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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비룡대교 부근에서 잠수복을 입은 119구조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지난 6일 새벽 갑자기 불어난 물에 실종된 야영객 6명중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는 3명의 시신을 찾고 있다.
 8일 오전 경기도 연천군 임진강 비룡대교 부근에서 잠수복을 입은 119구조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지난 6일 새벽 갑자기 불어난 물에 실종된 야영객 6명중에서 발견되지 않고 있는 3명의 시신을 찾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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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한 사이의 문제를 국제화시키려는 이명박 정부의 고질병이 또 도졌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11일 "자국의 영토를 이용함에 있어 타국의 권리, 이익을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국제관습법으로 확립된 원칙이므로, 북측의 황강댐 무단방류는 국제관습법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후속조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실효성 문제 등을 감안해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정부가 북측의 무단방류 문제에 대해 '국제관습법'까지 끌어들인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해 남북 양측을 강제하고 따르게 할 수 있는 성문법적 국제규약이 없기 때문이다. 유엔의 '국제수로의 비항행적 이용에 관한 협약'이 있긴 하지만, 남북한 모두 가입하지 않은데다 미발효상태다. 35개국이 가입돼야 효력이 발생하는데 현재 17개국만 비준했기 때문이다.

북측 동의 없이는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불가능

국민이 6명이나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속수무책인 정부가 대북 압박을 위해 '국제관습법'까지 끌어냈지만, 이번 조치는 사실상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우선 북측이 '방류행위'의 정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위법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당사국  모두의 동의가 없이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도 불가능해, 이후 손해배상이나 책임자 처벌을 강제할 수도 없다.

이 때문에 외교부 담당기자들은 이번 발표에 대한 세부설명을 하러온 외교부 당국자에게  "사후조치를 취할 수도 없고 남측의 '볼 수 있다'에 대해 북측은 '볼 수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발표의 의미는 무엇인가", "누가 처음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한 건가", "이전에도 남북한의 마찰로 인명이 손상된 사건에 대해 국제관습법을 적용한 적이 있는가", "이번 사건과 같은 유사 사례들에 대해 국제관습법으로 판단한 외국 사례가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졌으나, 그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이번 발표는 우리 정부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문 대변인이 후속조치에 대해 '실효성을 감안해'라는 단서를 붙인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남북한 사이의 문제를 실제적인 효과도 없이 국제화를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올해 개성공단에 억류돼 있던 유성진씨 문제와 관련해 유엔 인권위원회 제소와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서의 문제제기 방침을 공개했다가 접었다. 지난해에는 금강산피격사건을 ARF 의장 성명에 넣었다가, 북측이 10·4 정상선언 지지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맞대응하면서, 양쪽 모두 삭제되기도 했었다.

남북관계가 '국가간 관계' 돼야?

이명박 정부는 왜 자꾸 남북한 문제를 국제화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달 23일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 등 북측인사들의 이명박 대통령 면담에 대해 표현한 '남북관계의 패러다임 시프트'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이지만, 이 틀에서 벗어나서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북한 관계가 민족관계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정립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남북관계가 국가간 관계가 돼야 한다는 이 정부의 생각이 남북한 현안을 국제화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남북관계를 국가 관계로 보는 것은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명시한 헌법(4조)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그 중요성을 특히 강조한 남북관계기본합의서와도 배치된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에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남북 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었다.

보수세력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9일 <동아일보>에 "이(패러다임시프트)에 따르면 북한을 국가로 인정해야 하는데, (정부의 공식통일방안인)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중요한 원칙을 무시해 헌법을 위배한 것이며, 철학적 바탕이 없는 프래그머티즘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태그:#패러다임시프트, #남북관계, #황강댐, #임진강방류, #외교통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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