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7월 15일]
강의평가 결과가 나왔다. 평점이 4.3점이다. 지난 학기보다 더 떨어졌다. '성실한 강의'와 '명확한 강의' 항목의 점수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수업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나는 이 나라에서 가장 비참하다고 하는 시간강사고, 학생들은 이 나라에서 가장 불행한 세대라고 하는 88만원 세대이다. 그들과 나는 하루살이 인생이다. 나에게 희망이 없듯이 그들에게도 희망이 없다. 그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현실의 팍팍함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모두들 지쳐가고 있다.
강의평가에서 여전히 학생들은 과제물이 너무 많다고 투덜거리고 있다. 나도 줄이고 싶다. 그 많은 과제물을 하나하나 읽고 빨간 펜으로 토를 달아 다시 돌려주는 거, 너무 힘들다. 비슷비슷한 내용들, 20대의 발랄한 상상력이 드러나지 않는 답답한 글들을 읽는 거, 그래도 한 명 한 명 논평 글을 달아야 하는 것은 고역이다.
다음 학기에는 과제물 평가 방식을 좀 바꿔야겠다. 논평 글만으로는 학생들 실력이 늘지 않는다. 심지어 이번 학기에는 내가 쓴 논평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들까지 등장했다. 도대체 얘들은 고등학교 때 무슨 공부를 하고 온 것일까? 우리 때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는 것 같은데 아는 것은 왜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것일까? 혹시 지금의 내 관점에서 그들을 부당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일까? 마침 다음 학기에는 강사연구실이 따로 생긴다고 하니 상담이라도 제대로 해 봐야겠다.
[# 2009년 7월 24일]
다음 학기 교수계획서를 입력하였다. 불안하다. 폐강 기준이 강화된다고 하는데 혹시 폐강이라도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지금까지 강의평가 결과를 보면 최고 점수는 아니지만 비교적 선방했으니 이번 학기에도 무난히 청강은 되겠지?
[# 2009년 7월 30일]
학회에 갔다. 모처럼 만난 남수(가명)가 반가워, 웃으며 인사했지만 어째 얼굴이 침통하다. 다음 학기 영남대에서 강의를 할 수 없게 되었단다.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학교에서 다음 학기 강의를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한국의 사립대학들은 대학이 아니라 기업에 불과하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대학이 가끔씩 보이는 기업적 행태에 실망해서 하는 말들이라 여겼는데, 비정규직 보호법을 대학이 앞장서서 악용하고 있다니.
"그래 내가 뭐라더노? 그냥 부산대에서 강의하지 머한다꼬 영남대로 갔더노? 선배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하나도 없다."
기껏 내가 한 말이 이것이었다. 답답하다.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더니 대학은 그것을 비정규직 해고법으로 만들고 있다. 참, 나쁜 대학이다.
[# 2009년 8월 5일]
다음 학기 수업 자료들을 검색하고 있는데 후배가 왔다.
"선배, 지금 나이가 얼만데 학위 논문은 안 쓰고 뭐하는 짓이요? 내년부터 박사가 아니면 강의도 안 준다는데, 빨리 논문이나 쓰소."
그래, 빨리 학위를 받아야지. 박사 과정에 들어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후배들도 이미 박사가 되었는데, 서둘러야 한다. 논문을 쓸려면 강의를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먹고사는 게 안 된다. 방법은 딱 하난데, 강의를 대충하면 되는데, 왜 나는 그 대충이 안 되는 것일까? 답답한 노릇이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년부터 정말 박사가 아니면 강의를 안 주는 것일까? 이 나이에 내가 갈 데는 있을까? 공부하는 거 말고는 할 줄 아는 것도 없는데. 어릴 때는 그래도 똑똑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내가 어찌 이리 무능한 인간이 되고 만 것일까? 덥다.
[# 2009년 8월 25일]
조교한테 전화가 왔다. 다음 학기 강의가 없단다. 아니, 다음 주면 개강인데,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강의계획서 입력을 한 지가 언젠데, 학생들 수강 신청도 다 끝났고, 이제 출석부를 출력해서 강의실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강의가 없다니?
학과장님한테 전화를 했다. 대학 본부에서 비정규직 보호법 때문에 70명을 위촉하지 않았는데 그 명단에 내가 들어갔다고 한다. 그 순간 왜 영남대에 간 남수한테 내가 했던 말이 떠올랐을까?
'그래 내가 뭐라더노? 그냥 부산대에서 강의하지 머한다꼬 영남대로 갔더노? 선배 말 들어서 손해 볼 거 하나도 없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학교에서는 전혀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 남수는 영남대에서 양보를 해서 이번 학기에 그래도 한 강좌를 맡게 되었다고 하는데, 부산대는 이게 뭔가? 부산대와 비교하니 영남대는 오히려 착한 대학이라고 해야 할까? 슬프다.
[# 2009년 8월 26일]
내가 학생일 때 부산대는 자랑스러웠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싸운, 부마항쟁과 6월 항쟁에 빛나는 대학이었다. 그러나 내가 선생일 때 부산대는 부끄럽다.
대학 안에 상가 건물이 들어섰고, 대학의 정문은 마트 입구처럼 되었고, 사립대학도 주는 마지막 시험 주 강의료조차도 주지 않았고, 이제 국가에서 만든 법을 국가 기관인 국립대가, 장관급이라고 하는 국립대학 총장이 악용하고 있다.
나의 선생님들은 내가 다니는 부산대를 자랑스럽게 여기도록 하셨지만, 내가 선생일 때 나는 부산대를 세상에서 가장 부끄러운 대학으로 만들고 있다. 무슨 낯짝으로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겠는가? 그래, 학교를 떠나자. 이제 그만 두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저녁 안 챙겨 먹으면 화 낼거야^^ 사랑해!"
학습지 교사를 하는 아내한테서 문자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