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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에 사는 아는 분에게 집을 새로 얻고,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지 오래 되었지만 돌아보는 일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함께 공부하는 목사님들과 함께 하루 날을 잡아 다녀왔습니다.

담양하면 '대나무'가 유명합니다. '소쇄원(瀟灑園)'이 있습니다. 소쇄원은 조광조 제자 소쇄 양산보(梁山甫:1503∼1557)가 홍문관 대제학으로 있을 때 기묘사화로 스승 조광조가 사사하자 1530년(중종 25) 모든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세운 것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지어 자연과 인공이 조화를 이루는 우리나라 대표 정원이라고 합니다.

 소쇄원 가는 길. 대나무로 이름만 담양답게 대나무가 빼곡합니다. 길을 걷는 순간부터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집니다.
소쇄원 가는 길. 대나무로 이름만 담양답게 대나무가 빼곡합니다. 길을 걷는 순간부터 마음이 저절로 편안해집니다. ⓒ 김동수

소쇄원이 정원으로만 유명한 것이 아닙니다. 송강 정철이 사미인곡과 성산별곡 따위를 소쇄원을 배경으로 지었다고 하니 이름없는 시인묵객들이 얼마나 이곳에서 시와 글을 짓고, 삶을 논하여겠습니까?  하지만 소쇄가 세운 것들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고, 80여년 전에 새로 지었다고 설명을 읽고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소쇄원에는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오곡문(五曲門), 대봉대 등 여러 건물이 있는데 제월당은 주인이 거쳐하면서 독서를 하는 곳으로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을 지닌 정자보다는 큰 정사(精舍)가 있습니다.

 제월당.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하는 곳으로 주인이 조용하게 책을 읽는 곳이지요.
제월당.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을 뜻하는 곳으로 주인이 조용하게 책을 읽는 곳이지요. ⓒ 김동수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달' 참 궁금했습니다. 왜 비 갠 뒤 하늘의 상쾌한 '해'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를 제월당 밑에 있는 '광풍각'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광풍각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맑고 깨끗한 바람'이라는 뜻으로 제월당이 주인이 머무는 곳이라면, 광풍각은 우리같은 나그네가 잠시 쉬면서 시를 짓던 곳입니다. 주인이 머무는 곳은 '달' 나그네가 잠시 머무는 곳은 '해와 바람'이라는 의미가 왠지 470년이 지난 이 나그네를 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풍각. 제월당이 주인을 위한 곳이라면 우리같은 나그네를 위한 곳이 광풍각이라고 합니다.
광풍각. 제월당이 주인을 위한 곳이라면 우리같은 나그네를 위한 곳이 광풍각이라고 합니다. ⓒ 김동수

 오곡문에서 바라 본 광풍각
오곡문에서 바라 본 광풍각 ⓒ 김동수

소쇄원 누리집 설명에 따르면 제월당과 광풍각이라는 이름은 중국 송나라 명필인 황정견이 춘릉(春陵)의 주무숙(1017~1073)의 사람됨을 논할할 때 '흉회쇄락여광풍제월 (胸懷灑落如光風霽月)'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풀이하면 "가슴에 품은 뜻을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과도 같고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빛과도 같다"로 스승을 잃은 양산보가 맑과 깨끗한 마음과 정신을 다지고자 함이 아닐까요?

광풍각에는 나그네 한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과연 이들은 비 갠 뒤 깨끗한 바람과 해를 만날 수 있었을까요? 광풍각 뒤에는 아궁이가 있었는데 요즘도 불을 지필까요?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시인묵객들은 이곳에서 시와 글을 논할 때 종들은 군불을 지핀다고, 주인과 객을 대접한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과연 그들도 시와 글을 통하여 삶을 논할 수 있었을까? 아니, 광풍각과 제월당의 의미를 알고 있었을까?

 광풍각 아궁이
광풍각 아궁이 ⓒ 김동수

소쇄원에는 '대봉대'라는 또 다른 정자가 있는데 귀한 손님을 맞기 위해 대를 쌓고 정자(소정)를 지은 것으로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니 대봉대 곁에는 봉황새가 둥지를 틀고 산다는 벽오동나무와 열매를 먹이로 한다는 대나무가 있습니다.

소쇄원을 가면서 담양은 대나무가 많기 때문에 얖으로 대나무를 심었다고 생각했는데 대봉대 설명을 듣고,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 생각입니까? 모르면 말을 꺼내지 말아야 합니다. 대봉대는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해 주었을까요? 나같은 나그네가 이곳에서 몸을 누이면 봉황이 좋은 소식을 전해줄까요? 그런데 같이 간 사람들 어느 누구 하나 제월당과 광풍각에서는 몸을 맞겼지만 대봉대에는 몸을 맞기지 않았습니다.

 대붕대,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대붕대, 좋은 소식을 전해준다는 ‘봉황새를 기다리는 동대桐臺‘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고 합니다. ⓒ 김동수

소쇄원을 보기 전에는 제월당과 광풍각, 대봉대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이것만은 알았습니다. '오곡문'입니다. 오곡문은 담밑의 구멍으로 흐르는 계곡물 '원규투류(垣竅透流)'바로 옆쪽에 있던 좁은 문 형식으로서 담밖과 과 담안을 이어주는 문입니다.

 오곡문, 소쇄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오곡문, 소쇄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입니다. ⓒ 김동수

오곡문 밑으로 흐르는 물을 오곡류라고 하는데 지금은 담장 밑으로 뚫인 작은 구명만 있어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웠습니다. 제월당과 광풍각. 대봉대, 오곡문을 보면서 느낀 것은 우리 조상들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사람 손길이 갔지만 그 손길이라는 아주 적었습니다.

비갠 뒤 맑고 깨끗한 바람과 달, 해. 온갖 공해와 더러운 것으로 찌들어 있는 우리들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씻기 위해 소쇄원에 한 번 몸을 맞기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소쇄원#제월당#광풍각#대봉대#오곡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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