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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신문 보며 눈물 펑펑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신문을 펼쳐들었다.

신문은 한 정치인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고인의 인생을 반추하고 추모객과 각계의 반응을 전하는 내용이지만, 눈물이 고이더니 신문의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자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은 자동차 시세와 부동산 정보를 보고 있었고, 옆에 앉은 사람은 휴대폰으로 고스톱을 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서러워서 더 눈물이 났다.

 

처음에는 눈물을 흘리다가 혹시 바보 같이 보일까봐 주위 눈치를 살폈지만, 오늘만큼은 내 마음껏 울고 싶은 마음에 소리도 내서 울었다.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상관없다. 오늘은 슬픈 날이니까.

 

대통령이 돌아간 것은 슬픈 일이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도 비통함은 컸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죽음에 이르러서는 나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슬픔에 눈물이 쏟아졌다.

 

작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나는 아버지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뒤늦게 깨달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들의 아버지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아버지들의 아버지다.

나의 아버지가 어부로 살았으니 어부의 비유를 들겠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부의 땀과 꿈을 실은 만선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만선을 실은 바다다.

요즘 일본에서 건너 온 노무라입깃해파리가 남해안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며 만선의 꿈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만선의 꿈이 날아간 바다에서는 울기라도 할 수 있지만,

지금은 눈물을 쏟아낼 바다가 없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 중에서

 

나는 영웅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대인

 

 "김대중 씨가 죽고 나면 한국인들은 그때 가서야 그에게 정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도쿄 특파원을 지낸 언론인 버나드 크리셔씨가 남긴 말이다. 과연 우리는 영웅을 영웅으로 대접하지 못하는 당대의 소시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퇴임 이후 오로지 남북화해만을 위해서 대북특사로 가겠다고 간절히 요구했을 때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며 의지를 꺾은 것은 우리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고인을 위해서 꼭 남기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간절히 원했을 때도 말을 꺼낼 수조차 없게 한 것도 우리들이다. 이명박이 아니라 우리들이다.

 

나는 내가 한 일, 우리가 한 일, 사태가 여기까지 오도록 했던 일을 알고 있다. 그것을 기록할 것이다. 기록을 하는 것은 스스로를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매래에 부끄러움을 전이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이미 과거와 현재에게 충분히 부끄러럽다.

 

한 달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분향소에 갈 수는 없고, 2009년에 일어난 일들을 차곡차곡 챙겨두었다가 머리가 깨면 분명히 보여줄 것이다. 2009년에는 시민들이 무능해서 애꿎은 영웅이 죽고 간악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이 영광을 차지했다고. 그리고 미래의 그 날에 간악하고 탐욕스럽다는 것이 '상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싸울 것이다.

 

이 마음을 담아 얼굴 없는 시민으로서 김대중 대통령 영전에 이 추도사를 바친다.

 

나는 야당도 아니고, 여당도 아니라며 정치와 관계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그것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태도인 양 점잔을 뺀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악을 악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선을 선이라고 격려하지 않는 자들이다. 비판을 함으로써 입게 될 손실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기회주의자들이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 저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 일부

덧붙이는 글 | 블로그에도 올렸습니다


태그:#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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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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