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스 조에게 범인을 체포하는 방법을 가르쳐 드릴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것은 미스 조의 프로파일링입니다."
"그게 바로 제 일입니다. 범인은 편지대로 사건을 만들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일단락되었습니다."
"일단락되었다구요?"
"한국에서 극우주의자를 공격했는데 더 이상의 공격 대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범인은 내년 6월 15일에 다시 살인을 벌이겠다고 했습니다."
"편지대로 한국에서는 범행이 일단락되었다고 나는 봅니다."
"그런데 범인은 다수겠지요?"
"나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살인의 형태에 일관성이 있지 않습니까? 주범은 하나이고 훈련된 하수인들을 거느리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본부가 있을 것이 아닙니까?"
"당분간 찾아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범행 의도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범인은 남한 사회의 치부를 들춰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영웅적 의협심에 도취된 인물이라고 섣불리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모든 복수 행위에는 피해자의 치부가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복수 행위라고요?"
수경은 나에게 되물으며 다시 한 번 기침을 했어.
"그럴 가능성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당했기에 복수한다는 겁니까?"
"피살자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에 장애가 되는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와 통일을 추구하다가 당한 사람이 펼치는 복수극이라는 말씀입니까?"
"복수는 적대적으로 이루어지지만 드물게 승화적인 복수도 있습니다."
"승화적인 복수라고요?"
"이를테면 몽테 크리스트 식의 복수 말입니다."
"몽테 크리스트..."
"아무튼 범인은 약속을 지킬 것입니다."
나는 일부러 시계를 보고 몸을 일으키는 자세를 취했지.
"미스 조, 나는 곧 한국을 떠납니다."
"그럼 다시 못 뵙겠군요?"
"다시 볼 날이 있을 것입니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미스 조, 어머니께 제 안부를 전해주세요. 못 뵙고 떠나 미안하다고 말해 주시고요."
"제 어머니를 아신다고요?"
"어머니도 저를 아실 겁니다."
수경은 다시 기침을 했어. 그래서 내가 물었지.
"목이 안 좋은가요?"
"저는 향수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예민하시군요. 아주 미량만 썼는데.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백범 암살 프로파일링아브라함을 만난 후 조수경은 서점에 들러 근·현대사 관련 서적을 몇 권 구입했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해방정국의 테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았다. 그녀는 식민지와 분단과 6·25와 4·19, 그리고 군부독재와 민주화와 남북 화해로 이어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읽었다.
그녀는 해방정국의 여운형, 송진우, 장덕수, 김구 등의 암살 테러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모두가 하나같이 배후가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녀는 이번 연쇄살인사건도 해방정국의 암살테러처럼 끝내 배후가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들었다.
어느 새 새벽 4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참고서적들을 더 읽은 후에 프로파일링에 착수해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아브라함 말대로 사건이 일단 중지되었다면 프로파일링을 보다 더 신중히 할 수 있는 시간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텔레비전을 켰다. 리모컨으로 여기저기 케이블 방송을 눌러 보던 그녀는 웃음소리가 왁자하게 나오는 채널에서 손가락을 멈추었다. 기독교방송이었는데 설교하는 목사가 신도들을 끊임없이 웃기고 있었다.
목사의 설교는 거의 만담과 비슷했다. 자막에는'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말씀'이라고 되어 있었다. 아마 설교 제목인 것 같았다. 목사는 마태복음에 있는 산상수훈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먼저 목사는 엄숙한 음성으로 성경 구절을 해설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신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심령이 기름진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탐욕적인 인간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자신을 반성하는 사람입니다. 반성하지 않는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파렴치한 인간입니다. 온유한 자는 곧 평화를 지향하는 사람입니다. 폭력적인 사람은 온유할 수가 없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정의와 진리를 추구합니다. 무지한 사람은 정의와 진리를 생각하지 못합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른 말로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냉혹한 자는 자비를 모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가식이 없습니다. 위선자는 마음이 청결할 수가 없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인간관계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러기에 남을 선동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근엄하게 말했던 목사는 돌연 목소리를 높였다.
"의로운 사람을 핍박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악마입니다."
그러더니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씨익 웃었다. 그러자 신도들이 와아!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목사의 말투와 표정과 제스처가 개그맨처럼 요란하고 수다스럽게 바뀌고 있었다. 목사는 신도들을 쥐락펴락하기 시작했다.
목사가, "마음이 가난허믄~?"이라고 선창하자, 신도들은 모두 함께"복 받어어~"라고 합창했다. "애통해 하문?"이라고 묻자, "복 받어어~"라고 신도들은 되받았다. "온유한 사람은? 복 받어어~, 의에 주린 사람은? 복 받어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복 받어어~,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복 받어어~, 화평케 하는 사람은? 복 받어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사람은? 복 받어어~."
모두 정말로 큰 복을 받는 사람들 같았다. 신도들은 하나같이 어린이처럼 좋아하고 있었다. 목사는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말을 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소설은 주 2회씩 올해 연말까지 연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