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던진 '선거제도 개편' 제안이 정치권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의 정치선진화 방안을 총력지원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청와대발 정치개혁이 달갑지만은 않은 분위기다. 제1야당인 민주당도 "원론적인 검토"를 말하며 일단 받아들였지만, 정국 주도권을 잃을까 걱정하고 있다.
청와대 "여당 손해보더라도 할일 꼭 해야"... 박희태 "선거구제 개편만은 아니다"
16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여의도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대통령 광복절 경축사에서 정치권에 관련된 것은 정치선진화와 지방행정기구개편 두 가지"라며 "한나라당은 총력지원체제를 갖추고 강력한 뒷받침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박 대표는 활동이 부진했던 정치선진화특위를 재가동하고, 국회 정치개혁특위와 지방행정체제개혁특위 활동시한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정치선진화의 요체'로 지적한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현행 소선거구제를 대폭 손질하게 되면 불가피하게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18대 국회에서 영남지역 의석수는 67석으로 호남지역 31석의 두 배가 넘는다. 만약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1개 선거구에서 2명 이상 국회의원 선출)로 바꾼다면 영남에서 민주당이 약진하게 돼 한나라당과 비슷한 의석수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의 영남 패권주의가 한꺼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이를 우려한 듯 박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의 경축사가 꼭 선거구제 개편을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또 "(이 대통령은) 너무 잦은 선거로 인한 폐단을 말씀하신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했다.
그는 "선거의 시기 등 논의 과정에서 선거구제 개정이 필요하다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장 선거구제 개편으로 논의가 모아지는 점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이 대통령의 제안대로 끌려간다면, 당장 여당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질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강력한 정치제도 개혁 의지를 거듭 표명한 것도 박 대표에게는 부담이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의 뜻은 여당이 손해를 보더라도 할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청와대가 여당의 뜻과는 상관없이 정치제도 개혁을 밀어붙일 수도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 '여야 대표회담' 제안, 민주당 '시큰둥'
박 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이 제안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 대표회담을 제안했다. 당장은 이 대통령의 제안을 뒷받침하겠다는 뜻으로도 보이지만, 여야를 떠나 여의도의 생각을 모아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명박식 정치개혁'이 아니라 '여의도식 정치개혁'을 해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정세균 대표도 청와대 대통령 면담에서 (선거제도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고, 국민들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서 신속하게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당이 신중한 입장을 취하는 가운데, 야당도 나름대로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다. 민주당은 일단 박 대표가 제안한 여야 대표회담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날 "박 대표가 제안한다고 해서 다 받을 것은 아니다"라며 "최고위원회를 통해 당의 입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 입장에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를 피할 이유는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참여정부 시절 중대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미디어법 투쟁' 한가운데 이 대통령이 선거제도 개편 제안을 던진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지난 7월 17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제안한 개헌과 더불어 또 하나의 국면전환용 포석이 아니냐는 것이다.
우상호 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행정구역 개편, 선거구 제도 개편 등 대한민국의 국정에서 큰 줄기를 바꾸는 제도를 야당의 등원을 촉구하려는 목적에서 제안한 것이라면 한심한 발상"이라고 경계했다.
이어 그는 "이 대통령의 (선거제도 개편) 주장과 무관하게 언론법 날치기 처리에서 파생된 지금의 국면은 한나라당이 먼저 풀어야 한다는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면서 "이 대통령의 제안이 진지한 것이라면 언론법 국면 해법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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