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넘게 살던 부산에서 고향으로 이사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가는 세월!'이라고들 하지만, 빨라도 너무 빠른 것 같다. 월요일을 확인하고 3-4일 지났다 싶으면 주말이니까 말이다.
필자가 사는 군산시 나포면 문화마을은 2009년 8월 18일 현재 128가구에 357명이 살고 있는데, 20세 미만이 24%, 20세-39세가 22%, 40세-59세가 32% 60세 이상이 20%로 농촌이면서도 고른 인구분포를 보여주고 있다(면사무소 자료 참고).
작년 8월 이사를 마치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는데 대부분 대문이 열려 있고, 담들도 하나같이 낮은 걸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고개만 돌리면 집안이 훤히 들여다 보였는데, 인기척이 있는 집은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두 번째 놀란 것은 아이들 예절이었는데 길에서 만나기만 하면 인사를 하는 통에 누구인지 몰라 난처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길에서 어른을 만나면 인사하는 게 생활화되었다고 해서 아직은 마을이 한 가족처럼 지내는 전통 시골 정서가 남아 있다는 생각에 또 한번 놀랐다.
마을을 산책하면서, '높은 담과 중벌만으로는 도둑을 예방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꼈는데, 도둑 걱정이 없으니까, 대문을 개방해놓고 담도 낮게 해놓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해발 200m가 넘는 '망해산' 자락이 마을을 감싸고 있고 주변이 논과 밭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농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건축양식이 단아하면서 우아하고, 도시 주택보다 세련되게 지은 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부부나 가족이름이 적힌 예쁜 문패들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직업도 다양해서 시내에 직장이 있거나 가게를 운영하면서 출퇴근하는 주민도 있고, 농사만 아는 전문 농사꾼이 있는가 하면 아직도 남의 논을 빌려 농사를 지어먹고 사는 가난한 소작농들도 있어서다. 그런데 1년을 넘겨 사는 동안 마을에서 싸움이 일어나거나 도둑맞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넉넉한 마을 인심
이사하고 1년이 지나는 동안 친절하고 인심이 좋은 마을 분들에게 과분한 대접을 받은 것 같다. 고추와 호박 등 밭에서 가꾼 채소를 가져오고, 뒷집 아주머니는 지나가는 사람을 부르더니 마당에서 키운 것이니까 맛이나 보라며 사과와 감을 그릇에 담아주기도 했다.
옆집에 사는 '방울이 할머니'(69세)는 고구마, 고추, 팥, 옥수수 등이 자라는 밭으로 데리고 가더니 먹고 싶으면 따다 먹으라고 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대답만 하고는 미안해서 갈 수가 없었는데, 올해도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를 실컷 얻어먹었다.
집주인 아저씨는 채소를 가꿔먹겠다고 하면 노는 밭을 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농작물을 관리할 자신이 없어 사양했는데, 올여름에도 상추와 호박잎, 깻잎 등을 가져오고, 열무김치와 배추김치도 한두 번 얻어먹은 게 아니다.
이밖에도 취재를 나가면 친절하게 대해주고, 농원에서 재배한 포도이니 맛이나 보라던 원 씨 아저씨와 형님·동생 사이로 지내자고 하는 주민도 있었는데 사연을 일일이 소개하려면 지면이 부족할 것 같다.
1년 동안 사건·사고 한 건도 없어며칠 전에는 필자가 이사해서부터 지금까지 마을에서 일어난 사건·사고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려고 나포면 파출소를 찾았는데, 마침 근무 중인 최선규(44세) 경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명함을 건네면서 방문한 이유를 설명하고 1년 동안 접수된 사건·사고 건수가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필자가 사는 '문화마을'에서는 한 건도 없고, 3천 명 조금 못 되는 나포면 전체에서 폭력사건이 한두 건 접수되었는데 그것도 서로 화해하는 것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직원 8명이 대부분 시내에서 출퇴근하면서 3교대로 근무하고 있다고 하기에 애로점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특별한 어려움은 없고, 주민들과 관계도 좋은데 수법이 지능화되어가는 전화금융사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담이 낮아도 마음 놓고 사는 걸 보고 무척 평화스럽게 느껴졌다고 하니까, 파출소 담도 의미가 없어서 찾아오는 분들에게 주차장으로 제공하려고 지난봄에 헐어버렸다며 승용차 일곱 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안내했다.
최 경사는 마을에 자율방범대, 청소년 선도위원회가 있는데 방범대장인 정육점 주인이 대원들과 승용차로 밤마다 순찰을 한다면서, 교통사고도 2년 동안 나포면에서 접속사고만 몇 차례 일어났지, 사망사건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사고 예방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문화마을 신축 추진위원장으로 마을 조성에 앞장서온 하영태 전 나포면장은 처음에는 대야면 진성여중 부근으로 선정되었으나 땅값 보상 문제로 기공식조차 못하고, 회현면과 경합하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92년 나포면으로 책정되어 95년 공사와 함께 입주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했다.
하 전 면장은 문화마을은 강원도 횡성에 가장 먼저 조성되었고, 두 번째가 충남 공주, 군산 나포가 세 번째인데, 강원도 횡성은 집 구조가 회사 사택처럼 일괄적으로 지어졌고, 공주와 군산은 집주인 취향에 맞게 모델을 선택해서 지었다고 설명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간접적인 경험과 사회면 뉴스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보면 담이 낮은 집보다 높은 집에서 강력사건이 많이 나는 것 같다. 그러한 현상은 가난한 사람들보다 부자들 사이에서 고소·고발 사건이 많은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도시 부잣집은 대부분 도둑방지용 카메라에 교도소 담보다 높아 쳐다보려면 고개가 아플 정도다. 그렇게 높기만 하면 괜찮은데 담 위에 철망을 쳐놓는가 하면 유리쪼가리를 박아놓아서 살벌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도둑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정서가 메마르고 인심이 예전만 못하다고 탄식한다. 하지만, 마당이 들여다 보이도록 낮으면서도 나름의 감각을 살려 아름답게 꾸며놓은 담을 보면서 물질적인 것보다는 상대방을 믿고, 배려하는 마음의 여유가 사건·사고를 예방하는 지름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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