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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마을학교가 기획한 8주간의 <살림있는 교육> 강의는 대안교육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홍순명, 장회익, 송순재 등의 대안교육진영의 유명 강사들이 펼치는 총론적 강의와 박창범, 이철우, 김정환 등의 교과별 전문가들의 강의를 밑거름 삼고, 지금까지 마을학교 선생님들이 공부해온 내용을 다시 갈무리해서, 아이들과 교실, 산과 들, 마을 골목길을 누비며 공부했던 보따리를 풀어놓는 시간이다.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을 현장에서 풀어보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자리라는 사실이 이번 강의를 주목하게 만드는 이유다. 나의 총평은 '우리네 학교의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절기는 사람들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기 위해 분절해 놓은 시간의 인식이다. 지금처럼 기계적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1일부터 31일까지 나누어 놓은 숫자가 아니라 우리 몸을, 우리의 생활을 자연의 변화, 생명의 변화, 천지 운행의 변화에 맞게 조율해 가려는 한해살이 큰 호흡이다."

 

첫시간 강의를 맡은 한희정선생님의 말이다. 첫 시간 주제는 <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이다. 한희정 선생님은『농가월령가』로 문을 열었다. 이름은 다 알지만 노래를 들어본적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른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만들었다는 농가월령가는 월령에 따라 민중들의 의식주와 문화, 행사, 풍속, 교훈 등을 담아놓은 4음보 연속체로 된 율문(律文)이다. 말이 어렵다. 사실 들어보면 감이 팍 온다. 그럼 농가월령가 중 8월령(음력 기준으로 요즘이다)을 들어보자.

 

농가월령가 8월령

▲ 농가월령가 8월령 정약용의 둘째 아들 정학유가 만들었다는 농가월령가는 월령에 따라 민중들의 의식주와 문화, 행사, 풍속, 교훈 등을 담아놓은 4음보 연속체로 된 율문(律文)이다. 말이 어렵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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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월령가 <8월령>

팔월이라 / 한가을이니 / 백로 추분 / 절기로다 / 북두성 / 자루 돌아 / 서쪽하늘 / 가리키니  / 서늘한 / 아침 저녁 / 가을이 / 완연하다 / 귀뚜라미 / 맑은 소리 / 벽 사이에 / 들리는구나 / 아침에 / 안개 끼고 / 밤이면 / 이슬 내려 / 백곡은 / 열매 맺고 / 만물 결실 / 재촉하니 / 들 구경 / 돌아보니 / 힘들인 보람 / 나타난다 / 백곡은 / 이삭 패고 / 무르익어 / 고개 숙이니 / 서쪽 바람에 / 익는 빛이 / 누런 구름 / 일어난다 / 백설 같은 / 면화송이 / 산호 같은 / 고추송이 / 처마에 / 널었으니 / 가을 볕 / 명랑하다.

안팎 마당 / 닦아 놓고 / 발채 망태기 / 장만하고 / 면화 따는 / 다래끼에 / 수수 이삭 / 콩 가지요 / 나무꾼 / 돌아올 때 / 머루 다래 / 산과일이로다 / 뒷동산 / 밤 대추는 / 아이들 / 차지구나 / 아름 모아 / 말리어서 / 철 되면 / 쓰게 하소 / 명주를 / 끊어 내어 / 가을 햇볕에 / 널어 말리고 / 쪽 들이고 / 잇 들이니 / 울긋불긋 / 하는구나 / 부모님 / 나이 드시니 / 수의를 / 준비하고 / 나머지는 / 말려 놓고 / 자녀의 / 혼수하세 / 집 위의 / 익은 박은 / 긴요한 / 그릇이라 / 대싸리 / 비를 매어 / 마당질에 / 쓰오리라 / 참깨 들깨 / 거둔 뒤에 / 올벼를 / 타작하고 / 담배 녹두 / 팔아다가 / 필요한 돈 / 마련하자.

