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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에 조문에 이어 20일 오후 5시 서울광장을 다시 찾았다. 지하철 전동차가 1호선 시청역에 정차하자 많은 사람들이 하차를 했다. 그리고 서울광장이 있는 5번 출구로 나갔다. 출구로 나가는 길목에는 '고 김대중 전대통령 국장 분향소' 안내판이 서 있었다. 계단을 딛고 나가보니 잔디밭 광장 분향소에는 조문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지하철 입구 프레스센터 방향에는 1개 소대로 보인 전경들이 여름 하복을 입고 줄지어 서 있었다.

 

지난 5월 서거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대한문 분향소의 풍경과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당시엔 전투복 차림 전경들이 완전 무장을 하고 대한문 분향소를 철거하는가 하면, 조문객들을 위협한 전경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전경이라기보다 공권력이라고 해야 옳았을 것 같다. 정말 조문 풍경이 사뭇 달랐다. 차분하게 진행된 조문 행렬을 보니 왜 당시는 서울광장을 불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광장 쪽으로 서너 걸음을 걷자, 땅바닥에 촛불과 함께 진열된 여러 장의 소자보가 보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영정 사진 밑에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류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조직된 힘입니다." 바로 옆 고 김대중 전대통령 영정사진 밑에는 "행동하는 양심, 민주주의 화신"이라는 문구 눈에 띄었다. 이외에도 4대강, 방송법, 용산참사, 서민경제 파탄 등 이명박의 정부의 실정을 폭로한 글도 보였다.

 

이곳을 조금 지나자 '민주전역시민회'와 '민주주화추진협의회' 회원들이 걸어 놓은 플래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근조,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근조, 김대중 대통령님 민주주의로 새롭게 부활하십시오.',  '근조, 김대중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주변에서는 남북화해와 협력을 염원하는 범국민서명운동도 펼쳐지고 있었고, 김대중 전대통령 시민추모위원을 모집하는 부스도 눈에 들어 왔다. 19일에 이어 또다시 조문 행령에 줄을 섰다. 먼저 근조 리본을 받았고, 한참 줄을 따라갔다. 자연스레 생전의 고인의 업적사진을 관람할 수 있었다. 분향소 입구에 도착했을 때 분향소 주최 측 관계자들에게 한 송이 하얀 국화꽃을 받았다.

 

앞 조문행렬이 빠지자, 곧바로 영정 앞에 줄을 섰다. 큰절을 올렸다. 영정을 보니 고 김대중 전대통령이 환하게 웃는 듯했다. 이후 민주당 지도부인 상주들과 잠시 인사를 하고 조문을 마쳤다. 이후 문상을 하고 있는 영정 사진을 배경으로 여러 차례 사진을 촬영했다. 분향소 주변에서는 설치된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다큐멘터리 영상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의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조문을 온 직장 동료도 우연히 만났다.

 

20일자(이날)로 발행한 민주당 당보에는 1924년 1월 태어나면서부터 지난 8월 18일 서거할 때까지의 고 김대중 전대통령의 연보가 게재돼 있었다. 연보 제목처럼 '납치, 투옥, 연금, 사형선고... 그리고 국민대통령 시련 뚫고 피어난 '인동초'의 삶'이었다. 고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압축해 잘 표현하고 있는 듯했다.

 

김대중 대통령 추모의 벽에는 2002년 대통령 퇴임사 중 일부 내용이 사진과 함께 세워져 있었다. 읽어 본 후 가슴이 뭉클해졌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민주주의와 나라의 발전을 그리고 조국통일을 위해서 인생을 바쳤습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6년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수십 년을 망명과 연금감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저는 불의와 타협하는 것은 영원히 죽는 것이고, 죽더라도 타협을 거부하는 것이 영원한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를 믿었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역사는 결코 불의에게 편들지 않습니다. 역사를 믿는 사람에겐 패배가 없습니다. 일생동안 저는 잠시도 쉴새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 휴식이 필요합니다."

 

바로 옆 메모판에는 많은 조문객들이 붙이고 간 조사들이 빼곡히 차 있었다. 그리고 언론악법 원천무효의 정당성을 담은 피켓이 전시됐고 홍보물이 뿌려졌다. 용산참사 관련한 수사기록을 촉구하는 시위와 홍보물도 게시됐다. 늦은 저녁까지 조문 행렬이 계속됐다.

 

늦은 저녁 조문을 마치고 나온 한 여대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와 단독 인터뷰도 가졌다. 그는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이때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주의가 그립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시각 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새긴 노란 풍선이 분향소 주변을 둘러쌌다.

 

이날 김대중 대통령의 추모행사도 열렸다. 무대 단상에 오른 역사학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강연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한 근대사에 대한 내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잔디밭에 앉아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었다.

 

박정희 시대와 10월 유신, 군부의 사형선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 양김 시대 등과 관련해 고 김대중 전대통령을 제대로 알게 한 강연이었다. 새벽(21일) 1시가 넘어 분향소 차양막이 기울어져, 분향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조문객들의 항의가 빗발쳤지만 임시분향소로 대신했고, 새벽 6시경 분향소 복구가 완료돼 조문을 재개했다. 이날 많은 조문객들이 분향소 주변 잔디밭에서 날을 지새웠다.




태그:#고 김대중 전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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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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