜벅 고집스레 제 길을 갔다. 그의 1년 궤적을 뒤적여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고집이 주는 유익을 찾아본다. 

 

외식업 종사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공부하는 '푸드포럼'이 열린 지난해 봄. 포럼의 좌장인 조태민 씨가 날벼락(?) 같은 선언을 했다. 외식업 창업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현장감이 없는 이론은 사상누각이라며.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이라며 주변을 진정시켰다. 프랜차이즈 본부 교육시스템 구축에 전문성이 있던 그였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사실 기대보단 우려가 많았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천성과 고집을 잘 알기에 그랬다.

 

창업 종목을 유기농쌈밥집으로 정했다고 했다. 외식업 본연의 임무는 안전한 먹을거리와 맛을 유통시키는 것이란 취지에서라고 설명했다. 장소는 기존에 식당을 하다가 망한 자리를 선택했다. 다양한 포석이 있었지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대로 유통하면 상권이 되살아날 것을 믿었다. 그래야 그동안 배우고 가르쳤던 이론이 검증되기 때문이었다.  

 

 

"안전한 먹을거리 유통은 외식업 본연의 임무"

 

지난해 우리나라 유기농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성장했다. 유기농신시, 초록마을, 더자연 등이 친환경 유기농산물 시장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풀무원, CJ 등 대기업도 무섭게 시장을 점유하기 시작했다. 유기농 시장이 확대된다는 것은 식당으로서도 반길 일이다. 소비자 입맛이 자연스레 변하고 업체 간 경쟁이 붙으면 쌈 채소와 친환경 제품 가격 인하요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유기농신시, 현재는 무공이네와 계약을 맺고 쌈 채소를 비롯해 식자재를 공급받고 있다. 일반 채소보다 가격이 비싼 것은 물론 보관 기간도 짧아 빨리 팔아야 하는 등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선도 유지를 위해 쌈 채소전용냉장고를 구입하는 등 추가 설비투자 비용이 발생했지만 아랑곳 않았다.

 

비싼 유기농 쌈 채소지만 한번 손님에게 제공된 것은 재활용하지 않고 손님이 원할 경우 싸준다. 어떤 날은 무공이네서부터 달팽이 식구가 쌈 채소에 매달려 이사(?)를 와서는 손님들에게 인기를 독차지하곤 한다. 유기농 채소임을 달팽이 가족이 보증하는 셈이다. 

 

그의 식당 운영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고객과의 세 가지 약속인 동시에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한 작은 외식기업의 이념이다. 첫 째는 철저한 국산 식자재 사용, 두 번째는 신선식품 사용, 세 번째는 유기농, 친환경 농산물 사용을 확대해 나간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주방엔 조미료 통 같은 것이 보이질 않는다. 그의 일상은 화학조미료와 식품첨가제와의 전쟁이다. 어찌 보면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추구한다.

 

국산식자재 사용・유기농 식단에 대한 고집

 

된장에 살짝 버무린 배추나물을 보자. 통배추는 무공이네서 공급받은 친환경 유기농에다가 된장은 우리밀과 우리 콩으로 만든 것이다. 호박나물에 들어가는 지에프국간장은 원료가 100% 국산 콩이다. 이들 반찬류에는 일체 화학조미료를 쓰지 않는다. 단, 수입산 콩으로 만든 식용유나 참기름 등은 불가피하단 점은 손님들에게 알린다. 

 

"메뉴 정보를 공개하는 이유는 긴장하기 위함입니다. 기본 식자재는 국내산 또는 친환경제품을 쓰고 있지만 조미료, 식용유 같은 부식자재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 공개를 통해서 저희들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가령 수입산 콩으로 만드는 식용유라든지 식당용 참기름은 지금 당장 바꾸기 힘들지만 앞으로 바꿔야할 식자재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원산지표시제가 강화되고 있는 추세를 그는 반기고 있다. 재료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유기농 쌈 채소・일반채소, DMZ철원 오대쌀, 제주산흑돼지, 충청도식 국내산김치 등 대부분 식재료의 '근본'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유기농샤브샤브가 메인요리로 알려진 이 식당에서 최근 '냉소바국수'라는 이름이 쉽지 않은 메뉴를 선보였다. 소바는 교맥(蕎麥)으로 부르는 메밀로 만든 일본 면 요리다. 국물 맛을 내기위해선 조미료를 피할 수 없을 듯 하지만 그간 준비과정을 들춰보니 '고집'이란 양념으로 맛을 냈으리라 짐작된다.

