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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과 여름, 조용하던 시골마을에 채석장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마을주민들의 걱정이 컸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개발업자들의 말만 믿고 사업에 동의했던 마을사람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마을의 평화와 안녕이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여론이 바뀌었습니다.

 

마을주민들은 어떻게 하면 채석장을 막아낼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마을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인 청정함과 오랜 역사와 문화에 기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산과 들을 헤치며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을 찾아 나섰습니다. 채석장 개발업체가 의뢰해 만든 환경영향평가서에는 보호해야 할 동식물이 별로 없다고 돼 있기에, 반대로 보호하고 보존해야 할 가치가 높음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찾아낸 것이 수리부엉이, 수달, 삵의 흔적이었고 옆새우와 가재였습니다. 하나 같이 천연기념물 또는 멸종위기종으로, 환경부가 보호해야 한다고 한 동물들입니다.

 

그리고 또 찾아낸 것이 있으니 다슬기 화석, 공룡발자국, 오랜 성터와 도요지 등 여러 유적과 유물들이었습니다.

 

마을사람들에게는 이 모든 과정들이 마을을 향한 사랑이었고, 잊었던 기억의 되살림이었으며, 묻혀 있던 역사를 드러나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의 대화'요, 인간과 세대를 뛰어 넘는 '소통'이었던 셈입니다.

 

 

그 사이 개발업체는 채석장 사업을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주민들의 반발과 관련 기관의 환경영향평가서 보완 요구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사업에 이미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기에 마을사람들을 향한 원망도 커 보입니다.

 

어쨌거나 이 마을은 한동안 채석장 시름을 잊게 생겼습니다. 그래서 '결사저지' 등의 거친 구호가 적힌 펼침막은 사라지고, '수리부엉이가 사는 마을' 등 생명과 사랑, 평화와 여유가 물씬 풍기는 펼침막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이를 마을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의 결과라고 불러도 좋을까요? 아니면 인간과 시간을 뛰어넘은 '소통'의 결과라 해야 될는지요.

 

그러나 요즘 들어, 이 참여와 소통이 가져다 준 생명과 사랑, 평화와 여유가 또 다른 시련으로 퇴색하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채석장 개발업체는 마을주민들의 반대로 많은 손해를 봤다며 그 책임을 묻겠다고 통보했습니다. 그러자 개발업체 쪽에서 일을 도왔던 사람과 그 반대쪽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간극이 더 커졌습니다. 심지어 마을사람들 사이에 형사고발까지 벌어지는 모양새입니다.

 

누구를 탓하고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요?

 

 

굳이 채석장이 아니어도, '개발'의 칼바람은 도시와 시골을 불문하고 그곳 사람과 자연에 시린 상처를 주곤 합니다. 어쩌면 산과 강이 파헤쳐지는 것 이상으로 마을의 공동체성, 사람들 마음의 연결고리를 끊어 놓곤 하지요. 그 피해는 분명 몇 푼의 돈, 그 이상입니다.

 

개발업체는 마을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채석장 개발을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또 손해에 따른 금전적 책임을 묻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마을사람들의 분열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아니겠지요. 개발을 꿈꾸는 많은 업체들이 그러하듯, '민원인 길들이기' 또는 '아니면 말고' 식의 그런 소송 전초전도 정말 아니길 빕니다.

 

꼭 필요하고 해야 할 사업이라면 더 꼼꼼히 준비해서 관련 기관으로부터 믿음을 사고, 또 사업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 하겠다며 민원인들을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그 내용과 형식에 진정성이 있다면 해당 마을주민들이 아닌, 바깥의 더 많은 시민들로부터 타당성을 인정받을 것입니다.

 

행정기관에서 늘 말하는 것처럼, 사업주가 뭔가 개발행위를 함에 있어 관련 마을주민들의 동의서가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니, 사업포기 탓을 이들에게 돌리는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보는 이에 따라서는 얼마 크지도 않은 개발에 호들갑을 떤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해당 마을사람들에게는 멀리서 일어나는 대규모 바다매립사업보다, 수백 만평 국가산업단지조성사업보다 더 큰 문제로 와 닿을 수밖에 없겠지요.

 

"공룡 다슬기 화석으로 살아 숨 쉬는 마을" "수리부엉이가 사는 아름다운 마을" "옆새우와 가재가 사는 깨끗한 마을"...

 

이들의 자부심이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삶터를 소중히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잠시 일었던 거친 '개발 바람'의 상처까지 잘 추스르길 빌겠습니다. 나아가 조용한 마을에 행해지는 무심한 돌멩이질도 여기서 멈추기를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뉴스사천#성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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