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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가는 길

 영귀산 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천불천탑의 예전 모습이 상상되어진다.
 영귀산 위에서 바라본 운주사. 천불천탑의 예전 모습이 상상되어진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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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은 남도 곳곳을 젖줄이 되어 흐른다. 구불구불 물줄기를 따라 난 신작로 가로수 붉은 꽃물결도 한여름의 운치를 자아낸다.

운전을 하는 아내가 가로수 나무 꽃의 정체가 궁금한 모양이다.

"여보, 차창을 열까? 가로수길이 참 아름답네! 저 꽃나무가 뭐예요?"
"목백일홍! 배롱나무라고도 하지. 꽃이 백일가량 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야."
"붉은 꽃이 참 화사하고, 정감이 가요."
"나무가 크면 나무껍질이 벗겨져 밑동은 반질반질해지지. 사포질한 것처럼."

차 에어컨 바람보다 밖에서 흘러들어온 공기가 더 신선하다. 배롱나무 꽃길의 꽃향기가 스며드는 것 같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너릿재터널을 지나 화순(和順) 땅이다. 화순은 지명부터가 평화롭고 순박하게 느껴진다. 아내와 나는 모처럼 시간을 내어 화순 땅에 있는 운주사를 향해 차를 몰고 있다.

한여름의 피서는 바다나 시원한 계곡이 제격인가? 운주사 주차장이 의외로 한가하다. 땀을 닦으며 경내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좀 지쳐 보인다.

일주문에 들어서기 전, 운주사 안내문을 아내가 꼼꼼히 읽어본다.

 운주사는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느낄 수 있다.
 운주사는 여느 사찰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의 불사를 한 불가사의한 신비를 느낄 수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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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이곳이 천불천탑이 있던 곳 이래. 수많은 불탑과 불상의 표정이 어떨까 궁금하네요. 어서 구경하자구요!"

아내가 손을 잡아끈다. 명소를 찾으면 건성건성 지나침이 없는 아내는 운주사에서 뭘 느
낄까? 자못 궁금하다.

편안한 얼굴의 불상, 오랜 풍상을 견뎌온 석탑

천불천탑의 고찰로 알려진 화순 운주사. 일주문을 지나고부터 여느 사찰과 달리 색다른 느낌이 있다. 꾸미지 않은 편안함이 있다.

운주사에는 커다란 가람도 없고, 세련된 불상도 없다. 돌부처님의 표정에는 우리 이웃 같은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바라볼수록 우리 조상들의 깊은 혼이 깃든 순수한 불교의 불가사의한 신비가 감싸는 듯하다.

운주사에 대한 유일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에서 찾을 수 있다. '운주사 재천불산 사지좌우산척 석불석탑 각일천 우유석실 이석불 상배이좌(雲住寺 在天佛山 寺之左右山脊 石佛石塔 各一千 又有石室 二石佛 相背以坐)라고 쓰여 있다. '운주사는 천불산에 자리 잡아 절 좌우 산에 석불 석탑이 각 일천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고 되어있다. 그러니까 그 당시만 하여도 석불과 석탑이 일천 기씩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 많은 석탑과 석불은 다 어디로 갔을까? 지금은 석탑 17기와 석불이 80여 기만 남아 역사 속에서 끝없이 유실되어온 아픈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아내가 운주사 일주문을 지나 천불산 계곡 곳곳에 눈에 띄는 많은 불탑과 석불을 보고 재미나는 말을 한다.

 운주사 9층석탑(보물 제 796호).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화사하고 수려한 탑으로 알려졌다.
 운주사 9층석탑(보물 제 796호). 운주사에서 가장 높은 화사하고 수려한 탑으로 알려졌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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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박한 우리 이웃같은 불상이 친근하다. 아내는 자기 얼굴과 비슷하지 않느냐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소박한 우리 이웃같은 불상이 친근하다. 아내는 자기 얼굴과 비슷하지 않느냐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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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층석탑은 형님탑, 7층석탑은 아우탑, 5층석탑은 막내탑. 그리고 할아비부처, 할미부처,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딸부처, 아기부처 이곳에 모두 모였네! 운주사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을 것 같어!"

운주사 불상들은 크기도 모양도 각각이다. 우리네 얼굴을 부처님 형상으로 표현한 것 같다. 불상 하나하나 소박하고 친근감이 든다. 통통한 얼굴, 홀쭉한 얼굴들이 모양과 표정에서 재미있다. 성내고 화낸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선으로 간단하게 처리한 눈과 입, 기다란 코, 그리고 단순한 법의(法衣) 자락에도 멋이 배어 있다.

