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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1월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의 한 골목길에 'I WANT GO BACK!' 'I ♡ 대한민국'가 적혀 있다.
 지난 2008년 11월 법무부 출입국관리소 직원과 경찰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폭력을 동원한 토끼몰이식 단속을 벌여 부상자들이 속출했던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의 한 골목길에 'I WANT GO BACK!' 'I ♡ 대한민국'가 적혀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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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차별금지법은 반드시 철회하고 폐기되어야 됩니다. 돈 없는 서민들은 외국인들에게 일자리 뺏기고 세금 뺏기고 이걸 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는데 왜 하는 겁니까?"
"외국인지문등록제, 불법체류자 추방, 내국인 고용 우선법, 이런 것부터 먼저 하세요. 외국인의 인권 운운하는데 그건 우리나라 서민 생존권의 잠식입니다."

국내 첫 인종차별금지법 입법을 준비하고 있는 전병헌 의원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들이다.

전병헌 민주당 의원실은 지난 6일 인종, 피부색, 출신국가가 다르다는 이유로 고용, 교육, 재화·용역 등 사회전반에서 발생하는 차별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겼을 시 인권위의 시정명령을 거쳐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인종차별금지법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해당 법안이 블로그를 통해 알려지자, 이를 반대하는 이들이 100여 개가 넘는 댓글을 달고, 쪽지 및 항의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전병헌 의원실의 서정민 비서관은 "대부분 내국인에 대한 역차별, 일자리 감소 등을 우려하는 항의가 많지만 이는 이 법에 대한 혼동이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비서관은 이어 "입법예고의 취지에 맞게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것이지만 당 내 여론조사 결과 입법을 찬성하는 측이 80%가량 된다"며 "반대 여론으로 인해 입법 추진에 위축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성별·장애·출신민족·인종·피부색 등 20가지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법무부의 '차별금지법'이 논란을 넘지 못하고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던 점을 살펴볼 때 이 같은 논란은 이제 막 걸음을 뗀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걸음마' 단계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힌 인종차별금지법, 찬반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반대] "오히려 법 제정으로 인종차별 유발할 것"

국내 첫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 전병헌 의원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 중 일부.
 국내 첫 인종차별금지법 제정을 준비하고 있는 민주당 전병헌 의원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 중 일부.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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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입법을 반대하는 측은 "우리 사회가 인종차별사회라는 데 동의하기 힘들다"며 인종차별금지법의 전제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대책 시민연대'의 박완석 간사는 지난 11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에서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만큼 외국인에게 온정적인 나라는 없다"며 "현재 우리 사회는 인종차별사회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박 간사는 이어 외국인에게 인종차별적 모욕을 준 한국인이 처음으로 기소당해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경종을 울린 '후세인 보노짓 사건'(관련기사 : 욕설 봉변당한 인도인, 불법체류자 취급한 경찰)도 "한 취객이 모욕적 발언을 한 사건을 한국사람 전체가 그런 것인 양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히려 지금 시점에선 인종차별금지법으로 대다수 선량한 한국인들이 피해를 보거나 역차별을 받는 경우가 생겨 외국인에 대한 혐오감을 키울 수 있다"며 "오히려 인종차별금지법이 인종차별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박 간사는 "인종차별금지법은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에 있어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행 고용허가제 내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구직기간은 2개월로 이를 위반할 땐 출국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법정 소송 기간 중에는 출국 유예 기간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가 이 점에 착안, 인종차별금지법을 악용해 출국 유예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일을 못 얻더라도 체류 기간 연장을 위해 영세업체를 상대로 인종 등에 의한 차별로 일을 얻지 못했다며 해당 회사에 대한 소송을 남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영세업자의 피해는 물론, 영세업체와 외국인 노동자 간의 합의로 인해 자국인이 고용기회를 뺏길 수 있다."

[찬성] "정부 태도 명확하지 않으면 인종차별 묵인되고 조장될 것"

'아시아의친구들', AMMORE',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등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7월 15일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 결혼 이주자의 법적지위와 현실' 국제회의에 초청한 필리핀 가사 노동자에 대한 비자를 발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아시아의친구들', AMMORE', 오산이주노동자센터 등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7월 15일 국내에서 열릴 예정인 '아시아 결혼 이주자의 법적지위와 현실' 국제회의에 초청한 필리핀 가사 노동자에 대한 비자를 발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인종차별'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 이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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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종차별금지법 입법에 찬성하는 이들은 이에 대해 "UN에서도 한국을 인종차별사회로 규정하고 있다"며 '시기상조론'을 적극 반박했다.

UN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는 지난 2007년 "한국사회에 '단일민족', '순수혈통', '혼혈'과 같은 용어들과 더불어 인종 우월적인 관념들이 널리 퍼져 있다"며 "인종차별의 정의를 조약의 관련규정에 맞게 헌법이나 법률에 포함시키고 이주노동자 등 혼혈아 등 외국인에 대한 차별을 제거하고 관련법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고기복 용인이주노동자 쉼터 대표는 인종차별의 사례 중 하나로 이주노동자들의 귀국비용보험이 가입 당사자의 동의 없이 해당 국가 인력송출업체에 지급되는 현실을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귀국 항공료 명목으로 입국 때 40만~60만 원을 일시불로 지급하는 '귀국비용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고 대표는 "보험 가입 당사자가 한국인이었다면 보험 업체에서 당사자 동의 없이 보험금을 지급할 수 있었겠냐"며 "보험 가입 당사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이런 행동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이주노동자를 한국인과 같이 취급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대권 '아시아의 친구들'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에선 백인에 대해선 숭상하고 그 여타 인종에 대해선 차별하는 왜곡된 인종차별주의가 존재한다"며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나 다문화 가정 지원 제도 자체에서도 인종적인 편견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2차 세계대전 중의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역사적 경험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인종차별에 대한 사회적 인식 기반이 그리 깊지 않다"며 "인종차별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확고하지 않는다면 인종차별이 계속 묵인되고 조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은 "과거 한국인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대다수 동정적인 시선을 보냈지만 이주민들이 사회의 한 축으로 자리잡은 지금은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라는 인식을 못하고 있다"며 "인종차별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그 배경에 대한 진단이 없다면 내외국민 사이의 갈등은 더욱 증폭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전병헌 의원실은 이러한 찬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오는 30일께 공청회를 열 계획이다.


태그:#인종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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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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