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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발사되는 나로호(KSLV-I)이 발사대에 장가되어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다.
▲ 나로호 19일 오후 발사되는 나로호(KSLV-I)이 발사대에 장가되어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다.
ⓒ 한국항공우주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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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기술 도입 '험난', 로켓 내부 들여다 볼 수도 없어

19일 오후 발사되는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I, Korea Space Launch Vehicle-I)는 길이가 33m, 직경 3m, 중량은 140톤에 달하는 중형 2단 발사체로 액체 연료를 사용하는 1단 로켓은 러시아 '흐루니셰프사'가 제작한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RD-151로 불리는 이 로켓은 지금까지 한 차례도 발사된 적이 없는 신형로켓이다.

나로호의 총 개발비 5025억 원 중에 절반이 러시아에서 이 로켓을 사오는 데 쓰였다. 숱한 발사를 통해 이미 검증된 로켓도 많은데 하필 발사 한번 해보지 않은 러시아 로켓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우주발사체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기술"이라며 미국, 일본, 유럽 등이 우리나라로 기술이전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실 인공위성을 궤도 위에 올리는데 쓰이는 로켓이나 핵탄두 혹은 고폭약 탄두를 적국에 떨어뜨리는 데 사용하는 미사일은 기술에 차이가 거의 없다. 현재까지 지구상의 모든 우주발사체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소유즈, 코스모스, 사이클론, 드네프르, 미국의 아틀라스, 타이탄, 델타, 중국의 장정을 비롯하여 지난 4월 북한이 발사한 은하 2호 등 수많은 우주발사체는 탄도미사일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이처럼 우주발사체와 탄도미사일은 기술 면에서 매우 유사해 상호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우주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이전이 제한되는 대표적인 '이중용도 전략기술'로 분류된다. 이는 우리나라의 우주발사체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큰 장애물이 돼 왔다. 사실 우주미사일 발사체로 전용이 가능한 한국의 미사일 개발사는 미국으로부터 최소한의 기술을 제공 받는 대신 주권을 포기한 굴욕의 역사다. 1979년 정부가 미사일의 사정거리를 180㎞로 제한한 '한-미 미사일 양해각서'에 서명한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의 미사일 주권을 속박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이 개발하는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계기를 제공한 것은 1998년 8월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였다. 당시 북한은 사거리 1500~2200㎞급의 대포동 1호를 시험 발사함으로써 대북 억지력 차원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한 한국의 명분을 강화시켰던 것이다.

당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사정거리 300㎞, 탄두중량 500kg까지의 미사일 개발을 허용하는 '미사일 기술 통제체제' (MTCR, Missile Technology Control Regime)였다. 1987년 미국 주도로 창설된 MTCR은 제3세계 국가의 핵 및 생화학무기 운송수단 개발을 막기 위해 회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미사일 관련 기술과 장비의 수출 및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95년부터 미국을 상대로 미사일 각서 폐지와 MTCR 가입 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고, 2001년 3월 MTCR의 3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MTCR에 가입하면서 외국의 부품과 기술 도입의 길이 열린다. MTCR은 비가입 국가에 대해서는 기술의 확산을 억제하지만, 가입국 사이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기술을 이전하거나 부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의 로켓 기술 협력은 2001년 2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해 한국의 우주개발에 참여하겠다고 밝히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해 5월 당시 유희열 과학기술부 차관은 러시아 항공우주청장과 기술협력약정서 체결 의향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러시아로부터 우주발사체 기술을 들여오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당초 정부는 2004년 러시아와 개발협약을 맺을 때 1단 로켓 기술 전체를 이전받기로 했지만 이후 러시아의 요구로 우주관련 기술이전을 금지하는 우주기술보안협정(TSA)을 2006년 체결한다. 우리 연구원이 러시아 개발현장에 참여할 수도 없고, 우리나라에 인도한 1단 로켓 내부를 들여다볼 수도 없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배경에 한국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우려해 러시아 발사체 기술의 한국 이전에 반대하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다고 보고 있다. 엄청난 돈을 쓰고도 러시아에 끌려 다닌다는 비판을 받은 것에는 이런 속사정이 숨어 있는 것이다.