장 구경도 / 하려니와 / 흥정할 것 / 잊지 마소 / 북어쾌 / 젓조기로 / 추석 명절 / 쇠어 보세 /  햅쌀술 / 오려송편 / 박나물 / 토란국을 / 성묘를 / 하고 나서 / 이웃끼리 / 나눠 먹세 / 며느리 / 말미 받아 / 친정집 / 다녀갈 때 / 개 잡아 / 삶아 내고 / 떡상자와 / 술병이라 / 초록 장옷 / 검남빛 치마 / 차려 입고 / 다시 보니 / 여름 동안 / 지친 얼굴 / 회복이 / 되었느냐 / 가을 하늘 / 밝은 달에 / 마음 놓고 / 놀고 오소 / 올 할 일 / 다 못하여 / 내년 계획 / 짜봅시다 / 밀대 베어 / 더운 갈이 / 밀과 보리 / 심어 보세 / 끝끝이 / 못 익어도 / 급한 대로 / 걷고 가소 / 사람 힘만 / 그러할까 / 계절도 / 그러하니 / 조금도 / 쉴 틈 없이 / 마치면 / 시작이라.

 

<머리노래>부터 <6월령>까지 부르는데, 20분가량 걸렸다. 그만큼 길지만 하나하나 읽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다. 조상들이 계절 변화를 어떻게 인식했고, 그에 맞게 삶의 자리를 어떻게 바꾸어 갔는지 지혜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한희정 선생님은 '우리가 우리시대에 맞는 월령가를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말하셨는데 우리시대 월령가가 어떻게 탄생할지 기대가 됐다.

 

음력, 태양태음력, 24절기

 

이후 조상들이 농경과 정착생활을 하면서 해가 뜨고 지고, 달이 찼다가 이지러지는 우주의 천문 현상을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여와 삶의 리듬을 만들어간 과정을 살펴보았다. 그 과정 속에 만들어진 음력달력(한 달 29.5일을 주기로 초승달, 상현, 보름, 그믐달에서 다음 초승달이 되는데, 이것을 한 달이라 함)의 탄생과 세시풍속은 '생산력'을 상징하는 달(月)과 관계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음력은 계절의 변화(태양의 움직임과 관련)를 정확하게 나타내지는 못한다고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우리 조상은 태음태양력(태음 태양력이 태음력과 다른 점은 윤달을 만들어 일 년의 길이를 1태양년과 맞추고, 24절기를 정하여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태음 태양력에서의 윤달은 적어도 3년에 1개월쯤이 필요한데, 윤달이 드는 해는 일 년이 13개월이 된다. <다음 어린이백과>)을 사용했다고 한다. 태양력을 쓰지 왜 태음태양력을 썼을까? 천문기구가 없던 민중에게 '달'은 시간을 알려주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정월 초하루, 정월 대보름, 이월 한식, 삼월 삼짇날, 사월 초파일,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백중, 삼복, 팔월 추석, 구월 중양절, 섣달그믐 등은 모두 음력을 갖고 만들어진 풍속이다. 하지만 시골마저 마을공동체가 사라져 가는 요즘, 다양한 세시들이 정월 초하루(설날)와 팔월 한가위만 남고 다 사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태양력을 중심으로 조상들은 24절기( 24절기는 황도를 24등분한 것으로, 이를 통하여 달이나 날짜와는 관계없이 계절의 변화를 안다.)를 구분했다. 낮의 길이가 가장 짧은 동지를 기준으로 천문 역학적 계산으로 이름을 붙인 춘분(春分), 하지(夏至), 추분(秋分), 동지(冬至), 기온 상의 특징을 가지고 이름을 붙인 소서(小暑), 대서(大暑), 처서(処暑), 소한(小寒), 대한(大寒), 기후적인 특징을 가지고 이름을 붙인 우수(雨水), 백로(白露), 한로(寒露), 상강(霜降), 소설(小雪), 대설(大雪), 자연 생태적 현상으로 이름을 붙인 경칩(驚蟄), 청명(淸明), 소만(小滿), 농사일과 관련해서 이름을 붙인 곡우(穀雨), 망종(芒種), 이렇게 24절기가 있다.

 

▲ 절기노래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선율에 절기이름을 가사로 넣어 꽃피는 학교 김희동 선생님이 만든 노래로 가사는 이렇다.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 입하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입동 소설 대설 동지 소한 대한"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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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노래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에 절기이름을 넣어 꽃피는 학교 김희동 선생님이 만든 노래로 24절기를 쉽게 외울 수 있다.

