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6월 2일 오전 제주 국제컨벤션센터. 이명박 대통령이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정상들에게 직접 '녹색성장 전시관'에 전시된 주요 품목의 제원과 특성을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기술을 설명하면서 "This is our dream(이것이 우리의 꿈)"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연료전지차를 상용화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셈이다. 이 대통령은 또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설명하면서 "재처리 과정을 거쳐 다시 4대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수질이 3ppm(2급수)이므로 4대강은 출발 자체가 클린"이라고 강조했다.

 

과연 이 대통령이 말한 '꿈'은 실현 가능한 것일까?

 

실제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그린카 4대 강국' 등을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녹색성장 프로젝트가 겉만 '녹색'일뿐, 속은 '회색'이라고 꼬집는다. 사실상 토목 사업인 '4대강 살리기'와 자전거 제조업 등이 녹색산업으로 분류되고 있는 게 '녹색성장'의 실체라는 것이다. 게다가 친환경차, 고연비차 개발을 위한 정부의 지원도 당장 생색내기를 위한 말만 앞설 뿐, 진행률이나 규모는 극히 미비하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 부는 친환경 바람

 

최근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는 친환경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오는 17일(현지시간)부터 27일까지 독일에서 열리는 '2009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는 연비를 기존 차량에 비해 대폭 높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100g 이내로 낮춘 제품들이 대거 쏟아질 예정이다. 독일 최대 자동차 업체 폭스바겐은 이번 모터쇼에서 친환경 차량 '블루모션'을 표방한 '6세대 골프'와 '폴로', '파사트' 등을 출시하는데, 리터당 연비가 22.7㎞~30.3㎞를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4월 열린 서울모터쇼에서도 국내외 자동차 업체들이 10여 가지의 친환경차를 선보이며 각축을 벌였다.

 

또한 미국의 GM이 리터당 100㎞를 달리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를 내년부터 양산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전 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세계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 도요타는 이미 올해 초 3세대 프리우스를 출시했다. 반면 미쓰비시자동차는 전기차 '아이미브'를 지난 6월부터 일본에서 시판하고 있고, 닛산자동차도 내년부터 전기차 '리프'를 출시할 계획이다.

 

친환경차 개발이 늦은 중국의 경우 하이브리드카 단계를 뛰어넘어 곧바로 전기차를 개발, 내년부터 연간 100만~200만대 양산할 계획이다.

 

현대·기아차도 7월 이후 아반떼·포르테 하이브리드를 내놓으며 뒤늦게 친환경차 경쟁에 나섰다. 그러나 가솔린이 아닌 LPG를 이용한 하이브리드카라는 점에서 내수용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현대는 내년에 쏘나타 하이브리드를 출시하면서 북미 그린카 시장에 본격 진출할 계획이다. 또한 현대·기아차는 최근 전기차 개발을 위한 청사진을 내놓기도 했다. 오는 2011년 순수 전기차를 시범 운행하고, 시장 상황이 받쳐주면, 양산에 돌입하겠다는 것이다.

 

'저탄소 녹색성장'?... 중대형차 소비 부추기는 정부 

 

사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개발에 대한 의지가 크지 않았다. "인프라 구축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시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일단 하이브리드카에만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물론 하이브리드카 개발에 있어서도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전 세계 자동차 업체가 가솔린 하이브리드카로 경쟁하고 있을 때, LPG 하이브리드카로 방향을 선회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뒷말이 따랐다.

 

결국 "수출용보다 내수용을 더 비싸게 팔면서 금융위기 속에서도 최대의 수익을 올린 기업이 너무 몸을 사리는 것 아니냐"는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다.

 

이와 관련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국내에서는 크지만 세계 굴지 자동차 메이커들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선행기술에 대해서 외국의 메이커가 투자하는 만큼 투자하려면 리스크가 크다. (안전판 없이) 올인 했다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차 개발은 개별 기업 혼자서 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현대·기아차가 지난달 13일 발표한 친환경차 개발 계획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현대·기아차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의 제목은 '그린카 4대 강국 진입을 위한 친환경차 개발 박차'였다. 당시 현대·기아차는 "'녹색성장 추진전략'에 따라 향후 2~3년 내에 저탄소 녹색 기술을 적용한 친환경차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탄소 녹색 기술', '그린카 4대 강국' 등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녹색성장 프로젝트'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흔적이 역력했다.

