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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선생님의 당부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듣는가에 따라 인생길이 달라지기도 한다. 나의 고교시절 한 선생님은 대학진학을 앞두고 한참 고민하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문과의 우수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은 법대요, 상대인데 법대를 가는 학생들이 가장 희망하는 장래 직업은 검판사요, 상대를 진학하는 학생들이 가장 희망하는 직업은 은행원이다. 또 이과의 우수한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대학은 의대로서 장차 의사가 되고자함이다.

 

그런데 검판사란 무엇인가. 피의자의 죄를 추궁하고 그에게 형벌을 정하는 일이 아닌가. 거의 날마다 범죄 피의자를 상대해서 그들의 죄를 밝히자면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은행원이란 뭔가. 고객이 맡긴 돈을 제삼자에게 빌려주고 중간에서 이자나 따먹는 돈놀이꾼이 아닌가. 의사란 직업도 환자를 하루 종일 상대하니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냐?

 

나는 우수하고 유능한 학생이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학과나 인재를 키우는 교육계로 나가기를 당부한다."

  

40여 년 전에 들은 말씀인데도 마치 영구불변의 진리처럼 늘 되새겨졌으며 나 자신도 교단에서 학생들에게 많이 들려준 얘기였다.

 

그는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금판사가 되면 돈을 갈퀴질한다고 늘상 말해 왔다

금판사가 아니라 검판사라고 내가 고쳐 일러 주면

끝내 고집을 꺾지 않고

금판사가 되면 장롱에 금싸라기가 그득그득 쌓일 거라고 부러워했다

 - 김남주 '아버지'중에서

 

그제나 이제나 부모들의 자녀 희망 직업 가운데 1, 2위 순위가 검판사일 것이다. 지난 달 중순 대한민국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 청문회 실황중계를 잠깐 보았다. 야당 의원들이 검찰총장 후보자의 부도덕성을 집중 공격하자 한 여당 의원이 구원 투수로 나섰다.

 

어느 청문회장 풍경

 

여당 의원 : 아들 결혼 때 청첩장도 안 돌렸다는데 사실이냐, 결혼을 어디서 했냐?

후보자 : (청첩장 돌리는 것을) 아들도 원하지 않았고 나도 원하지 않았다. 조그만 교외에서 5월에 했다.

여당 의원 : 정치인들도 자기 지역구에서 결혼을 하면 하객이 수천 명에 이르고, 하객 한사람이 10만원씩 축의금을 내면 얼마냐? 청첩장을 돌렸으면 빚도 갚고 제네시스 승용차도 사고했을 텐데 왜 안 돌렸나. 딱하다.

 

여당 의원은 지난 5월 결혼한 검찰총장 후보자의 아들이 검소한 결혼을 했다는 점을 들어 후보자의 청렴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후보자도 백만 원군을 만난 듯 구겨진 표정도 밝아졌다. 하지만 곧 후보자 아들의 '조그만 교외에서의 결혼'의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다.

 

야당 의원 : 후보자 아드님이 결혼식을 교외에서 했다고 했는데, 워커힐 W호텔 아닙니까?

후보자 : 예, 야외에서 했습니다.

 

워커힐 W 호텔은 서울 광장동에 위치한 최고급 6성 호텔이다. 현직 검사장이요, 검찰총장 후보자의 말 바꾸기는 불과 몇 분 만에 들통이 났다. 나는 그 장면을 보니까 한 소매치기의 금세 들통나는 거짓말 장면이 떠올랐다.

 

소매치기와 검사장이 막상막하인 세태

 

몇 해 전, 한 친척이 혼인잔치를 하면서 나에게 예식장에 오는 손님의 축의금 접수를 부탁하였다. 예식장은 서울 시청 앞 한 호텔 19층이었는데, 신랑이 대기업 경리담당을 맡고 있던 때문인지 손님이 엄청 많았다. 특히 예식이 시작하기 바로 직전에는 몰려드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축의금 봉투를 받고 정리할 틈도 없어서 몇 개 받은 봉투는 탁자 위에 두고 다음 손님의 봉투를 건네받는데, 탁자에 둔 봉투를 누가 얼른 집어 안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봉투가 바뀌어서 그랬다고 했다. 나는 그의 안주머니에 들어가려는 봉투를 모두 꺼내자 모두 다섯 개로 회사에서 단체로 보낸 이름이 적힌 것도 나왔다.

 

내가 봉투를 확인하는 사이에 그는 후다닥 잽싸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졌다. 잠깐 새였지만 하객들이 수군거리자 호텔 경비원이 달려왔고, 경비원은 무전으로 즉각 프런트에다가 연락하였다, 나는 혼인 잔치에 법석을 떠는 것은 좋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축의금을 잃어버리지 않아 무척 다행으로 여기면서 경비원에게 그 선에서 마무리 짓고자 했다. 곧 혼인 예식이 끝나고 계산도 마무리 짓자 호텔 종업원이 나에게 다가와서 잠깐 시간을 내달라고 했다.

 

"오늘에야 전문 치기범을 잡았습니다. 그 자가 소공동 파출소에 있으니 잠깐 가셔서 피해자 상황 설명만 해 주시면 됩니다."

"그냥 보내지 굳이 잡았습니까? 저는 피해 본 것도 없는데요."

"그 자는 전문 상습범이에요. 잠깐이면 됩니다. 그때 상황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그때 나는 학교 수업시간을 뒤로 미루고 외출하였기에 시간이 없었다. 잠깐이면 된다는 말에 종업원을 뒤따라 소공동 파출소로 갔다. 피의자는 수갑이 차인 채 의자에 앉았는데, 40대 중반 정도의 나이로 무척 파리한 얼굴이었다. 파출소 근무자는 호텔 종업원의 말을 듣더니 나에게 본서까지 동행을 요청했다.

 

나는 자꾸만 사건에 빠져드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동행을 거부했더니, 자기들은 조서를 꾸밀 수 없다면서 꼭 본서까지 동행해주셔야 한다고 사정했다. 하는 수 없어서 나는 학교에다가 그곳 사정을 말하고 보강처리를 부탁한 뒤 그들과 서울역 앞 남대문경찰서로 갔다.

 

남대문서 형사과로 들어가자 인상이 우악스러운 형사가 곧장 피의자의 혁대를 풀고는 대뜸 "야! 별이 몇 개냐?"하고 소리쳤다. 피의자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처음… "이라고 얼더듬자, "야, 금방 들통 날 건데 솔직히 말해!"하며 다그쳐도 그는 계속 묵묵부답이었다.

 

다시 형사가 교도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됐느냐고 윽박지르자, 그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일주일됐다고 대답했다. 형사는 곧 컴퓨터로 전과조회를 하더니, "자식, 별이 일곱 개구만" 하자,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마치 고양이 앞에 쥐처럼 부들부들 떨었다.

 

국회의원 앞에서 말 바꾸기를 하다가 금세 고개를 떨어뜨린 검찰총장 후보자와 형사 앞에서 거짓말을 하다가 고개를 숙인 소매치기와 다른 게 뭘까? 오랜 세월 동안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피의자를 신문하다 보니 검사는 자신도 모르게 물들어 버린 탓이었을까?

 

그런 양심을 가진 사람이 검사장에 오른 세상이 개탄스럽고, 그런 검사장을 검찰총장 후보자로 내정한 임명권자가 한심하고, 그런 후보자를 감싸고도는 국회의원이 저주스럽고, 그런 국회의원을 뽑은 이 나라 백성들이 불쌍하다.

 

오호통재라! 소매치기나 검사장이 오십보백보로 그 놈이 그놈인 세상이다.


태그:#소매치기,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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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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