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플리즈 롸이트 인 볼드 앤 빅 스트록스!
크고 굵게 쓰세요라는 뜻의 이 문구를 보고 미국장애인에게 한 5번쯤 읽어 주었더니 오케 오케 한다. 그리고 금세 굵게 쓰는데 본인이 보기에 굵지 않는다 싶어 글자는 두 번 세번 덧칠을 해버린다. 서예에서 덧칠을 하는 것을 개칠이라고도 하기에 나는 절로 미소가 나왔지만 서예의 매력 중의 하나가 일필이라는 것을 설명을 하기가 참 어렵고 그는 여전히 글씨를 쓰는 것인지 그림을 그리는 것인지 무아지경이다.
영어를 쓰는 미국장애인을 가르치는데 소통이 참 문제가 된다. 오늘도 지도를 하는데 너무 가늘고 작게 쓴다. 글씨는 점점 더 작아진다. 그래서 딸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크고 굵게 쓰라는 영어를 소리나는 대로 적어달라고 했더니 위와 같은 내용이 온 것이었다. 영어글자를 잘 알면 생활영어책에서 적당한 문장을 찾아서 보라고 하겠는데 미국인들도 비문해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 미국장애인을 우리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 귀화하여 등록해야 하겠는데 참 첩첩이 갈 길이 먼 것 같다. 은근히 한 달 간 같이 공부하는 다른 뇌병변 노처녀 아가씨가 마음이 끌린 눈치이다. 지금은 비자를 발급받아 형 집에 잠시 다니러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비자만기가 되면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합법적인 체류자로 신분이 된다고 해도 국민수급기초 대상으로 합격될지도 미지수이다. 미국인과 장애인이란 신분을 빼면 그냥 평범하게 인간의 행복을 누려야 하는 목숨인데 안타깝다.
그러나 이러한 안타까움은 맨 정신의 그의 형과 야학교 관계자들과 나의 생각일 뿐, 정작 당사자는 해맑은 표정으로 연습한 종이마다 오분 십분마다 내게 검사받으러 온다. 두 손으로 연습한 글씨나 그림을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거나 박수를 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고개를 설레 설레 하고 등을 뒤돌리고 다시 해오라고 하면 시무룩해진다.
놀랍게도 검사받으러 오는 형태가 1년을 먼저 배운 사람보다 나아 보인다. 설명을 한 적이 없는데도 붓잡은 법과 자세도 나무랄 데가 없다. 지적인 사고력이 떨어지는 대신 모방관찰력과 집중력이 높은 것이 자폐증아동을 보는 것 같기도하다.
컴퓨터 반이나 한글비문해반에는 장애인은 아니지만 동남아나 아프리카계노동자들도 더러 있다.
가족갈등과 폭력 등의 증대로 이주여성들의 문화와 문제를 상담하고 교육하는 전담하는 센터가 군단위마다 생겼지만 이주남성들을 위한 배움터는 희소하기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다.
우리 안의 장애인들의 복지도 제대로 해결이 안 되는 나라형편이지만 우리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목숨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그냥 마음 안에서 그쳐야 하는 것일까?
한 달 내내 뼈빠지게 일해도 우리나라 장애인수급비보다 못 벌기도 하는 비문해한글반에서 공부하는 그들의 얼굴은 생각보다 많이 어둡지 않다. 무언가 시간이 지나면 차곡차곡 쌓여서 가족과 재회하거나 마음 안의 소망을 이룰 수 있다는 간절한 희망과 기다림 때문인 것일까?
미국장애인은 그나마 희망과 기대감도 없기에 절망과 답답함도 없는지 오늘도 해맑았고, 나는 그저 너무 빨리 움직이는 그의 팔을 잡고 슬로우 슬로우! 할 뿐이다. 내 팔에 잡혀 천천히 쓰다가도 휠체어들이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무슨 큰 일이 생긴 것처럼 우당탕! 달려가는 그의 모습은 정말 우리들 모두에게 절로 미소가 나온다.
물질적인 세상기준으로 보면 그 미국장애인은 사람 잘못 만나면 솔류션에 나올 주인공 같기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상에서 그는 천사의 영혼을 지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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