"운주사 불상 배치와 제작기법은 다른 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운주사만이 갖는 특별한 가치로 평가받는다"는 문화해설사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석조불감(보물 제 797호).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으로 그 안에 두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는 것이 특이하다.
 석조불감(보물 제 797호). 팔작지붕 형태의 돌집으로 그 안에 두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는 것이 특이하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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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에서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있다. 석조불감이다. 팔작지붕의 돌집 안에 두 분의 석불이 서로 등을 맞대고 앉아 있는 모습이 특이하다. 운주사에서만 볼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한 편은 석가모니불, 다른 한편은 비로자나불이다.

운주사에 있는 석탑 또한 각기 다양한 개성을 뽐내고 있다. 탑의 층수도 3층, 5층, 7층, 9층 등으로 다양하다. 대부분의 석탑들은 자연 암반석 위에 세워 그야말로 제멋대로이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크기대로 쌓아올리기도 하고, 둥근 호떡을 연상하는 돌이나 항아리 모양의 돌을 차곡차곡 쌓기도 했다. 몸돌에는 알 수 없는 기하학적 여러 무늬가 새겨있기도 하다.

 원형다층석탑(보물 제 798호). 연꽃문양의 기단갑석에 둥근 탑신석과 둥근 원형의 옥개석(지붕돌)을 갖춘 아름다운 석탑이다.
 원형다층석탑(보물 제 798호). 연꽃문양의 기단갑석에 둥근 탑신석과 둥근 원형의 옥개석(지붕돌)을 갖춘 아름다운 석탑이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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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탑에 쓰인 석질은 잘 바스러지는 돌이라고 한다. 이는 화강암질의 대리석보다 더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 제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석질로 빚어 만든 탑이 그 오랜 세월 풍상을 버티어 왔다는 사실이 신비스럽다.

아내와 나는 석탑 하나 불상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대웅전을 뒤로 하고 위치한 마애여래좌상과 공사바위가 있는 데까지 올랐다. 산 위에서 운주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허리 곳곳에 예전의 천불천탑이 그대로 보존되었다면 정말 장관이었을 것 같다.

꾸밈없는 절, 와불님은 언제 일어나실까?

나무 그늘에서 숨을 고르고 발아래 펼쳐진 풍광에 넋을 잃는다. 흥건히 젖은 땀도 시원한 바람결에 날린다.

"여보, 우리 운주사 석불과 석탑은 다 구경한 거야?"
"아냐! 아직 제일 중요한 게 남았지?"
"그게 뭔데요?"
"미완성 석불. 누워계신 부처님을 보고 가야지."

아내는 눈에 띄지 않는 와불이 어디 있냐고 궁금해 한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형태의 와불. 이 천번째 부처님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이 민족이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세계에서 하나뿐인 유일한 형태의 와불. 이 천번째 부처님이 일어나면 곤륜산의 정기를 이 민족이 받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지상 최대의 나라가 된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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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서쪽 산 능선에는 거대한 두 분의 와불이 누워있다. 열반상과는 다르게 좌불과 입상으로 자연석 위에 조각된 채로 누워있다. 운주사처럼 좌불과 입상의 형태로 누워있는 부처님은 세계에서 하나뿐이다. "이 천번째 미완성 와불이 일어나는 날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말이 전해진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이 아쉬운 듯 매미가 악다구니를 쓰고 울어댄다. 이마에는 연신 땀이 흐른다. 운주사를 빠져나오며 아내와 나는 이야기를 나눴다.

 운주사 대웅전.
 운주사 대웅전.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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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앞 마당에 고추가 널려있어 정겹다. 가을이 멀지 않음을 실감한다.
 대웅전 앞 마당에 고추가 널려있어 정겹다. 가을이 멀지 않음을 실감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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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는 모든 게 꾸밈이 없는 것 같아요. 천불천탑의 전설은 물론, 절에서 낮잠 자는 개의 한가함, 법당 마당에 고추를 말리는 정겨움, 그리고 요사체 구석 햇살 밝은 곳에 수많은 장독대의 소박함, 많은 것을 느끼고 가네요."

"무성히 자란 너른 풀밭을 제초제에 의존치 않고 풀을 깎아낸 모습, 그래서 더 정갈하고 살아 숨쉬는 듯한 천불천탑의 운주사 모습과 잘 어울렸어. 이곳에 오기를 잘했지?"

이야기 끝에 아내는 운주사 탐방을 마무리하는 말을 남기며 차에 오른다.

"운주사 와불님은 사바대중을 향해 소박하고 꾸밈없이 자연을 닮아 살아야한다는 말씀을 설파하실 것 같아요. 비록 누워계시지만 고운마음으로 우리네 삶의 모습을 지켜보시면요."

덧붙이는 글 | 운주사 찾아가는 길

광주(12km)→ 화순(10km)→ 능주(5.1km)→평리사거리(2.4km)→클럽900(2.8km) →도장리8km) → 도암삼거리(3km)→ 운주사 (50분 소요)



#운주사#천불천탑#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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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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