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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휴업을 접은 건 지난 5월이다. 지난해 미국 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 세계 경제 공황 여파에 따른 실물 경기 침체와 잇따른 기업 도산으로 안방 살림까지 타격을 받아 온 게 사실이다. 지금은 그나마 해외 수주나 국내 주문이 생겨나 한숨 돌린 상황이지만 곧 있을 추석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단적인 예로 연봉 삭감이다. 재직 중인 회사가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상여금을 200%나 삭감했고, 각종 수당은 전액 혹은 50% 가까이 줄었다. 회사에서 1년에 받는 연봉이 2000만원이라면 350~400만원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물론 그 상황에서 정리해고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지만, 최근에 물가 돌아가는 걸 보면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집중' 관리한다던 MB물가, 안 오른 게 뭔가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이마트용산점에서 장을 보고 있는 시민.
 서울 용산구 한강로 이마트용산점에서 장을 보고 있는 시민.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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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과 한 달에 한 번 가는 마트 물가가 단적인 예다. 가격을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돈 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우유부터 치즈, 야채 가격까지 토끼 뜀 뛰듯 껑충 올랐다. 

이는 각종 통계 지표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가계 지출에서 엥겔계수가 점점 높아져 올 들어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엥겔계수는 총 가계지출액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율로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높게 나타난다. 소득이 일정하거나 줄어든 가구도 줄일 수 없는 게 식품비다. 그런데도 회사나 정부는 이 문제의 심각성은 외면한 채 계속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년도 4인 가구 기준 최저생계비는 올해보다 고작 2.75% 오른 136만3091원이다. 이 제도가 도입된 지난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인상률이다. 앞서 내년 최저 임금 역시 외환위기(1998년) 이후 가장 낮은 2.75%로 확정됐다. 장바구니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데 고작 MB물가나 관리하겠다고 정부는 난리다. 그래봐야 통제가 안 될 건 분명하다. 이미 대형마트 시장은 물건 가격을 5~20%까지 인상한 상태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했는지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관료들을 이끌고 남대문 시장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현장에서 "즐거워야 할 명절이 서민에게 고통으로 다가서서야 되겠느냐"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한다. 가식적이다. 내 눈엔 포퓰리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지난번 정부가 관리하겠다고 공언한 MB물가 품목 중 오르지 않은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런 즉흥적인 쇼는 서민들을 기만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된다.  

임금 상여금 다 깎인 마당에 임신 소식... 그래도 희망은 있겠지?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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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V자 회복세라고 점치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지만 일선 기업들은 그동안 삭감한 수당이나 상여금을 좀처럼 올려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일하고 있는 회사가 단적인 예다.

이미 직원을 15명가량 잘랐고, 상여금을 200% 삭감했으며, 각종 보너스도 다 줄였다. 1년간 시행이라는 단서를 달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내년 말까지 이런 방침이 이어질 것이란다. 정말 우울하다. 내야하는 세금은 계속 오르고 돈 들어갈 곳은 느는데 돈 들어오는 곳은 함흥차사니.

곧 다가올 추석은 또 어떡하나. 상여금은 어림도 없다. 몇몇 대기업은 실적이 좋아 상여금 등 돈 잔치를 한다고 하는데 대다수는 그렇지 못하다. 금고에 많은 돈을 쌓고 투자 여력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노동자 서민들의 상황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 문제다. 분명 공공 영역이 나서줘야 하는데, 이 나라 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엊그제 저녁 아내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나 임신한 거 같아"
"아 정말? 나는 아빠, 당신은 엄마가 되는 거야?" 

마음은 정말 기뻤다. 하지만 닥칠 현실을 생각하니 설상가상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한 건 크나큰 축복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삶의 모습을 생각하니 한숨부터 나온다. 아기 기저귀며 분유 값, 아내 병원비, 각종 아기용품 등 머릿속은 온통 아기가 생기면서 따르는 지출 항목뿐이다.

요즘 강남 아이들이 간다는 영어 유치원? 지금 내 형편에는 어림도 없는 얘기다. 결혼도 어렵게 했지만 정말 앞으로 살아가면서 가장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어깨에 팍팍 와 닿는다. 기뻐하는 아내 얼굴을 보며 아내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 주말에 아르바이트라도 나가 봐야 되겠어. 물가나 기름 값, 세금은 계속 치솟고 있으니 저축은 고사하고 당장 대출금 이자 내는 것도 빠듯하잖아."

그러자 집사람이 미소 지으며 말한다.

"그래도 우린 아직 젊잖아, 신혼 때 좀 더 아끼고 고생하자. 노력하면 잘 되겠지."

현실은 고달파도 내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다.


태그:#임신 , #연봉삭감 ,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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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세 자녀를 키우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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