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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골짜기에서 만난 연등약수, 이런 약수 보셨나요?
 불암산 골짜기에서 만난 연등약수, 이런 약수 보셨나요?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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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이건 연등 약수잖아? 이런 약수는 난생 처음 보는 걸"
"어라, 정말 연등에서 쏟아져 내리는 연등 약수네, 누가 이런 기발한 발상을 했지?"

일행들이 이구동성으로 감탄을 금치 못한다. 불암산 골짜기에서 만난 아주 희한한 모양의 약수 때문이었다. 이 약수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려 있는 줄에 매달린 연등에서 떨어져 내리도록 만든 아주 특이한 약수였다.

9월 8일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경계에 있는 불암산을 올랐다. 산행은 지하철 4호선 종점인 당고개역에서 내려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덕능고개' 북쪽 능선길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산속 마을을 벗어나 중턱에 오르자 저만큼 위쪽에 연등 한 개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모습이 바라보인다. 절이나 암자인가보다 하고 다가가보니 어느 무속인이 치성을 드리는 곳이다. 왼편 움막에는 무속인이 거주하는지 강아지 한 마리가 나그네를 보고 짖어대기 시작 한다.

서울 북동부 시가지와 하늘 풍경
 서울 북동부 시가지와 하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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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무속인의 치성소 입구풍경
 어느 무속인의 치성소 입구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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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막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는 비닐과 비닐천막으로 조잡스럽게 지어진 치성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입구에는 오색 천을 말아 나뭇가지에 걸어 놓았고, 마당 안쪽에도 치성단이 차려져 있었다. 비닐천막으로 하늘을 가린 안쪽에도 치성단과 함께 남녀의 형상을 한 자그마한 인물상이 세워져 있었다.

불암산 오르는 길 풍경과 별내면 배밭들을 밀어버린 처참한 풍경

바위투성이 산을 올라 능선에 이르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능선에서 바라보는 불암산 수락산과, 북한산 도봉산 사이 서울 동북부 일대와 맑은 하늘에 두둥실 떠오른 뭉게구름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능선길을 따라 오르는 길에서는 버섯으로 뒤덮인 죽은 고목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조금 더 올라가다가 왼편에 불쑥 솟아오른 바위봉우리에 올랐다. 그런데 산 아래 남양주시 별내면 쪽 풍경이 예전 모습이 아니다. 서울 외곽순환도로가 지나는 좌우 평야지대가 온통 발가벗겨진 모습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유명한 먹골배 밭이 뒤덮여 있던 지역이다.

"인간의 탐욕이 또 아름다운 자연을 여지없이 까뭉개버렸구먼."
"그러게 말이야. 저 골짜기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 푸르디푸른 배밭이었는데 말이야."

일행들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그 푸르던 골짜기 평야지대가 온통 파헤쳐져 택지로 개발된 모습은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이었다. 불암산만 덩그렇게 남아 있는 모습이 섬처럼 외로운 풍경이었다.

버섯으로 뒤덮인 고목 한 그루
 버섯으로 뒤덮인 고목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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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속인이 만들어 놓은 치성단과 연등, 술병들
 무속인이 만들어 놓은 치성단과 연등, 술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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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좀 봐? 자연은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인데..."

또 다른 일행이 말을 잇지 못한다. 정상으로 향하던 발길을 골짜기 아래로 돌렸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골짜기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골짜기에 이르자 두 눈을 의심케 하는 풍경들이 나타났다. 골짜기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는 움막들 때문이었다. 움막은 한두 채가 아니었다. 무려 여섯 채. 어떻게 불암산 골짜기에 저런 움막들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산불 위험이 있는 무속인들의 움막과 치성단들이 지저분한 골짜기 풍경

그런데 움막들 근처엔 여기저기 치성을 드리는 치성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움막 근처에 가스통이 보이기도 하고 둥그런 함석 굴뚝이 세워져 있는 움막도 보였는데 움막 옆에 치성단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 같이 무속인들의 움막인 것 같았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한낮이어서 모두 움막 안에 들어가 있거나 산 아래 마을에서 올라오지 않아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치성단의 모습은 비슷비슷했다. 어느 치성단엔 한두 개의 연등이 걸려 있기도 하여 어느 사찰에서 만든 것인가 했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맨발에 윗옷까지 벗고 반바지만 입은 채 걷는 노인
 맨발에 윗옷까지 벗고 반바지만 입은 채 걷는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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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산 위에 피어오른 뭉게구름
 불암산 위에 피어오른 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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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바위 위에 작은 단을 만들어 놓고 촛불을 켜놓을 수 있도록 했으며, 작고 낮은 돌탑들을 쌓아 놓기도 하고, 소주와 막걸리 병들이 놓여 있기도 했다. 어느 치성단 옆에 있는 커다란 바위 밑에는 돌과 시멘트로 입구를 쌓고 문을 만들어 창고를 만들어 놓은 모습도 보인다.

"이 골짜기는 무법천지로구먼, 저렇게 지저분한 치성단들에 촛불을 켜놓고, 움막집에서는 가스를 사용하기도 하고, 마른 나무로 불을 때기도 하는가본데 산불위험도 클 것 같지 않아?"

일행들은 무속인들의 움막과 치성단들이 무척 위험해 보이는가 보았다. 사실이었다. 움막은 천막과 허술하게 목재로 얼기설기 지은 위에 비닐 같은 것을 덮은 모습이어서 화재에 너무나 취약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렵게 살아 남은 먹골배밭
 어렵게 살아 남은 먹골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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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밭을 밀어버리고 개발중인 택지와 동쪽 하늘풍경
 배밭을 밀어버리고 개발중인 택지와 동쪽 하늘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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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짜기가 무속인들의 요람인가 봐? 남양주시나 관계 산림당국에선 알고도 방치하는 걸까? 아니면 전혀 모르고 있는 걸까?"

서울과 남양주시 사이에 걸쳐 있는 불암산의 한 골짜기에 흩어져 있는 무속인들의 움막과 치성단은 정말 불가사의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골짜기를 내려오자 눈앞이 휑하다. 중장비로 밀어붙인 옛 배밭들이 처참한 모습으로 파헤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 이런 길을 걸을 수는 없잖아. 저 오른편 능선을 넘어가도록 하지?"

황폐한 모습의 벌판을 걷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지 일행들이 오른편 불암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을 넘어가자고 한다. 능선 아래 이르자 작은 배밭 하나가 나타난다. 모두 밀어버린 배밭들 중에서 힘겹게 살아남은 배밭이었다.

숲속에 떨어진 알밤
 숲속에 떨어진 알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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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암사 골짜기 입구 냇가 불럭담벽에 쓰여 있는 '불암산을 가꾸자'
 불암사 골짜기 입구 냇가 불럭담벽에 쓰여 있는 '불암산을 가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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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을 넘는 길에서는 맨발에 윗옷까지 벗고 반바지만 입은 채 걷고 있는 노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나 이 능선도 맨 아래쪽은 역시 파헤쳐진 개발지였다. 다시 능선 하나를 더 넘기로 했다. 그 능선을 넘는 길에선 몇 개의 알밤도 주울 수 있었다.

군부대 철조망을 옆으로 끼고 걸어 능선을 넘자 불암사 골짜기가 나타났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개울가 불록 왼편 담장에는 '불암산을 가꾸자'는 글씨가 크고 선명하게 쓰여 있었다. 그러나 지저분한 모습에 산불위험까지 있는 무속인들의 움막과 치성단이 있던 골짜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불암산, #무속인, #연등약수, #이승철, #뭉게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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