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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와 쉴라의 두 번째 만남을 다루고 있는 <한 아이2>는 전작 <한 아이1>과 15년의 간극을 유지하고 있는 책이었다. <한 아이1>도 그렇고 <한 아이2>도 그렇고 출간 계획이란 없는 그저 단순한 추억 되새김질에 불과했는데, <한 아이1>가 사회에 불러일으킨 파장은 상당히 대단했던 것 같다.

 

대부분의 독자가 그녀에게 "쉴라는 이후에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왔다고 한다. 만약 당신도 <한 아이1>을 보면서 '길들여짐'을 배운 어린 소녀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했다면, 바로 이 책을 펼쳐보길 바란다. 우리는 운이 좋게도 15년 터울의 이야기를 곧바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사실에 감사하면서 책을 펼쳐보자.

 

<한 아이1> 그리고 7년 후...

 

특수학교의 추억을 뒤로 하고, 토리는 쉴라와 같은 장애아를 보살피기 위한 전문적인 지식 습득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제도권의 틀에 박힌 수업방식은 이미 실전경험을 쌓은 그녀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진 못했다. 공부를 위해 남자까지 포기했던 그녀로서는 상당히 손해 보는 기간이었으나 그래도 어찌하리오. 현실이 다 그런 것일진대…….

 

어떻게 저떻게 해서 과정을 수료한 후, 그녀는 쉴라를 만날 수 있는 지역 근처에 일자리를 얻었다. 그렇게 해서 토리와 쉴라는 7년만의 재회를 하게 된다. 쉴라는 어떻게 변해있었을까? 모두가 궁금해 하는 그 물음에 간단히 대답해보자면 쉴라는 파마머리를 한 매우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춘기의 소녀로 변해있었다.

 

쉴라는 토리가 떠나간 이후에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진 못했다. 마약을 끊지 못하고 있던 그녀의 아버지 때문에 몇 번의 위탁양육을 거치고, 어린이집 생활을 해야만 했다. 분명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미래는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그녀의 우수한 두뇌를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으면서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그녀가 공부하고 싶은 것을 맘껏 공부하고 있는 미래였지만, 열악한 환경이 주는 불행은 아직까지 그녀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토리와 쉴라, 두 사람의 기억 차이

 

토리는 기쁜 마음으로 7년 전의 추억을 담은 <한 아이1>의 초고를 쉴라에게 읽어보게 했다. 그런데 그 책을 읽고 난 후, 쉴라의 반응은 토리의 예상과는 달리 미지근했다. "7년 전이면 제가 6살 때 이야기인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라고 쉴라는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쉴라는 토리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일화들을 꺼내어 놓는데, 토리는 옛날의 추억을 공감하고 기뻐하길 원했기에 두 사람의 시각 차이를 인식하는 순간 토리는 어색함을 느껴야했다.

 

<망각의 힘>이라는 책에서는 "가슴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을 과거 그대로 간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현재 그것을 다시 찾아가는 것은 실망만을 불러일으키는 바보짓"이라고 했는데, 어쩌면 토리와 쉴라의 추억은 <망각의 힘>의 말처럼 과거로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나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과거와 다를 수밖에 없는 현재에서는 과거의 기준점을 걷어버리고 새로운 벽돌을 쌓아야 하는 것인데, 둘 사이의 관계는 동료의사 제프가 말한 것처럼 둘 다 7년 전의 상황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과 쉴라는 둘 다 똑같은 병에 걸려있다는 거예요. 그 애가 기억하는 거라곤 자신한테 절대로 화를 안 내는 훌륭한 선생님이었는데, 이제 당신이 그냥 평범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깨닫자 당황한 거예요. 그렇지만 헤이든 당신도 똑같아요. 당신이 기억하는 쉴라도 쉴라가 아니라 책 속의 여섯 살짜리 어린애죠. 그게 지금 그 애에 대한 당신의 행동을 지배하는 거구요." (81쪽)

 

과연 쉴라는 기억을 못하는 것일까?

 

쉴라는 토리와 함께 7년 전의 상황과 비슷한 교육시설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쉴라는 과거의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비록 희미하긴 하지만 자신의 과거를 되살려낸다. 엄마에게 버림받고, 술과 마약에 빠진 아빠와 살았고, 동네 꼬맹이를 죽일 뻔 했고, 삼촌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과거의 수렁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선생님과의 추억을…….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을 탐하려고 하고, 욕하고, 밀어내고 있었지만, 5개월 동안의 짧은 만남은 그녀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주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떠나고 나자 꿈 같이 행복했던 순간은 정말로 꿈과 같이 사라지고, 과거와 같은 시간이 다시 이어졌다. 

 

"왜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행복을 안겨주고 떠났나요? 당신이 사라지고 난 후 나는 그 행복과 다시 찾아온 불행 속에서 더욱 힘들었어요. 그래서 차라리 모든 것을 잊자고 다짐했어요. 잊자고 다짐하면 모든 것이 정말로 잊혀지는 것 같았거든요."

