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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서민 행보'에 나선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찾는 곳이 재래시장이다. 재래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들도 서민이니 재래시장을 찾는 것 자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왕 서민들을 위해 일하려면 용산철거민 참사 현장은 아니더라도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을 청와대 참모진들과 만남이라도 가져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않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만두를 먹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남대문 시장을 방문하는 자리에서 만두를 먹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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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이 10일 남대문시장을 찾아 추석 민생과 물가상황 따위를 살펴봤다고 언론들은 보도하기 바쁘다. 얼마나 서민들을 생각했으면 남대문시장 내 새마을금고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었다. 청와대 지하에서 남대문 시장 지상으로 나왔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나온 이 대통령은 추석민생.물가안정 합동대책을 보고받고 "전반적으로 물가가 안정돼 있다고 하지만 아직 서민들의 체감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면서 "전 부처가 힘을 모아 서민생활과 물가 안정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물가 걱정을 하는 것은 좋지만 지난해 이른바 'MB물가'가 오히려 더 올랐던 기억나 왠지 마음이 부담스럽다.

또 이 대통령은 한 만두가게에 들러 만두를 사먹었고, 한복가게, 채소 노점상, 꿀타래 가게에 들러 손녀에게 줄 한복과 무화과, 고추, 꿀타래 등을 전통시장 온누리상품권으로 구입하여 서민 행보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서민 행보에 감동을 받았는지 사람들도 구름같이 모여 사진을 찍느라 대통령 행보가 50분이나 늦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남대문 시장에는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 재래시장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 재래시장도 재래시장 나름인 것이다. 남대문 시장과 크기에서 비교도 안 된다. 점포 수가 지금은 50개가 안 된다. 재래시장이 한창일 때는 200개가 넘었다고 한다.

문을 연 점포가 하나도 없다. 재래시장 현실이다
 문을 연 점포가 하나도 없다. 재래시장 현실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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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4월에 이사를 왔으니까 이제 9년이 넘었다. 그 때만 해도 점포가 이렇게까지 비지는 않았다. 사진을 보면 문을 연 점포가 아예 없다. 남대문 시장은 그래도 대통령이 오니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렸다고 하지만 우리 동네 재래시장에는 대통령이 와도 구름같이 몰려들 사람도 없었을 뿐더러, 한복가게가 없으니 한복을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

얼마나 상권이 형성되지 않았는지 시장 골목에 형광등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이 골목 바로 위가 우리 집이다. 시장은 시끌벅적해야 한다. 사람이 있어야 장사할 마음이 들어 힘들어도 내일은 더 잘 될 것이라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형광들 불빛 하나, 아니 불빛이 있어도 형광등 하나가 겨우 힘겹게 불빛을 비추고 있다.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1층 시장 골목 낮인데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없어 어둡다
 1층 시장 골목 낮인데도 장사하는 사람들이 없어 어둡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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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시장 골목 오래된 형광등 하나가 힘겹게 빛을 비추고 있다.
 1층 시장 골목 오래된 형광등 하나가 힘겹게 빛을 비추고 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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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에 이사올 때 우리 옆 집은 가구가게였다. 주인이 장사를 참 잘했다. 점포 크기도 100평이 넘었다. 하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주인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면서 점포 크기도 줄어들었다. 크기가 줄어도 손님이 없으니 세 번째 주인은 결국 문을 닫았다.

가구가게가 사라진 자리에 몇 해 전 '바다 이야기'가 들어왔는데 그만 문을 여는 순간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져 그 주인은 투자를 해놓고 그만 문을 닫았다. 가구가게에서 바다이야기, 그리고 문을 닫고 나서 더 이상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100평이 넘었던 점포는 이제 30평 정도 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 공간을 자전거 세우는 곳으로 만들었다. 엄청나게 큰 자전거 주차장인 셈이다.

가구가게였던 곳이 이제는 텅 비었다. 우리 가족 자전거 주차장되었다.
 가구가게였던 곳이 이제는 텅 비었다. 우리 가족 자전거 주차장되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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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리 동네 재래시장에 유일하게 장사를 하는 곳이 있는데 식당이다. 1층 앞쪽에 식당이 4-5곳이 있다. 해거름과 저녁 때가 되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물론 이 식당 중에도 잘 되는 식당과 잘 안 되는 식당이 있다. 200개가 넘었던 점포가 이제는 50개도 안 되고, 그 점포들도 손가락을 꼽을 만큼만 겨우 장사를 하고 있다.

시장 1층 앞쪽에는 식당이 4-5곳이 있는데 유일하게 장사가 된다.
 시장 1층 앞쪽에는 식당이 4-5곳이 있는데 유일하게 장사가 된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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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을 산 우리 집이 우리 재래시장에서는 토박이와 같다. 우리보다 먼저 산 분은 시장 귀퉁이에서 구멍가게를 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다. 9년 전에는 시장 관리사무소에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채소가게 아주머니가 시장을 관리하고 있다. 한 분 두 분 떠난 자리에 더 이상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재래시장를 찾아 서민 행보를 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재래시장, 사진을 찍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드는 사람 때문에 대통령 일정이 50분이나 늦어지는 곳이 아니라 오래되어 희미한 빛만 겨우 비추는 형광등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우리 동네 재래시장도 돌아보는 대통령이 될 수는 없을까?


태그:#재래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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