 

천연재료육수 냉소바국수 선봬...맛은 각자의 몫!

 

일본식 소바 육수에는 가다랑어포와 다시마 등 천연재료 외에 대부분 혼다시라는 조미료가 들어간다. 그는 혼다시를 대신할 맛을 찾기 위해 서울에 있는 유명 소바집을 문지방이 닳도록 다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 전 기자와 함께 강남역 인근 일본식 소바집 '오무라안'에서 저녁을 먹은 것도 그 일환이었던 것이다.  

 

정통 일본식은 너무 짜고 우리식이란 미명하에 된장국 맛을 낸 것은 소바 본연의 취지를 무색케 하는 듯 해 여러 날을 고민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가다랑어포와 국산 콩 100%로 만든 진간장, 다시마, 양파, 파, 배 등 천연재료만으로 육수를 만들었다. 물론 수많은 재료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었다. 소바면은 봉평농협에서 나온 우리밀과 메밀가루로 만든 것을 썼다. 일반 면에 비해 2~3배 가격차가 난다. 면발에는 거무튀튀한 메밀 껍데기가 마치 그의 고집처럼 달라붙어 있다. 

 

그래선지 정교하고 깔끔한 맛보다는 무겁고 투박한 맛과 향이 느껴졌다. 혀끝을 묵직하게 감돌아오는 육수 맛이 비교적 깊다. 개인적으로 가볍고 정교한 맛보다 좋았다.(음식 맛은 주관적이다!) 특히 고추냉이까지 전북 임실산 천연이라서 한 그릇의 '자연'을 먹는 셈이다. 여기에 딸려 나오는 흙돼지 메밀만두 3개는 국수의 허기 2%를 채우기 안성맞춤이다.

 

이 식당 이름은 '수다(手多)'다. '손이 많이 가는 정성스러운 음식'이라는 뜻과 '집에서 식사하듯  편하게 수다를 떨며 즐기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그래선지 중년 여성 손님이 많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인근 홈플러스매장 5층에 있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문을 닫는다. 손님이 들고 날 때 마다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주인 조 대표다.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조태민 대표

조 대표는 남다른 이력을 가졌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S대 사학과를 나왔다. 무얼할까 고민하다가 서비스업에 몸담기로 결심하고 일을 찾던 중 호텔리어가 눈에 띄었다.

 

특급호텔인 A호텔에 입사해 연회장 서빙을 담당하는 식음료사업부에 자원했다. 호텔 측은 고급인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부려먹기(?) 위해 관리부서로 옮기고자 했으나 본인의 고사로 번번이 실패했다.

 

여러 차례 협박과 회유를 하다 지친 호텔 측이 인사권을 발동, 관리부서로 발령을 내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지고 또 다른 A호텔로 옮겼다.

 

현장 내공과 이론적 배경이 어느 정도 쌓였다고 판단된 어느 날 외식컨설팅을 시작했다. 푸드링크, 푸드로넷 등의 대표를 지냈고 외식 프랜차이즈 교육시스템 구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 입지가 탄탄해서 컨설팅 의뢰도 제법 많았고 '공부하는 전문가'로 알려지면서 강의도 쇄도했다.  

 

한편으론 일본 프랜차이즈에 관심이 많아 매년 한 무리의 벤치마킹단을 이끌고 현장을 누볐다. 특히 골목 상권을 파악하기 위해 발품 팔아서 일본 뒷골목을 샅샅이 누비기로 유명하다. 개인 생계형 창업자들을 위해 항상 고민한다. 요즘도 한 가정을 살리는 생계형 창업자 메뉴개발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희망제작소 착한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외식창업자들을 대상으로 멘토링도 한다./유성호기자          


태그:#수다, #유기농쌈밥, #식탁안전, #조태민, #냉소바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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