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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두비> 카림에게 남은건 임금체불, 미등록체류자, 차별 그리고 이별이다.
▲ 영화 <반두비> 카림에게 남은건 임금체불, 미등록체류자, 차별 그리고 이별이다.
ⓒ 인디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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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헤어지자고?"
"트리샤, 나도 힘들어. 이번엔 무조건 돈 받아 낼게."
"약속해"

전화기 앞에 선 남자. 방글라데시에 있는 아내와 통화를 끝냈지만 사랑의 기쁨보다 자신의 무력함에 지친 표정이다. 그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기댈 수 있는 희망은 1년 간 임금체불하고 도망간 사장의 연락처 뿐. 그는 어렵게 사장을 찾지만, "약속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밀린 월급 대신 물세례를 받는다.

이 이야기는 영화 <반두비>에 나오는 주인공 카림의 이야기이다. 열심히 일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건 임금체불과 차별, 미등록체류자, 이별 뿐이다. 누가 카림의 사랑을 빼앗았을까?

사랑하기에 너무 먼 당신

A씨(버마·42)는 버마에 결혼을 약속한 동갑내기 연인이 있다. 그는 2000년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왔지만 여자 친구는 데려올 수 없었다. A씨가 한국에서 일하는 기간은 더 길어졌고, 그는 여자 친구와 한국에서 함께 살 꿈을 꿨다. 그는 돈을 모아 200만 원, 200만 원, 100만 원 세 차례 브로커에게 돈을 줬다.

여느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 가족이나 연인을 데려오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브로커였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세 번의 사기. 결국 A씨는 사랑하는 연인도 볼 수 없었고, 돈도 잃었다. 그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통화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며, "내년 쯤 다른 나라로 가서 그녀를 만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또, 올해 초 결혼한 K씨(베트남·30)는 베트남에 아내를 두고 왔다. 그는 재작년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왔다가 이직 전 잠깐 베트남에서 결혼하고 돌아왔다. K씨는 5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지만 송출비용으로 브로커에게 지불한 돈을 갚기 위해 다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K씨는 "돈을 다 채우려면 더 일해야 한다. 보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며, "비자기간이 끝나면 돌아가고 싶지만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혼의 꿈도 포기하고 매일 공장으로 향한다.

본국에 가족과 애인을 둔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일을 하지만 함께 살 수 없다. 고용허가제는 동반이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별도 비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비자도 관광비자나 고용허가제와 같은 단기비자 뿐. 이들이 한국에서 함께 꿈을 꾸고 살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주노동자라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P씨는 몇 달 전 한국여성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했다. 한국에서 8년을 살았지만 한국여성을 만날 기회도 여유도 없었다. 그는 "내가 이주노동자라서 거절한 것 같다. 난 미등록체류중이라서 불안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어렵게 마음을 열었는데..."라며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들은 이주노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김씨(직장인·25)는 "만약 남자친구가 이주노동자라면?"이라는 질문에 "생각해본 적 없다. 주변에서 자주 볼 수도 없고 일하느라 바쁠 것 같다. 서로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주노동자들끼리 연애하는 거 아니냐"고 답했다.

같은 질문에 석보경씨(대학생·24)는 "그건 정말 어려운 문제다. 좋아한다면 만날 수 있겠지만, 내가 만날 수 있는 나이 대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온 지 1, 2년 밖에 안 돼서 한국어를 잘 못한다. 또, 나이가 많은 이주노동자들의 경우 결혼을 했거나 본국에 애인이 있을 것 같다"며, "문화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영미권 사람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미디어를 통해 본 것들이 많아서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는 그렇지 않다. 주변에 몽골 이주노동자와 만나는 친구는 유목민족의 특성과 성문화에서 차이를 느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고 한국문화에 익숙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의 시선 속에 살고 있다. 피부가 검은 사람이라고 해서 차별받고, 가난한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는 편견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똑같이 영어를 잘해도 동남아시아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정해진 사업장에서 3D업종 노동을 강요받는다. 방글라데시 출신 L씨는 한국에 8년을 살았어도 6년 넘게 한국인 친구가 한 명도 없었던 반면, 미국 출신 R씨는 영어학원에서 일자리와 한국인 애인을 쉽게 만들 수 있었다.