[북한] 이집트에서 미사일 2기 받아 독자 개발 계기 마련

최대 사거리 70Km의 프로그-7(FROG, Free Rocket Over Ground)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비유도식 로켓이다.
▲ 구 소련제 프로그-7 로켓 최대 사거리 70Km의 프로그-7(FROG, Free Rocket Over Ground)은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비유도식 로켓이다.
ⓒ globalsecur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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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북한의 우주발사체도 구소련의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지난 60년대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설립된 국방대학에서 미사일 개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60년대 후반 소련으로부터 '프로그-7' 로켓을 도입한 북한은 이 로켓을 분해했다가 다시 역조립하는 방법으로 초보적인 로켓 제조 기술을 습득한다. 당시 북한은 사정거리가 더 긴 '스커드' 미사일을 공급받기 원했지만 소련은 이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경에는 북한 기술진이 중국에 가서 최대 사거리 600Km급의 '동펑 DF-61' 탄도 미사일 개발에 공동으로 참여한다.

1970년대 이집트는 소련으로부터 제3국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스커드 B'미사일을 도입하지만, 곧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수리용 부속품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다. 난관에 처한 이집트는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던 북한에 지원을 요청했고, 북한과 이집트는 1979~1980년 전술 탄도 미사일에 관한 정보와 기술을 교환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1980년 1월 이집트의 무바라크 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과 면담을 했고, 84년에 이집트는 소련과 한 약속을 어기고 '스커드 B' 미사일 2기를 북한에 제공한다. 우리 정보당국에서는 이것이 북한이 독자적으로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은 1981년 발발한 이란-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발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당시 범아랍권의 지지를 받던 이라크에 대해 이란은 국제적인 고립을 면치 못했고, 탄도 미사일을 간절하게 필요로 했던 이란은 북한에 접근했다. 양국은 1983년 탄도 미사일 개발에 대한 상호협정을 체결한다. 이란이 자금을 대고 북한이 설계와 연구를 맡아 추진한 탄도 미사일 개발은 소련제 '스커드 B'를 모방한 '화성' 미사일로 결실을 맺는다.

1988년 북한은 이 미사일 100여 기를 이란에 수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로도 탄도 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한 북한은 사거리 500km급의 '노동 2호'(스커드 C 개량형, 노동과 대포동 등 북한의 미사일 명칭은 미국 정보당국이 붙인 것이다)를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한다.

1984년 이집트로부터 구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입수한 북한은 탄도 미사일 개발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 스커드-B 미사일 1984년 이집트로부터 구 소련제 스커드-B 미사일을 입수한 북한은 탄도 미사일 개발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 globalsecurit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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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이란의 미사일 기술교류를 추적해온 러시아 중동연구소의 '블라디미르 사진' 선임연구원은 올 2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최근 등장한 북한 미사일(은하 2호)은 10여 년간 이란 중국 파키스탄의 미사일 기술이 혼합된 '다국적 미사일'"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노동 2호 미사일을 수입해 '샤히브 3'이라고 이름만 바꾸었던 이란이 미사일을 우주로 쏘아 올리는 데 필요한 고체연료 주입 기술과 3단계 추진체 기술을 중국과 파키스탄으로부터 각각 도입해 미사일 개발에 전기를 마련했고, 이 기술을 다시 북한이 역수입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5일 발사한 '은하 2호'가 비록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는데 실패했지만 북한은 세계 수준의 우주발사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켓 전문가들은 북한의 은하2호가 1970년대 중국이 처음으로 175kg급 위성발사에 성공한 80톤급 액체추진 로켓 수준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나로호의 성공적 발사는 국제사회에 우리나라의 항공우주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러시아의 원천기술을 이용한 우주발사체 개발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북한이 우리보다 한수 위인 것으로 보인다.


태그:#우주발사체, #나로호, #광명성 2호, #KSL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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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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