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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을 앞둔 8월 28일 모악산자락의 함대마을에서 마을 굿 열려


모정(정자의 전라도 사투리)에서 음식을 나누며 흥을 돋우고 훈련받은 전문기수만이 다룰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앞세우고 출발을 준비하는 단원들
▲ 120년된 마을의 모정에서 용기를 앞세우고 '술멕이기'의 출발을 준비하는 모습 모정(정자의 전라도 사투리)에서 음식을 나누며 흥을 돋우고 훈련받은 전문기수만이 다룰 수 있는 커다란 용기를 앞세우고 출발을 준비하는 단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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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가 살아 숨쉬는 도시 전주에서 금산사로 가는 길 어귀에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 오른쪽으로 야트막해서 정겹게 보이는 산이 계룡산이다. 그 계룡산이 띠처럼 감싸고 있는 마을이 함대마을(함띠마을 이라고도 한다)이다.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의 밀집된 아파트 숲을 지나 다리를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시대를 거슬러 온 것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곳이 "전주 기접놀이"의 고장으로 수백년에 걸쳐 그 원형이 보전되며 대를 이어 전수되고 있는 곳이다. 이 마을은 현재 전주시 삼천2동이지만 바로 마을 앞 다리 건너 아파트촌과는 전혀 다르게 농촌문화를 지니고 생활하고 있다.

우리의 농경문화에서는 음력 백중이 되면 바쁜 농사일이 한 고비를 넘기게 된다. 농사에 지친 심신을 달래며 농사일로 갈등을 겪던 이웃들과도 앙금을 푸는 한바탕 놀이마당이 벌어지는데 그것을 '마을굿' 또는 '술멕이', '호미씻이 '로 불렀으며 농악을 앞세우고 마을 집집을 돌며, 집집마다 술과 음식을 내어 한바탕 어울림의 마당이 벌어지는 것이다. 논농사 위주의 옛날에 있었던 민속을 그것도 대규모 아파트 촌을 세내라는 천을 사이에 한 70여호의 주민이 거주하는 자그마한 마을에서 지금껏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삼천동2가의 자연부락인 비아․정동․용산함대마을의 지역토착민들을 중심으로 1998년 "전주기접놀이 보존회"를 결성하여 지금까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다. 특히 2005년에는 제46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전라북도 대표로 참가 "문화관광부 장관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 제48회 한국민속예술축제 은상을 수상 하는 등 그 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아 농업진흥청과 전주시지정0000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심영배 보존회장은 말했다.

마을합굿을 위해 모이기로 했다는 마을 가운데에 있는 모정(정자의 전라도 사투리)에 약속 시간 30분 전인 2시30분에 가니 벌써 부지런한 마을 어르신들과 심영배전주기접놀이 보존회장(56세, 전주시 삼천동)이 흥을 돋우기 위해 풍장을 치고 있었다. 심영배 보존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시간이 되어 가면서 복장을 하고 나오시는 분들이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시며 하나둘 나오시는데 '일상'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우리 고유의 민속이라도 이젠 정형화 된 '공연'으로밖에 접할 수 없는 현실에서 그런 자연스러운 몸짓은 신섬함으로 다가왔다. 좀 떨어진 마을회관에서 마을 부녀회원들이 연신 음식을 준비해 나르면서 분위기는 가파르게 흥이 오르고 있었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간단하게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 자체가 정이 흐르며 전혀 격식을 차리지 않는 가운데 눈에 보이지 않는 규율이 있었다. 마을의 원로이시며 기접놀이의 상쇠이셨던 심동섭(88, 전주시 삼천동) 어르신이 예전의 기접놀이와 마을굿에 대해 말씀 하시며 이런 전통이 계승되고 있음이 자랑스러우며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보니 마을 합굿에 참여하는 단원들 중 젊은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고성능의 카메라로 연신 촬영을 하고 또 다른 단원은 캠코더로 능숙하게 동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누구라고 할것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음식과 술을 나누며 간단하게 회의를 마치자 각자 차비를 차리는데, 누가 준비하자고 큰소리 내는 사람 하나 없이 그저 각자 알아서들 조용히 준비하면서 꽹과리가 장단을 시작하자 거대한 '용기'가 앞장을 서는 모습이 그저 자연스러운 '생활'이었다. 기접놀이는 패를 나누어 큰 기인 '용기'를 앞세우는데 그 크기가 거대해 훈련받지 않은 기수는 다룰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거대했다. 기접놀이의 고장답게 모든 농악에는 '용기'가 앞장을 서는 게 이 마을의 전통이라 한다.

