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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다음으로는 아름답기 그지  없는 시편 23편이 있어요. 아멘!"

다시 목사는 근엄한 목소리로 성경 구절을 암송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음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께서 내 원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며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다시 목사는 씨익 웃었다. 그러자 신도들이 모두, "아멘!"이라고 화답했다.

목사는 다시 만담조의 어조로 바꿔 말하기 시작했다.

"예수님이 전라도 분 같았으면 아마 이렇게 말씀허셨을 거요. 나가 한 번 해 볼팅게요."

목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신도들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목사는 45도 정도 몸을 돌려 서더니 천정을 보며 두 손바닥을 펴 이마의 땀을 닦았다. 그러더니 그는 천연덕스럽게 시편을 전라도 사투리로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으 목자신디
나가 부족함이 있건냐?
그 냥반이 나를 저 푸러부른 전답에 뉘어 블고
내 빼친 다리 쪼매 쉬어불게 할라고
물 까시로 인도해뿌네.
어째쓰까! 징한 거.

폭발적으로 웃음이 나왔다. 목사는 웃음이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예수님이 경상도 분 같았으면 마 이렇게 끝내셨을 낍니더"라고 말하더니 이번에는 정말 경상도 버전으로 남은 구절을 읊조렸다.

주의 몽디이와 작디기가 낼로 맨날 지키시고
내 웬수 죽일 노메 문디 자슥들 앞에서
내 머리에 지름 발라 주고 낼로 팍팍 키와 주시니
내사 걱정이 어딘노.
내 인생이 억수로 복잡타케싸도
내 마 우짜든지 그 옆에 딱 붙어 가
때려지기도 안 떠날 꺼래이.

침대에 누운 조수경은 불현듯 몸을 일으켰다. 공교롭게도 두 성경 구절 모두 아브라함을 통해 한 번씩 보거나 들은 것이었다. 산상수훈은 귀국 비행기에서 그가 펼쳐 놓았던 성경의 구절이었고, 시편 23편은 연쇄살인 특강에서 그가 소개한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책꽂이를 훑어보았다. 웬만하면 한 권 있음직한 성경인데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컴퓨터를 부팅했다. 그러고는 산상수훈을 찾아 유심히 읽어 보았다. 거기에는 여덟 가지 복이 언급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불현듯 예수가 언급한 복 받는 경우의 반대 상황을 추리해 보았다. 아까 목사의 설교에도 그런 것이 있었지만 무심코 들어 넘겨 정확히 기억해 낼 수가 없었다.

그녀는 여덟 개의 복과 반대되는 악덕 여덟 가지에 해당하는 단어를 임의로 만들어 보았다. 탐욕, 배금, 이기, 냉정, 무지, 선동, 위선, 교만 등의 단어가 급한 대로 떠올랐다. 그 중에서 탐욕(greed), 위선(hypocrite) 등이 피살자의 몸에 쓰여 있던 단어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조수경은 아주 오랫동안 컴퓨터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프로파일러는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범인을 추정하여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해야 한다. 미국에는 정확한 프로파일링으로 사건을 해결하여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감사와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역사적인 프로파일러가 몇 있었다. 그러나 조수경은 얼마나 많은 프로파일러가 헛물을 켜고 실패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프로파일링의 핵심은 범죄자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정신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만약 범인이 산상수훈을 반대로 해석하여 여덟 개의 징벌을 시도하고 있다면, 그는 스스로 예수와 맞서려는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 자라고 볼 수 있었다. 예수는 상을 주겠다고 했지만 자기는 벌을 내리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그는 범죄자일 뿐이다. 범죄자는 자기가 맞닥뜨린 문제를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해 피해 가는 겁쟁이에 불과하다. 범죄자 중에 영웅은 없다. 범죄는 겁쟁이가 영웅을 흉내 내는 행위밖에는 되지 못한다. 범죄자는 언제나 경찰보다 더 겁을 먹고 있다. 조수경은 범인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아주 평범하고 상식적으로 접근해야 범인의 전모를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 풀리지 않을 때는 아주 단순해져라. - 

지금까지 범인은 4개의 악덕을 제시했다. 판교 사건에서 '탐욕', 법원·검찰청 뒷산에서 '수구', 그리고 최근의 희생자 염규호를 통한 '위선' 등이었다. 마지막으로 범행을 하려다 중단했다는 사람은 '극우주의자'라고 했다. 이 중에서 수구파나 극우주의자가 기독교의 산상수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다른 항목과 겹칠 수도 있지만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범인은 자의적으로 주관적 판단을 내리고 있다고 봐야 했다. 문제는 범인이 징벌 여덟 개 중에서 아직 네 개밖에는 세상에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편지대로 나머지 몇 개를 세상에 보여 줄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조수경이 다시 자리에 누운 것은 창밖이 환해져 올 무렵이었다.

국과수에서 온 편지 성분 분석 결과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수사에 단서가 될 만한 어떤 성분도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종이건 잉크건 모두 한국 어디에서나 구입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했다. 범인은 종이와 프린트 잉크까지도 신중하고 철저하게 골라 쓰고 있는 것이었다.

문제는 범인이 조수경에게 보내온 편지를 세상에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데에 있었다. 이것의 공개는 이숙희의 비디오테이프 공개 경우와는 천양지차의 것이었다. 물론 편지를 공개하는 일은 조수경이나 경찰의 권한 밖의 일이었다. 조수경은 편지를 받자마자 용 부장에게 즉각 보고했었다. 그리고 경찰의 수뇌부는 정부 책임자에게 바로 보고했다고 했다. 지금 정부 책임자는 편지 공개 여부를 신중히 검토하고 있을 터이다.

정부 책임자는, 우익이라서(정확히 말해서 극우주의자라서) 죽이려 했다는 내용과 내년 6월 15일에 한꺼번에 더 죽여 강물에 띄우겠다는 범인의 예고가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 파장이란 한국 사회에 공포와 함께 극심한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는 것이고, 공권력에 대한 미증유의 불신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조수경을 비롯해서 편지의 존재를 아는 소수의 경찰 핵심 간부들과 정부 책임자들은 그것이 결코 섣불리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냉연히 알고 있었다.


#시편23편#산상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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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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