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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라면, 김치라면, 치즈라면, 해물라면, 짬뽕라면, 매운라면, 덜매운라면, 퍼진라면, 덜익힌라면, 계란김치해물을 넣은 매운 퍼진라면도 가능하다. 라면의 요리법은 무궁무진하다. 기름에 튀겨 설탕을 뿌려 먹거나 그냥 생라면에 스프를 뿌려먹는 것도 방법이다. 인터넷으로 라면 레시피를 찾아보면 끝이 없을 정도다.

집에서 끓인 보통 라면. 달걀을 넣고 안 넣고의 차이도 크다.
 집에서 끓인 보통 라면. 달걀을 넣고 안 넣고의 차이도 크다.
ⓒ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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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먼저 넣을 것인지, 스프를 먼저 넣을 것인지, 물을 끓었을 때 면을 넣는 것이 좋은지, 끓기 전에 넣는 것이 좋은지, 물은 조금 적게 넣는 것이 좋은지 많이 넣는 것이 좋은지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라면요리 노하우를 놓고 의견이 분분할 때도 있다.

맛있는 라면의 핵심은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에 있다. 면이 퍼지면 실패다. 익기 직전 불을 끄는 것이 좋다. 그리고 계란, 김치, 치즈 등등이 없어도 꼭 파는 넣어야 한다는 것이 나만의 라면요리법이다. 입맛에 따라 미소된장을 약간 풀거나, 아니면 고춧가루를 넣는 것도 맛있다. 고춧가루보다 고추기름이 있으면 확실히 국물맛이 달라진다.

라면만큼 손쉽게 요리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직장생활 그만두고 고향 내려가서 라면가게를 한번 내볼까 하고 프랜차이즈 라면가게 홈페이지를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라면가게 내는 데 얼마나 들겠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인기 있는 프랜차이즈 라면가게의 경우, 가맹비와 인테리어 비용만 몇 천만 원 쉽게 깨진다는 것을 알고 라면가게 사장님이 되어 보겠다는 꿈은 깨끗이 접었다.

맛있는 라면의 핵심, 쫄깃한 면발과 시원한 국물

군 생활을 담은 몇 장되지 않는 사진중 하나. 훈련 중 전우들과 함께 촬영한 것이다. 오른 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다.
 군 생활을 담은 몇 장되지 않는 사진중 하나. 훈련 중 전우들과 함께 촬영한 것이다. 오른 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다.
ⓒ 조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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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프랜차이즈 라면가게가 아니라 좀더 특색 있는 메뉴로 가게를 내보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다. 메뉴 단 하나, '뽀글이'. 보통 봉지라면으로 불리는 뽀글이만 파는 것이다. 끓는 물과 라면만 있으면 끝이다. 가게나 주방이 넓지 않아도 되고, 반찬은 김치와 단무지만 있으면 가능하다.

손님 회전도 빠를 것이고, 원가도 끓여내는 라면보다 훨씬 쌀 것이다. 목만 좋은 곳이 있으면 대박을 치진 못하더라도 꽤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만의 독특한 생각이라고 했었는데, 역시 하늘아래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란 어려운 법이다. 뽀글이 라면가게도 이미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았다. 그래서 이것도 결국 포기했다.

군대 시절 고참들 몰래 먹는 라면은 꿀맛 그 이상이다.
 군대 시절 고참들 몰래 먹는 라면은 꿀맛 그 이상이다.
ⓒ 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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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을 꼽는다면 역시 '남이 끓여준 라면'이 최고다. 두 번째가 바로 군대 시절 먹는 뽀글이다. 야간 근무 서고 내무반에 들어와서 고참들 몰래 먹는 뽀글이는 최고라 할 만하다. 스릴과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특별 메뉴다. 고참이나 당직사관에게 걸리면 상당히 피곤하지만 뽀글이를 먹으려면 그 정도쯤은 충분히 참고 넘어야할 시련이다. 물론 고참이 되면 내무반에 삐딱하게 누워 뽀글이를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참이 되면 뭐든 다 귀찮고 시들해지는 법이니 '졸병 뽀글이'의 맛에 비할 수 없다.