커다란 장대에 큼지막하게 매달린 용기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마을 농악단이 뒤따르며 함대리 합굿은 시작됐다. 원래는 마을의 집집마다 한 집도 빼놓지 않고 돌았고, 각 집에서 형편에 맞게 음식을 내어놓아 흥을 돋았다고 하나 지금은 이 동네도 전업농이 드물고 종교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집이 많아 오늘은 두 집만 돌고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겸한 뒤풀이 자리를 가진다고 한다.

모든 산의 어머니란 의미인 모악산 자락의 계룡산鷄龍山밑에 옹기종기 자리한 비아ㆍ정동ㆍ용산ㆍ함대 마을에서 1956년까지 실제로 전래되다가 그 맥이 끊겼다고 한다. 5.16혁명이 나고 개발의 광풍이 불어닥치면서 우리의 전통문화는 진부하고 낡은 것으로 치부되기 시작했으며, 6,70년대에는 농악을 비롯한 우리의 전통문화가 문화 자체로 계승 발전되기보다는 독재 권력에 대항하는 민중운동의 성격을 띠며 발달해 '전주기접놀이'같은 한 동네의 자생적인 민속은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로 이루어진 기접놀이 보존회 단원들이 용기를 앞세우고 동네로 들어서고 있다
▲ 한껏 용기를 펼치고 술멕이기를 위해 출발하는 단원들 마을주민들로 이루어진 기접놀이 보존회 단원들이 용기를 앞세우고 동네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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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배보존회장 시의원 이던 1998년 '기접놀이보존회'결성해 지금껏 이끌다

자신이 함대마을에서 태어나 자라고 군대를 다녀온 기간을 빼고는 지금껏 꿋꿋하게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고 있는 심영배 기접놀이보존회장의 땀과 노력으로 전래의 귀한 민속이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을은 농촌진흥청과 전주시가 지정한 민속마을이다.

함대마을에서 낳고 자라면서 기접놀이의 상쇠이셨던 아버지 심동섭(88세, 전주시 삼천동)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가락에 빠져 든 청년 심영배는 전주대학교 법학과에 진학을 하였다고 한다. 독재가 기승을 부리면서 저항의 전면에 학생운동이 등장하던 시대상황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전주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되었다 한다. 당시엔 독재와 외세에 저항하는 상징으로 농악이 동원되던 시절인지라 자연스레 운동권 학생들을 데려다 아버지께 농악을 배우게 되면서 후에 반드시 내 고향의 민속을 계승 발전시키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한다. 그러면서 전주시의원으로 당선되어 활동하던 1998년 마을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해 '전주기접놀이 보존회'를 결성하고 지금 보존회장을 맡고 있는 것이다.

전주시의원을 거치면서 2004년 도의원 보궐선거로 도의원으로 진출해 도의회에서 활발한 의정활동을 하면서도 보존회 단원들과 함께 전라북도 대표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석했다 한다. 2008년 큰 꿈을 안고 도의원을 사직하고 국회의원 총선거에 도전했다가 현실정치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처음으로 쓰라린 패배를 맛보았다. 총선 패배 후 절치부심 기접놀이보존회의 일에만 매달려 자신이 직접 농악강사로 농악을 전수하며 기접놀이보존회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뒤풀이까지 하고 가라는 심영배 회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차를 타고 동네를 빠져 나오는데 어느새  어느 집 마당에서 한참 신명난 가락을 치며 땀 흘리고 있는 그가 보였다. 신명나게 돌아가고 있는 그를 바라보며 선거 때만 민중을 찾고 이야기하는 이 시대의 정치인들을 생각하며 헛웃음을 흘리며 한창 신명난 동네를 떠나왔다.

농사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그 과정에서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술멕이기' 혹은 '호미씻기'는 맞이한 집 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고 그 집에서 한바탕 농악판이 벌어지는 우리 전래의 민속이다
▲ 단원들을 맞이한 집에서 준비한 음식을 내오고 한바탕 돌아간다 농사에서 쌓인 피로를 풀고 그 과정에서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술멕이기' 혹은 '호미씻기'는 맞이한 집 주인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먹고 그 집에서 한바탕 농악판이 벌어지는 우리 전래의 민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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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전주기접놀이, #모악산, #전주, #한대마을, #전주기접놀이보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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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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