90년대에 10대나 20대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이 지금은 20~40대가 되었다. 그들은 젊은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고 있지만 '사랑'을 꿈꾸기에 어려운 장벽들이 많다. 한국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보다 공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고,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에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도 데이트 비용이 필요하고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 교통비도 만만치 않다.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서 '사랑'의 감정을 지닌 사람이기보다 장시간 말 잘 듣는 '노예'로 살기를 강요당해왔다.

이주노동자의 애인으로 산다는 것

J(26)씨는 국제 NGO활동을 하다 연인을 만났다. J씨가 귀국하기 한 달 전, 애인은 이주노동자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애인은 지방에 있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장거리 연애하고 있다. 이들은 멀리 있어서 한 달에 두 번 이상 만나는 것도 어렵다. 그는 최근 언어 한계와 미래에 대한 방향이 엇갈리면서 오해가 더 늘었다고 한다. J씨는 "그 사람이 고용허가제 비자가 끝나면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어서 한국어를 잘 배우려하지 않는다"며, "둘 다 각자 나라의 언어를 조금 밖에 못해서 깊은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오해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 "아직 대학생이라서 돈도 없고 미래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K(31)씨는 두 달 전부터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애인은 90년대 초반에 이주노동자로 왔고, 고용허가제도가 생기면서 미등록체류자가 됐다. K씨는 지인의 소개로 알고 지내다가 최근 서로에게 좋은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 그녀는 "예전부터 그 사람이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모습을 보고 다른 점들을 발견했다"며, "내 이상형은 함께 공부하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인데 지금 그 사람을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가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어려움들도 많았다. K씨는 "친구가 강제출국 당한 적이 있다. 친구도 걱정됐지만 남자친구 생각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침에 전화가 왔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 갑자기 떠나버릴 것 같아서 불안하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어도 남자친구는 여전히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적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하나의 선물"

이주노동자와 한국여성이 결혼하면 따라다니는 이야기들이 있다. '국적 때문에 결혼한 것 아니냐?', '본국에 부인이 있는 줄 모르고 결혼했다', '초혼 이주노동자 남성과 재혼하는 한국여성', '그렇게 좋으면 너네 나라 가서 살지 왜 한국에서 사느냐?' 등 국적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들이다.

H씨(인도네시아·36)는 몇 주 전 인도네시아로 강제출국 당했다. 10년 넘게 이주노동자와 학생으로 살았지만 그가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오랫동안 교제하던 한국인 여자친구와 결혼하거나 5년 후에 들어오는 것이다. H씨는 "한국은 내 고향이고 친구들도 그곳에 다 있다. 한국에 정말 가고 싶다. 결혼하면 갈 수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결혼은 장난이 아니다"며, "결혼은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지금 바로 여자친구와 결혼하거나 위장결혼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했다.

또, N씨(네팔·38)는 5년 만에 한국여성을 만나 교제하고 있다. 4개월 째 교제를 하고 있지만, 나이가 30대 후반이라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국적은 피해갈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국적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다"며, "국적보다 내가 한국에서 살 자격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적에 대한 오해 뿐 아니라 10년 넘게 한국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산업에 기여한 것들을 인정받아서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N씨는 "내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우리가 사람으로 인정받는 날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주변 편견을 사랑으로 극복한 경우도 있다. 까미니(스리랑카·37)씨는 산업연수생 비자로 들어왔다가 미등록체류자가 됐었다. 그러다 그는 파이프 공장에 들어갔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당시 공장 사장이었던 아내는 그의 성실함에 반했고 서로 마음을 열었다.

2004년,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지금은 8개월 된 아이가 있다. 까미니씨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것은 주변의 시선보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국적을 얻으려고 결혼을 한 건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하고 싶었고, 사랑하면 국적도 줄 수 있는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 후, 귀화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내와 아이가 함께 스리랑카에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귀화는 안하기로 했다.

그는 아내가 운영하던 공장을 접고, 낮에는 공장에서 밤에는 12시까지 슈퍼에서 일을 한다. 까미니씨는 "밤 늦게 들어가면 아이가 자고 있어서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지만 행복하다"며,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두 사람이 사랑한다면 국적도 주변사람들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주변에도 한국여성과 결혼한 친구들이 많은데 잘 살고 있다"고 응원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이주노동자의방송(MWTV)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반두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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