 

현대·기아차로서는 정부의 '녹색성장 프로젝트'에 따른 친환경차 개발 지원이 이뤄질 경우, '손해 보는 장사'를 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 정부는 노후차 교체 세제 혜택과 친환경 하이브리드 차량 구매시 개별소비세 및 교육세 최대 130만원, 취·등록세 최대 140만 원 등 2012년 말까지 최대 310만원까지의 세제 감면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은 올 10월 한국에 시판되는 도요타 프리우스나 내년 시판 예정인 혼다 인사이트가 고스란히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기아차의 아반떼·포르테 하이브리드는 2010년까지 생산 계획이 3만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5월부터 시행중인 노후차 처분 후 신차 구입시 지원 안은 차량의 가격에 따라 같은 비율로 감세 혜택을 주기 때문에 소형차보다는 중대형차를 살수록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배기가스량이 높은 중대형차 구입을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최상원 한국차동차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친환경차가 출시 될 때 세금 감면이니, 지원금이니, 부랴부랴 나설 것이 아니라, 친환경차 연구·개발(R&D)을 위한 근본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실패의 위험이 큰 신기술일수록 정부에서 기업과 리스크를 분담해 준다면 종국에는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어 차량의 가격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리드카 타는 환경부 장관은 '4대강 사업 전도사'

 

미국은 연료전지자동차 개발 및 수소 인프라 구축을 위해 총 2조7000억 원 규모의 정부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고, 일본은 2012년까지 수소연료전지 자동차 등 저공해차 기술개발에 8000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유럽도 2015년까지 수소연료전지 개발 사업에 6조9000억 원을 지원하는 등 총 9조8000억 원 규모의 지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는 어떨까? 지난 7월 과천청사에서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자동차 업계를 향해 '성의 표시'를 주문하고 나섰다. "기업투자확대를 위한 R&D(연구·개발)지원을 강화하는 등 정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했고, 이제는 기업들이 투자에 적극 나설 때"라고 말한 것. 당시 윤 장관의 발언은 누가 봐도 현대·기아차를 지목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런데 윤 장관이 소개한 '정부가 베풀어 준 각종 혜택'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윤 장관은 자동차 구입 때 개별소비세를 30% 깎아준 것과 노후차량 교체시 개별소비세 및 취득·등록세를 감면해 준 조치를 일일이 열거했을 뿐 연구·개발 지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사실 친환경차 연구·개발을 위한 정부차원의 정확한 전체 지원 규모는 파악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기재부, 환경부, 국토부, 지경부 등 친환경차 관련 부처가 워낙 많은데다, 부처별 협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윤 장관의 발언이 있은 직후, 현대·기아차만 서둘러서 친환경차 개발 분야에 2조2000억 원(연구개발 1조원, 시설투자4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을 뿐이다.

 

최상원 연구위원은 "정부 각 부처별로 친환경차 연구·개발에 지원하겠다고 밝히거나 검토하고 있는 금액만 따지면 아마도 전 세계에서 최대 규모가 될 것"이라고 꼬집은 뒤, "그마저도 담당자가 바뀌면 지원이 없었던 일이 되는 등 실제 지원 규모는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적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정부의 친환경 차량 지원 정책이 업계 현실과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독일이나 미국처럼 정부에서 친환경 차량 개발을 담당하는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 창구 일원화가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녹색성장 사업의 주무 부처 중 하나인 환경부 장관이 관용차만 하이브리드로 바꿀 것이 아니라, 친환경차 연구·개발을 위한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그런데 오히려 4대강 살리기 사업에만 매달려 있으니, 뭐가 되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은 지난 6월 전용 차량을 대형 세단인 '에쿠스'에서 준중형의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로 바꿨다. '기후변화대응 및 녹색성장 주무 부처 장관으로서 친환경 자동차인 하이브리드카 이용의 모범을 보이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가 '4대강 사업 전도사'라는 점에서 환경부 수장으로서의 자질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관계자는 "4대강 살리기 삽질에는 수십조를 갖다 부으면서 정작 미래 한국을 먹여 살릴 핵심 산업에는 말뿐인 지원 약속으로 생색만 내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4대강 삽질을 그만두고 거기서 나오는 예산을 미래의 먹거리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친환경차, #4대강 살리기, #저탄소 녹색성장, #하이브리드카, #현대기아자동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