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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남자들은 모두가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대한 아들이 6주간의 신병교육과정을 마치고 자대인 00연대 수색중대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지난 8월 14일 7시경에 받았다. 그야 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다들 가는 군대 가지고 뭘 만감이 교차 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군대 가기 싫어하는 아이를 입대시키다 보니 행여 무슨 불상사나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것이 사실이고, 수십 년 전 나도 사병제대를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견디기 힘들다는 신병교육대 6주간의 교육을 무사히 마쳤다니 그럴 수밖에....

6주 만에 들어보는 아들의 목소리가 너무 반갑다. 별다른 어려움을 격어보지 않았고, 허우대만 크지 철부지에 여린 성격이라 걱정을 많이 했기 때문에 행여 울먹이거나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는데 제법 자신감과 절도 있는 목소리다.

"아빠! 나 자대 도착했어!"
"응 그래! 괜찮니? 아픈데 없고?"
"으응 괜찮아! 지금 막 도착했어요. 아픈데도 없어."
"그래 혼자 간 거니. 동기 몇 명이랑 갔어?" 하고 물었더니
"우리 동기 나포함 5명 같이 왔어요." 동기 네 명이랑 같이 갔다니 다행이다 싶다.
"그래 동기들이랑 같이 가서 좋겠구나. 휴가나 면회는 언제 된다니?"
"인제 왔는데 아직 모르지!~~이 "
등등  약 3분간의 통화를 하다  "으응 나 끊어야 돼" 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배치 받은 부대를 확인해 보니 우리나라에서 가장 위도가 높은 한반도 동쪽의 최전방 비무장지대에 근무할 수색중대에 배치된 것 같다. 군에 입대를 시킬 때만 해도 너무 나약하니까 군대 가서 고생을 좀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보냈지만 막상 최전선 비무장지대에 배치되었다고 하니 너무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모 마음은 다 그럴 것이다.

그리고 나서 한 3일이 지난 후 엄마한테 다시 전화를 한 모양이다. 최전방이라서 생필품 구입하기가 불편하다며 이것저것 구입해서 우체국 택배로 보내달라고 하였단다.
"보급품 나오는 것이면 충분 할 텐데?" 하면서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고 말았다.

월요일 출근을 하는데 아들한테 보낼 것이라며 쇼핑백을 내미는데 목록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편지지, 우표, 목욕수건, 손톱깍기, 세면수건, 사진, 카드 등등은 충분히 이해를 하겠다. 그런데 빡빡머리에 샴푸가 왜 필요한지? 이해가 안 된다. 하지만 여기까진 이해를 하자. 군대에 가서 최전방에 있으니 하고.

아들한테 보낼 위문품(?) 신병교육 끝나고 자대배치 받은 아들이 보내달라한 수건. 편지지. 봉투 등등이 마치 연말에 국군장병한테 보내는 위문품 같다.
▲ 아들한테 보낼 위문품(?) 신병교육 끝나고 자대배치 받은 아들이 보내달라한 수건. 편지지. 봉투 등등이 마치 연말에 국군장병한테 보내는 위문품 같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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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몰라도 담배를 사서 보내 달라고 했다는 것이 나를 더 놀라게 한다.
"담배? 부모한테 담배를 사서 보내달라고?" 하고 물었더니 아내는 내 성격을 아는지라
"처음이니까 그냥 보내줍시다" 한다.

평상시에 담배를 잘 안 피우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더구나 부모한테 담배를 보내 달라고 하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부모한테 담배를?" 하고 톤이 올라가자. 딸아이가 거든다.
"담배를 잘 안 피웠는데 민간인도 없는 전방에 처음 가서 심난하고 하니까 담배나 피우려고 그런 거 같으니 그냥 보내주세요"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부모한테 담배를 사 보내 달라 해? 너무 철없는 거 아냐?"
다시 한 번 역정을 냈지만 별 수 없다. 못이기는 척하고, 마치 2~3십 년 전 연말이면, 국군장병 위문품 자루에 비누 치약 등을 넣었던 것처럼 택배 박스에 담배 열 갑을 함께 넣어서 포장을 했다.

아들 위문품 포장완료 아들이 보내달라고 한 물건들을 포장 완료했다...이대로 최전방에 있는 아들에게 전달 되길 바란다.
▲ 아들 위문품 포장완료 아들이 보내달라고 한 물건들을 포장 완료했다...이대로 최전방에 있는 아들에게 전달 되길 바란다.
ⓒ 양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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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머리에 꽂혀있는 조그만 영한사전도 한 권 넣으며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사전을 하루에 석 장씩만 뜯어서 한 번만이라도 읽어보고 버려라. 그러면 900페이지니 100일이 지나면 사전은 없어지고 새로운 단어 100개는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담배는 아빠도 끊은지 4년이 다 되가는데 가능한 피지 않은 것이 좋을 것 같다" 하고. 나도 별수 없다.

이것이 다 자식 군대에 보낸 죄(?)아니 죄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강한육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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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의 역할에 공감하는 바 있어 오랜 공직 생활 동안의 경험으로 고착화 된 생각에서 탈피한 시민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진솔하게 그려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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