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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당부는 투표를 하지 않고 욕하지 말란 것이오.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잘못된 것만을 책하는 것은 바로 '누워 침 뱉기'라는 것을 알아야 하오. 뽑을 사람이 없어 뽑지 않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뽑힌 자들이 나라를 재단하오. 그 재단하는 데 있어 원치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는 생각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단 말이오. 그들의 행보는 우리의 삶과 직결돼 있음을 잊지 마시오. 그들이 세상을 망쳤다 탓하지 마오. 그런 자들을 뽑은 자신을 탓하시오."

 

조선말기 환곡(還穀), 포흠(逋欠) 따위 각종 폐단을 지적하며, 1862년 진주농민항쟁을 일으킨 유계춘이 한 말이다. 정치인을 탓하지 말고, 인민 스스로 주체가 되라는 유계춘의 말은 200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 심장을 향한 도전이다.

 

2009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몇몇 사람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가슴에 안고 더 나은 조선, 아니 조선을 무너뜨리고 또 다른 나라를 세우고자 했던 11명을 불러내 당신들의 후손들이 세운 '대한민국'을 말해주기를 바랐고, 그들이 모여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되기를 바라는 토론을 했다.

 

11명에는 '변절자'로 찍혀버린 신죽주, 사림 거두로 개혁의 상징인 정암 조광조, 허난설헌과 허균, 서얼출신 실학자 박제가, 진주농민항쟁 주모자 유계춘, 연암 박지원, 기축옥사 때 희생당한 '공화주의자' 정여립, 서민 구제에 앞장선 토정 이지함, 중인 출신의 개화파 선구자 오경석이 있다. 그들이 모여 토론한 내용을 담은 책이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논하기 전에 자신들의 나라 '조선'을 말한다. 토정 이지함은 조선 건국 정당성에 대하여 "조선 건국으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양반제와 명에 대한 사대주의"라고 생각한다"면서 "조선 건국으로 말미암아 국토가 좁아지고 자주성이 상실되었고, 요동을 향한 원대한 꿈은 반도에 갇혀 더 이상 하늘을 날 수 없는 용이 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사대주의가 조선 건국의 정상을 훼손했다고 갈파한 것이다. 그리고 양반제와 여성차별 따위가 조선의 문제라고 했다.

 

조선은 개혁할 기회가 없었던가? 우리가 알기로 몇 번의 기회가 있었다. 조광조와 광해군, 실학자들, 그리고 장길산과 홍경래, 진주농민전쟁이 예다. 그럼 조선의 논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유창한 외국어 실력을 가졌지만 신분제에 앞에 무릎을 꿇은 오경석은 숙종때 일어났던 장길산 봉기를 가장 안타까워 하면서 "17세기 이후 어려워진 사회 조건 속에서 하류계층에 속했던 서얼과 승려, 그리고 농민들이 힘을 합해 세로운 왕조를 세우고자 한 모반사건"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 시간이 다시 주어지면 장길산 모반사건을 성공시키고 싶다면서 말한다.

 

"장길산의 모반은 반드시 성공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랬다면 진정 백성이 주인인인 나라가. 우리나라의 현대화가 좀 더 빨라지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지워지지 않습니다."(79쪽)

 

그리고 민주공화정을 세우고자 했던 정여립은 "민중이 이 땅의 주인이 되는 대동세상을 꿈꾸었다"면서 "기축옥사가 성공했다면 광주민주화항쟁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실패한 개혁자 조광조는 자신이 섬겼던 군주가 아니라 '중종' 아니라 '광해군'이었다는 성공한 개혁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이들은 한미FTA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서얼 출신 실학자 초정 박제가는 개방파이지만 한미FTA를 보니 "노예계약이 따로 없더군여. 누가봐도 확연한 주종구조이거널, 자유무역? 허허허! 지나가던 개가 다 웃고 자빠질 일이지요"라고 맹비난했다.

 

성호 이익(李瀷)의 학풍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 인문지리학 연구 선구자로 <택리지>를 지은 이중환은 "조선에서 모든 정책이 사대부 머리에서 나와 사대부에게나 좋은 쪽으로 만들어졌던 것처럼 FTA도 특정 계층에게나 좋을 법한 무역협정"이라고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무엇보다 개방 개혁을 주창했던 박제가와 이중환의 입에서 한미 FTA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새로웠다.

 

이제는 '대운하'로 이어진다. 정여립은 "중국의 수나라가 망한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수양제의 무리한 군비확충과 대운하로 인한 엄청난 공역에 시달린 백성들이 나라를 등졌기 때문이라고" 경고했다.

 

신숙주까지 "무릇 나라의 정책을 세우고자 할 때는 반드시 백성, 국민의 살림살이에 이익이 되는지, 십 년, 백 년 뒤에도 손색이 없는 철저하게 따지고 나서 실행해야 되는 것이오"라고해 몇 년 만에 해치워버리려고 하는 2009년 대한민국 지도자에게 경고했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한다. 이지함은 "나라를 이루는 절대 다수에 속하는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은 그들이 탓이 아니라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면서 "그저 선심 쓰듯 툭 던지지 말고,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공화주의자 정여립은 "언론이 바로 서지 못 하면 억울하게 죽어갈 이들이 늘어날 것라"면서 "언론이란, 역사를 기록한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어떤 지도자들은 "조선보다 더한 " 언론 통제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허균의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창조적 상상력은 현재 대한민국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대안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현실을 보면 참으로 딱합니다. 창조적 상상력을 만들어낼 만한 구조가 아닙니다. 아이들의 상상력을 말살하는 교육에다 상상력의 근저가 될 수 있는 독서를 하는 이가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261쪽)

 

과연 조선보다 대한민국 낫다고 할 수 있을까? 11명의 논객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어보면 대한민국보다 조선이 더 나은 점이 있다. 상상력 빈곤, 인민을 위하지 않고, 기득권을 위해 배를 채우는 일, 언론자유가 어떤 때는 조선보다 못하는다는 정여립의 경고는 우리가 반추해야 할 말들이다.

덧붙이는 글 |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 서디창 우리역사모임 지음 ㅣ 왕의서재 펴냄 ㅣ 13,000원


조선의 논객들 대한민국을 말하다

서디창 우리역사모임 지음, 왕의서재(2009)


태그:#조선논객,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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