 

24절기는 중국 주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상상태에 맞춰져서 우리 나라 기후에 정확하게 맞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는 속담을 통해 '민속의 생활력'은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재조정되는 과정을 겪으며 지역의 생태적 특징, 생활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한다.

 

마을학교 절기 교육 활동

 

24절기에 대한 이해와 함께 강의 후반부에는 아름다운마을학교 2009년도 절기 교육 활동을 소개했다. 아이들은 절기와 관련된 옛 이야기를 배우고, 절기 별 옛 속담을 배웠다.그리고 오늘날에 맞는 속담을 만들어 보았다. 절기에 맞춰 화전과 쑥버무리를 해먹기도 했다. 철쭉목걸이, 도토리받침 인형을 만들기도 했고 절기에 맞는 놀이도 했다.

 

아이들 반응은 어떻했는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직접 물어봐야 할테지만, 아이들이 없었다. 강의에 함께 참석한 마을학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풍부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공 아닐까? 헌데, 왜 절기 공부를 해야 하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까? 우리가 농사짓는 것도 아닌데 농가월령가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도시의 삶은 숫자로 표현된 달력과 분과 초단위의 시간을 요구한다. 그 공간을 '돈이 되는 일정', '외로움을 채우는 일정'으로 채우고 바쁘게 살아간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철새가 날아오지만 도시에 사는 인간에겐 언제 이슬이 내리고, 언제부터 해가 길어지는지 알 필요가 없다. 근대교육의 씁쓸한 성과다. 근대교육은 절망의 근거가 되는 이들(4대강 죽이기를 추진하는 지도자들)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교육을 충실히 받은 현실주의자는 『농가월령가』를 읽을 때 감탄보다는 회의가 앞선다. 이 따위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뭐하나? 시험에도 안 나오고, 농사를 짓게 할 것도 아니고, 돈도 안 되니 말이다.

 

 

대안 교육은 대안 세상을 '진심으로 꿈꾸는 이들'의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대안 학교와 사회,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때 현실적인 판단(입시에서의 성공, 취업에서의 성공)을 생각하는 순간 그 꿈은 힘을 잃고 사그라지고 만다.

 

나는 믿는다.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을공동체를 일구며 이웃과 자연에 좋은 친구가 되는 삶을 정성껏 살아가는 참된 주체가 21세기에도 잘 살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희망의 근거를 둘 수 있는 사람은 이런 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에게서 길러진다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공부한 어린 아이들이 펼쳐낼 세상을 기대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귀뚜라미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인식 못했다. 강의를 같이 듣고 가는 형이 말해주었다. 새삼 놀랍다. 북한산 자락에 살고 있어 누릴 수 있는 특혜란 생각이 들었다. 벽사이로 들리는 졍겨운 (8월령에 나오는)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단잠을 청해본다.

 


삶이 있는 학교 살림이 있는 교육[아름다운마을학교] 강의 일정

1. 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 : 한희정(서울 수유초 교사)

2. 옛이야기에서 배우는 우리말글 : 김은영(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교사)

3. 고전을 통해 배우는 옛 어른들의 지혜 : 신은영(아름다운마을초등학교 교사)

4. 암송이 주는 즐거움, 영문 고전 읽기 : 한희정

5. 이치를 터득하는 공부, 수학 : 신은영

6. 몸으로 공부하는 아이들, 몸생활 : 김은영

7. 생명의 역사, 내 몸을 돌아보는 공부 : 한희정

8. 아이들과 함께 하는 우리땅 이야기 : 신은영

 

▣ 문의 : 아름다운마을학교 http://cafe.daum.net/maeulschool

▣ 강사 : 한희정, 신은영, 김은영

▣ 일시 : 9월 15일(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 30분

▣ 장소 : 아름다운마을 수련실

4호선 수유역 3번출구 2번 버스 승차 → 15분 이동하여 청수탕 하차 → 횡단보도 건너 청룡빌딩 3층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인수동 마을신문(www.welife.org)에도 실렸습니다. 


#살림이 있는 교육#아름다운 마을학교#철따라 새로 쓰는 우리 마을 절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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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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