뽀글이가 가장 각광을 받을 때는 바로 동계 훈련. 최대한 라면을 챙겨 넣어야 한다. 반합을 들고 배식트럭을 기다리는 동안 라면 한 봉지도 건빵 주머니에 넣어둔다. 최대한 빨리 배식을 받고 뜨거운 물이 떨어지기 전에 줄을 서야 한다. 추운 겨울 휑한 야산 진지에서 뽀글이에 밥 말아 먹는 것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따뜻한 뽀글이 봉지에 언 손을 녹이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5년이나 흘렀다.

컵라면이 보급품으로 나오는데도 굳이 PX에 가서 라면을 사와 뽀글이를 해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급품 컵라면의 맛이 밖에서 파는 '사제' 컵라면 보다 맛이 월등히 떨이지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하게 걸린 보급품 컵라면의 맛이란 정말 최악이다. 뭐라고 딱히 표현하기 힘든 맛이다. 야릇한 밀가루 냄새가 나는 오래된 면과 꼭 들어가야 할 것이 빠진 듯한 스프의 절묘한 조화는 절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졸병 시절 때는 최고의 간식이었다가 자유롭게 PX 출입이 가능해 질 무렵이면 '보급사절'이다.

뽀글이는 끓여먹는 라면과 다르게 짭짤한 스프맛이 면에 적당히 배어들어야 맛이다. 끓는 물을 넣고 전투복 바지 링(바지 밑단을 접어 고정시키는 고무줄)으로 봉지를 묶고 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군대에서 뽀글이를 먹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알 것이다.

가장 맛있는 라면은 '남이 끓여준 라면'과 '뽀글이'

추운 겨울 휑한 야산 진지에서 뽀글이에 밥 말아 먹는 것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추운 겨울 휑한 야산 진지에서 뽀글이에 밥 말아 먹는 것은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 클릭e공군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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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맛있던 뽀글이도 군대 제대하고선 맛이 시들해져 버렸다. 졸병 때 먹던 뽀글이와 고참 때 먹던 뽀글이 맛이 다르듯이, 제대하고 먹는 뽀글이 맛은 확실히 다르다. 원효대사가 잠결에 마셨던 해골바가지 물과 눈을 뜨고 본 해골바가지 물이 다른 것과 같은 이치랄까(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처지가 달라지면 확실히 혀가 느끼는 맛도 달라지는 법이다.

제대하고선 뽀글이를 해먹은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산에 갔을 때, 정말 집 밖 출입이 귀찮을 때 외엔 거의 해먹지 않았다. 뽀글이 뿐 아니라 라면류는 무엇이든 좋아했는데, 면발이 '땡기는' 날이라도 굳이 집에서 끓여먹거나 하지는 않는다. 먹고 싶을 땐 회사 근처에 있는 라면가게(프랜차이즈 가맹을 알아봤던 그 가게다)에 가서 먹는다.

라면 대신 자주 먹는 것은 누룽지다. 입맛이 고급(?)스럽게 변한 것은 아니다. 라면보다 더 간편한 것 찾다가 누룽지에 꽂혔기 때문이다. 그냥 누룽지만 넣고 끓여도 되고, 와드득 와드득 씹어 먹어도 된다. 쓰레기도 없고 기름기가 없어 세제가 없어도 설거지를 할 수 있다. 인스턴트 음식이 아니라 더부룩하지도 않다. 혼자 사는 갈매기 아빠에겐 상당히 유용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요즘엔 뭐 입맛을 당기는 것이 없다. 안 먹는 것도 없고 못 먹는 것도 없지만 특별히 뭐가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무미건조하게 살면 입맛도 떨어지는 모양이다. 고참 몰래 뽀글이 후루룩거리며 먹던 스릴과 동계훈련 식사시간 뽀글이에 밥 말아먹던 허기가 내 인생에 필요하다. 월급쟁이 그만두고 정말 뽀글이 라면가게 한번 내봐?


태그:#라면, #뽀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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