 

쉴라에게 행복했던 그 6개월이 희망고문이었다는 사실. 우리는 이런 비극을 상상이라도 했을까? 비록 자신의 친구에게 쉴라를 맡겨놓고 떠났지만, 정상적인 생활은 잠시 그녀의 아버지는 마약에 빠진 사람이었으며,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쉴라는 기억을 못한 것이 아니라 기억자체를 거부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 자체를 느끼면 미쳐버릴지도 몰랐기 때문에……. '남들은 좋은 부모 밑에서 행복하게 사는데 우리엄마는 도망갔고, 교도소에 들락날락 거리는 아빠는 맨날 나한테 밤마다 남의 성기를 빨게 하고……. 아 이렇게 불행한 나에게 그때의 행복은 너무 견디기 힘든 고통이야.' 아마도 쉴라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녀는 울부짖는다.

 

"젠장. 그들은 어디 있죠? 우리엄마는 어디 있죠? 그 문제라면, 우리 아빠는요? 나한테 이런 일을 해주는 게 왜 항상 선생님 같은 사람들이냔 말예요? 왜 우리 부모는 한 번도 날 돌봐주지 않죠? 내가 그렇게 나쁜 앤가요?" (317쪽)

 

쉴라는 행복했던 기억을 잊기 위해. 아니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떠난 엄마의 기억과 선생님의 기억을 교묘하게 결합시켜 놓았다. 엄마가 그녀를 차도에서 밀어버린 그 순간을 선생님과의 기억 속에 위치시키는 것으로 5개월간의 기억을 난도질해 놓고 난 후에야 그녀는 "행복한 기억은 없었어. 나는 오로지 버림받았을 뿐" 이라는 자기 체념의 상태로 빠져든 것이었다.  

 

Tiger's Child, 쉴라

 

그러나 쉴라는 보통아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호랑이처럼 강한아이였다. 그녀는 힘에 부쳐했지만 자신의 어깨에 있는 짐을 꿋꿋하게 견뎌내고 있었던 아이였다.

 

비록, 선생님과의 재회로 예전 기억을 되살려내는 과정에서 되살아나는 추억 때문에 힘이 들었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일말의 희망을 위해 엄마를 찾아 나섰던 결과는 허무했지만 결국 이 호랑이 같은 소녀는 자신에게 관련된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선생님요. 엄마가 날 떠났다는 것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어요. 어쩌면 일어났어야 했을 일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게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요. 또 그때 선생님은 내가 용서하고 흘려보내야 한다고도 했어요." (326쪽)

 

"이제 그냥 엄마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는 걸 알겠어요. 내가 그 문제의 일부였다는 건 그냥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는 것도요. 그리고 우리 아빠의 경우도 마찬가지겠죠. 어쨌든 전 이렇게 생각해요. 그걸 뛰어넘을 수는 없다. 밑으로 지나갈 수도 없다. 돌아갈 수도 없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려고 해왔지, 그러니까 갈 데까지 가보는 게 더 낫겠다고요. 이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요" (327쪽)

 

"전 선생님이 흘려보내라고 했던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봤어요. 받아들이고, 용서하고, 흘려보내라고 하셨죠. 받아들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용서까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흘려보내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어요. '흘려보내는' 것이 뭘 뜻하는지 생각해보려고 해도 그냥 앞을 보고 살아가라는 뜻인가보다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과거보다는 미래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거요." (328쪽)

 

<한 아이>가 내게 준 것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깨달음 스스로 찾아낸 쉴라의 여정은 나에게 치밀어 오르는 슬픔을 불러 일으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눈물샘을 자극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지만, 결국 그들을 모두 용서하고 흘려보낼 수 있는 그녀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내 스스로도 그녀처럼 행동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얻었다.

 

하지만, 우리가 쉴라의 이야기를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생각해봐야 할 문제점은 산더미 같이 많이 쌓여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모두 쉴라 같은 것은 아니다. 쉴라의 경우는 특별한 경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현실의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사랑에 굶주려있고, 보살펴주길 원하고 있다. 그들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사람들은 선생님이 아니라 그들을 탄생시킨 부모의 몫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당장 맞벌이에 힘들어 위탁기관에 맡긴 채 '모든 것이 잘 흘러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면 이 책을 보면서 부모의 사랑이 왜 아이들에게 절실한 것인지 깨닫길 바란다. 부모가 스스로가 가방끈이 짧아서 교과서의 내용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자책하면서 학원에다가 무작정 떠넘기지는 말자.

 

공부를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맺어지는 교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미 부모가 스스로 책을 읽고 공부하려는 마음가짐이 자식을 공부하게 만들고 성공으로 이끈다는 사실은 많은 책에서 이미 증명되고 있다. 그러니 힘들지만 조금이라도 더 자녀와 함께하시기를 당부해드리고 싶다. 토리와 같은 선생님은 그렇게 많지 않다. 환상을 걷어버리시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아이 2 - 7년 후 다시 만난 쉴라와 헤이든, 그리고...

토리 헤이든 지음, 이수정 옮김, 아름드리미디어(2008)


태그:#한 아이2, #토리 헤이든, #아름드리미디어,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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