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전 세계의 국가들이 오늘날의 금융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 해답으로 제시한 정책은 바로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공적자금으로 현재 위기에 몰려있는 경기를 억지로 부양시키는 것이 하나요.

 

금리를 하락시켜서 시장에 자금의 양을 충분히 풀어놓아서 사람들의 투자심리를 상승시키는 것이 또 하나의 해답이었다.

 

그런데 혹시 알고 있는가? 두 가지의 정책이 모두 소비자들의 수요를 자극시키면서 경기를 부양시키는 정책이지만 경제학의 역사를 놓고 봤을 때, 전자는 케인스가 주장하는 경제정책이었고, 후자는 통화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정책이었다는 사실을…….

 

그렇다 우리는 저자의 말마따나 하나의 악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가지고 시장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개의 악셀과 브레이크를 가지고 불황기에 대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지금의 경제위기를 벗어나는데 사용되는 정책이 누구의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벗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더욱 중요한 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우리는 과거에 태어났던 경제학적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급급해서 '아 그런가보다'라고 사고하기에는 무언가 허전하고 수동적이라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예전에 신문기사를 통해 '신 뉴딜'이라는 경기부양책을 한다는 소리를 들고 한 인터넷 사이트를 방문해 뭣도 모르고 신 뉴딜 정책을 부르짖었다. "대체 '신 뉴딜'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 소린교?"라는 질문에 "경기부양책이잖아요"라는 대책 없는 소리를 내뱉으면서 얼굴이 부끄러워졌던 기억이 난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게 된다면 적어도 예전의 나처럼 신문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 책은 경제학의 역사를 애덤 스미스부터 시작하여, 맬서스, 리카도, 밀, 마르크스, 마셜, 베블런, 갤 브레이스, 케인스, 밀턴 프리드먼, 그리고 그 후의 경제학자들 까지, 지금껏 흘러왔던 살아있는 아디이어를 집중적으로 해부하고 있는 책이다. 

 

다시 한 번 '신 뉴딜'을 들여다보자. 과연 '신 뉴딜'이라는 것이 그 당시의 성공처럼 우리에게도 같은 성공을 안겨다 줄까? 이 책에 등장하는 공공선택학파를 창시한 제임스 뷰캐넌의 이야기와 합리적 기대이론파의 이야기의 일부를 차용해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알게 될 것이다. 성공을 누리는 계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며, '실업률'과 같은 통계수치는 크게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뷰캐넌은 정치와 경제학을 연관성있게 탐구한다. 정치가들은 권력 있고 목소리가 큰 작은 집단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결정하지, 시민들을 위해서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뷰캐넌이 주장하는 이론의 핵심이다. 뷰캐넌은 그 이유를 '합리적 무시'라는 용어로서 설명하는데, 500만 원짜리 이득이 있는 정책을 100명의 집단과 5000명의 시민들을 위해 각각 유치한다고 하면 집단의 이익은 만원이 되고, 시민의 이익은 50원이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것은 집단은 만원의 이익이 얻어지기 때문에 훨씬 목소리를 높이는 결과가 될 것이고, 시민은 50원 따위라고 생각하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정책의 방향이 판가름 난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집단의 이익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정치가들에 흘러들어가는 로비자금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소수의 이익에 경제정책이 움직일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시민단체들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복지 정책을 실행할 것을 추진하지만 그렇게 드는 비용이 전체 시민이 얻는 비용을 제하고 나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힘에 부치게 된다.

 

이를 '신 뉴딜'의 핵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사대강 사업'과 연관시켜본다면 시민들이 그토록 반대하는 사대강을 왜 그렇게 기를 쓰고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기타 다른곳에 쓰일 정부예산을 왜 그쪽으로 당기고 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금융위기로 가장 타격을 입은 업계가 어디일까? 그것은 금융시장과 건설업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중에서 건설업계를 생각해봐야 한다. 아마도 이명박 정부는 토목사업을 통해 건설업계의 경기를 끌어올리면서 얻어지는 수익을 취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물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대강을 정비하겠다는 이야기는 허튼소리이고, 본질은 사대강을 개발하려고 했을 때, 가장 이득을 많이 얻을 수 있는 건설업체들의 목소리에 의해서 사대강을 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개발권 입찰을 두고 벌어지는 로비의 열매를 얻으려는 정치권의 계산 물론 들어가 있다. 과연 이러한 열매가 뉴딜이 추구했던 공공의 이득으로 흘러들어갈까? 천만에, 이 열매는 건설업자와 정치인들의 손에 흘러들어갈 것이다. 국민의 세금이 말이다. 

 

이것은 '미디어법 개정'에 적용 해봐도 역시 마찬가지로 원활하게 작동된다. 따지고 보면 시민들이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대강' 보다는 사실 '미디어법' 이 훨씬 더 먹기 좋은 열매일 수가 있다. 그 이유는 시민들이 '미디어법' 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환산할 수 없을 정도로 추상적이면서 작은 양인 동시에 현물로 손에 쥐어지지는 않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논리에 의하면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합리적 무시'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으면서 인상 깊게 봤던 부분은 공공선택학파의 이야기 이외에도 존 스튜어트 밀의 기회균등을 추구하는 경제학 이론과 왜 광고와 브랜드에 목매는지를 설명하는 구제도학파의 경제학 이론 등이 있었다.

 

또한 마르크스의 잉여자본에 관해서 저자가 이의를 제기하는 경영자의 능력과 발명가들의 창의력으로 벌어들이는 가치가 빠져있다는 견해에 또 다시 이의를 제기해 본다면 지식산업은 마르크스의 이론과 별개에 두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물리학에서도 중력, 전자기력 등을 따로 구분해서 적용하는 것처럼 마르크스의 이론은 산업구조가 고착화되고 기계의 생산라인에 따라서 움직이는 제조업의 근로자들에게만 적용시켜야 하지 않나? 라는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지식인들이 잉여자본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지식인 또한 잉여자본을 창출하지만 지식인들이 받는 보수는 그들이 입고 먹을 수 있는 기초생활금을 뛰어넘는 액수이기 때문에 별 다른 문제가 안 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지음, 류현 옮김, 한순구 감수, 김영사(2009)


태그:#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단예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