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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런던대학교 정치경제학대학원 석사, 삼성증권 사장, 우리은행 행장, 2007 대선 한나라당 선대위 경제살리기 특위 부위원장 그리고 현재는 KB금융지주 회장. 이렇게나 잘 나가던 그가 금융계 CEO 최초로 금융당국에 의해 중징계를 받는 처지가 되었다.

 

승승장구하던 CEO에게 무슨 일이?

 

금융위원회는 지난 9일 제16차 정례회의를 개최하여 전 우리은행장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에 대해 3개월 직무정지 징계를 확정했다. 6월 초 우리은행에 대한 종합검사를 진행한 금융감독원이 황 회장에 대한 제재조치를 건의했고, 금융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징계는 최종 확정되었다.

 

황 회장이 우리은행에 재임하던 기간(2005~2007년)동안 과도한 외형 확대와 무분별한 고위험 파생상품에 투자를 시도하여 우리은행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는 것이 징계 이유이다.

 

금감원의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수위는 4단계로 구분된다. '주의적 경고 - 문책경고 - 직무정지 - 해임권고'이다.

 

황 회장이 받은 직무정지는 향후 4년간 금융사 임원으로 선출될 수 없으며 재임 기간 중 받은 성과급의 30퍼센트를 반납해야 한다. 상당기간 활동이 중단되는 중징계에 해당한다.

 

황 회장은 우리은행 재임기간 중 CDO와 CDS 투자를 확대했다. CDO 61건에 10억 7000만 달러, CDS 13건에 4억 8000만 달러를 합쳐서 총 15억 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12억 5000만 달러(약 1조 5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투자를 통해 이윤을 얻기는커녕 원금의 약 81퍼센트를 날린 셈이다.

 

투자 원금 81퍼센트 날리고, 공적자금 지원받고

 

1조 5000억 원이라는 손실 금액이 우리은행에 미친 파장은 어느 정도인 것일까? 간단히 비교해보자. 우리은행의 2007년 영업이익이 2조 2159억 원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영업이익의 약 62퍼센트를 차지하는 금액이 날아간 것이다. 2008년 영업이익은 4752억으로 확 줄어들었는데, 이와 비교하자면 영업이익의 3배가 넘는 금액이 날아간 셈이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은행자본확충 펀드로부터 공적자금 1조 3000억 원을 지원받아야만 했다.

 

잘 나가는 금융인이 왜 이런 엄청난 손실을 가져오는 실수를 범했을까? 단지 운이 나쁘게도 세계 금융위기를 만났기 때문일까? 아니다. 황 회장은 CDO와 CDS가 이 정도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특히 황 회장이 투자를 지시한 상품들의 70퍼센트 이상은 중순위에 해당하는 메자닌 트란셰(Mezzanine Tranche) 등급의 채권이며, 손실을 대신 떠안아줄 후순위 비율도 매우 낮았다.

 

CDO(부채담보부증권)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중심에 서있던 상품으로 이미 많이 소개된 바 있다. 부채의 성격을 갖는 금융자산을 기초로 만든 금융상품 묶음을 주택저당증권, 회사채, 신용카드매출채권담보증권 등의 여러 가지 각종 채권과 묶은 것이다. 이렇게 여러 상품을 섞는 이유는 복잡하게 섞어서 위험도를 감추기 위함이다. CDS(신용디폴트 스와프)는 CDO와 같은 채권이 잘못될 경우 원금상환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는 보험과 같은 것이다.

 

은행이 예금으로 투자등급 최하위 파생상품에 투자

 

이 때 CDO를 구성하는 여러 개의 조각을 트란셰(Tranche)라고 부르는데 이것의 순위별로 각자의 몫을 받아가게 된다. 순위가 높은 상품은 안정성이 높고, 순위가 낮은 상품은 위험성이 높다. 즉, 원리금 분배를 할 때 높은 순위의 상품부터 배당받게 된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면 낮은 순위의 상품은 아예 배당을 못받고 쓰레기가 되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CDO가 높은 수익을 내면 일정 비율의 수익만을 가져가는 높은 순위의 트란셰와 달리 낮은 순위의 채권일수록 남은 모든 수익을 가져갈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낮은 순위의 상품일수록 '고위험-고수익'의 상품이다.

 

우리은행이 투자한 중순위의 메자닌 트란셰는 가장 낮은 순위보다는 높지만, 통상 BBB등급(투자등급 최하위) 이하의 기초자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해 문제가 되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대부분이 메자닌 트란셰였다. 게다가 CDO와 CDS는 일반 회사채와 달리 매매계약서상 유동성 부족으로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아서 중도 매각이 어렵고, 매각대상도 발행자로 한정되어 있다. 결국 황 회장은 안정성과 유동성이 낮아서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투자를 지시한 것이다. 왜? 잘 되었을 경우에 돌아올 '대박'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황 회장의 무리한 투자가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은행의 돈은 은행 자신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은행은 예금자들의 돈을 빌려서 운용하는 금융기관이다. 단지 수익성이 높다는 이유로 예금자들의 돈을 날릴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해서는 안되는 곳이다. 게다가 우리은행의 최대주주는 예금보험공사이며, 우리은행장은 정부가 임명하는 관료라 할 수 있다. 경영에 있어서 더 많은 책임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회장님도 잘못했으면 맞아야죠

 

확실히 이런 광경은 우리에게 매우 낯설다. 회사 경영자가 경영을 잘못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다니! 그만큼 우리 사회는 재벌 회장님을 대표로 하는 경영자들에게 관대했고, 실패한 경영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경영자들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비자금을 만들고, 도박이라 부르는 것이 합당할 위험한 투자를 할 수 있는 권리만 행사할 뿐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지지 않았다.

 

책임을 지는 것은 해고된 노동자들, 공적자금을 대주는 국민들이다. 경영자들은 그 후에도 승승장구이다. 황 회장은 이후 KB금융지주 회장이 되었고, 그와 함께 투자를 추진했던 당시 우리은행 이종휘 부행장은 지금 행장이 되었다. 황 회장의 후임으로 역시 파생상품에 투자해서 손해를 끼친 박해춘 전 우리은행장은 지금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되었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실패한 경영에 대해서도 명확한 책임을 부과해야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경영자들 역시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갑자기 '개그콘서트'의 한 대목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잘못했어요, 안했어요? 그럼 맞아야해요, 안맞아야해요?"

덧붙이는 글 | 이수연 기자는 새사연 연구원입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황영기징계, #우리은행장, #CDO, #C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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