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책을 읽다 보면 흠칫 놀라 잠시 숨 고르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어른들의 한심한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대목이 나올 때나, 저의 오래된 단점을 재치 있게 비웃는 장면이 나올 때 책장을 넘기는 손을 멈칫하게 되지요.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와 <파란 의자>도 그런 책들입니다.
피튜니아는 하는 짓이 어수룩해서 맹추라고 놀림을 받는 암거위입니다. 어느 날 산책을 하던 피튜니아는 풀밭에서 낯선 물건을 발견합니다. 주인 집 아들이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빨간 책이었지요. 며칠 전 집주인이 아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하던 말을 떠올립니다. "책을 지니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롭다."
맹추라고 놀림 당하던 피튜니아는 책을 들고 다니기로 결심합니다. 책을 깔고 잠들기도 하고, 책을 부리에 물고 헤엄을 치기도 하지요. 그러다 자기가 정말 지혜로운 줄 알고 교만해지기 시작하는데, 문제는 주변 동물들도 피튜니아를 똑똑하다고 믿게 된 것입니다. 동물들은 지혜로워졌다고 믿는 피튜니아에게 어려운 문제를 부탁하게 됐고, 피튜니아는 부탁받은 것은 물론이고 부탁받지 않은 것까지 기꺼이 나서서 해결해 주려고 했지요.
교만해진 피튜니아는 목을 길게 빼고 다니며 오지랖을 떨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병아리 떼를 몰고 산책을 다녀온 암탉이 집으로 돌아와 병아리 숫자를 헤아리는데 피튜니아가 도와주기를 자청합니다.
"기꺼이 도와드리지요. 흠, 어디 보자, 물통에 세 마리가 있고, 모이통에 세 마리가 있고, 아줌마 발치에도 세 마리가 있네요. 세 마리 곱하기 세 마리는? 여섯 마리네요."
암탉이 묻습니다. "여섯이라고? 여섯! 그게 아홉보다 작은 거니?"
피튜니아가 대답하지요. "그건 아홉보다 크죠. 작은 게 아녜요. 훨씬 더 커요!"
암탉은 근심에 쌓입니다. "아홉 마리도 넘는다고? 세상에! 아홉 마리 키우기도 너무 벅찬데. 다른 애들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오, 이런, 난 이제 어떡하라고."
책에는 피튜니아가 지혜롭다고 믿기 때문에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피튜니아가 폭죽 상자를 사탕 상자로 오독할 때까지, 폭죽을 사탕이라고 믿고 동물들이 달려들어 먹으려고 하다가 폭발해서 모두 다칠 때까지 계속되지요. 다행인 것은 이 책이 아이들 그림책답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폭죽과 함께 피튜니아의 교만함이 멀리 날아가 버린 것이지요.
피튜니아는 폭죽에 날려 펼쳐진 책장을 읽게 됐습니다. 그 전에는 읽지 않고 끼고 다니기만 했던 물건이었지요. 책을 읽고 정말로 지혜로워지면 친구들을 도울 수 있으리라 믿는 거위의 이야기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책의 소중함을 전달합니다. 사실 저는 조금 뜨끔 했습니다.
책장에 장식품처럼 꽂아둔 지혜의 말씀들이 엄마의 마음 속에 닿지 않고 여전히 책장 안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했습니다. 혹 그렇다면 제 딸아이가 그 사실을 눈치챌까봐서 흠찟 놀랬습니다.
작가는 직접 전하지 않지만,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듯합니다. 제목이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이지만, 단지 책을 끼고 다니거나, 읽는 것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합니다.
책을 읽지 않아서 지혜로워지지도, 상황을 잘 이해하지도,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지도 못한 피튜니아지만 주변 동물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썼다는 점. 비록 피해만 끼쳤을지 몰라도 아는 것을 나누려고 했다는 점만은 칭찬하고 싶습니다. 교만한 태도로 가르치려는 태도가 폭발과 함께 날아가고 그래서 진짜로 공부를 시작하고, 주변 동물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거위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이 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주게 하는 대목입니다.
<파란 의자>도 솔직하게 어른의 문제를 이야기 합니다. 사막을 걷던 두 강아지 에스카르빌과 샤부도는 멀찌감치 보이는 푸르스름한 무언가를 발견합니다. 가까이 가 보니 의자였습니다. 샤부도는 의자에 다가가 냉큼 위가 아니라 밑에 들어가 웅크리고 앉았습니다. 그러자 에스카르빌이 한 술 더 뜹니다.
"에이, 그 정도는 진짜 시시하지. 의자는 거의 요술이야. 개 썰매가 되기도 하고, 불자동차, 구급차, 경주용 자동차, 헬리콥터, 비행기, 음, 또 하여튼 뭐든지 될 수가 있거든. 굴러 가는 거나 날아다니는 거......그리고 물에 둥둥 떠다니는 것도." 에스카르빌의 말에 샤부도는 "어, 그럼 주변에 어슬렁거리는 상어를 조심해야겠네." 하고 거듭니다. 그러면서 책상도 되고, 계산대도 되고, 서커스도 하고 놉니다.
두 친구가 노는 모습을 저만치서 팔짱을 낀 낙타 한 마리가 인상을 쓰면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다가와서 하는 말, "아니, 머리들이 어떻게 된 거 아냐! 뭐가 서커스야? 서커스는!"하고 소리칩니다. 덧붙이기를, "의자는 말이야, 그 위에 앉으라고 있는 거야"라고 하지요.
인상을 쓴 낙타가 어쩌면 그렇게 제 모습을 닮았는지, 이 책을 처음 읽어줄 때 낙타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푸흡!'하고 자책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쿠하가 역할놀이를 하면서 온갖 상상력을 발휘할 때, 제 기분이 좋을 때는 다 받아주지만, 제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벽돌이라며 집 짓는 베개를 가리키며 "너는 이게 벽돌로 보이냐?" 하고 세 살 아이에게 면박을 준 적도 있거든요. <파란 의자>를 만난 뒤로는 다시는 심술궂은 어른의 행패를 부리지 않게 됐습니다. 그림책을 넘기는 내내 반성하고, 다 읽은 뒤에는 쿠하에게 벽돌 이야기를 꺼내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습니다. 아이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엄마가 정중하게 사과를 하니 "응 괜찮아." 하고 가볍게 풀었지요.
그림책을 읽으며 종종 어른의 부끄러운 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눈에 제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점검해 보기도 합니다. 그림책 두 권을 읽어주며 아이들이 신나게 상상하며 놀 때, 인상 쓰고 팔짱을 낀 채 비아냥거리는 어른이 되지 않기로 결심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