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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에 배기동 박사가 취임했습니다. 충남 부여 외곽에 위치한 전통문화학교는 오랜만에 내외빈을 맞느라 캠퍼스가 활기를 띠였습니다. 가을빛이 살짝 물든 아담한 교정 한 켠에 리셉션 장이 마련될 동안 강당에서는 취임식이 열렸습니다. 취임 일성으로 '문화강국'을 외친 배 총장님의 모습 뒤로 예닐곱 해 전 인연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배 총장님과의 인연은 7~8년 전 쯤 전곡포럼이란 단체를 알게 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당시 배 총장님은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박물관장을 겸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전곡포럼을 음양으로 이끈 실질적이고 정신적인 리더였습니다.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서 개천제를 지내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배기동 박사. 사진 좌측은 한양대 부설 문화재연구소 김성일 문화인류학 박사. (2003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서 개천제를 지내고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배기동 박사. 사진 좌측은 한양대 부설 문화재연구소 김성일 문화인류학 박사. (2003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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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포럼은 경기도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를 사랑하는 고고학자, 미술가, 철학자, 기자 등이 모인 모임입니다. 고고미술사학, 설치미술, 전위예술 등의 학문과 문화가 크로스오버하기도 하고 때론 융합하는 뭐라고 딱히 규정하기 힘들지만 매우 매력적인 단체입니다.

이들이 구석기 유적터를 중심으로 해마다 어린이날에 맞춰 열었던 연천 전곡리구석기 축제는 경기도의 손꼽히는 성공적인 축제가 됐습니다. 없어도 될 만한 다람쥐꼬리만한 예산이지만 알뜰하게 짜맞추고 독지가의 자비량과 미술가들의 무보수 참여로 일궈낸 축제였습니다.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했기 때문에 뭐든 가능했고 땀이 헛되지 않았던 시간이었습니다.  

5월 축제에 이어 10월이면 개천일을 맞아 하늘이 열린 날을 기념하는 제를 올렸습니다. 시루떡을 찌고 박주산채와 햇과일 등으로 정성껏 준비한 상을 진설하고 축문을 읽던 모습. 푸른 하늘이 '쩍'하고 진짜 열릴 것만 같았던 전곡리의 추억이 망막을 스쳤습니다.

개천제에서 축문을 읽고 있는 배기동 박사.(2003년)
 개천제에서 축문을 읽고 있는 배기동 박사.(2003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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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이 끝나고 인사를 드리자 손등을 치시며 "어디 갔다 이제 왔느냐"며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실 때 뭉클함이란. 여전히 넉넉한 미소와 고고학자의 표징인 구릿빛 그을린 얼굴에 비취색 마고자가 참 잘 어울린 날이었습니다.

옛 이야기를 하려고 글을 쓴 게 아닌데 서두가 길었습니다.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부여행 일정을 잡고 내내 교명이 왜 전통문화학교인지 생각했습니다. 이유를 알아 볼  겨를도 없이 어느새 취임식 자리에 앉아있게 됐고 그제서야 절절한 이유를 듣게 됐습니다.

한국전통문화학교는 문화재청 산하 4년제 국립대학교란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저와 비슷하리라 생각합니다. 총장 자리가 차관급이란 사실 또한 처음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학교의 비전이 대한민국의 머지않은 미래와 맞물려 있다는 중차대한 사실도 알게 된 것입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저서 '부의 미래'에서 아시아의 부상을 예언하면서 문화 콘텐츠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굳이 앨빈 토플러를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와 같이 부존자원이 척박한 땅에서는 문화콘텐츠가 미래 성장동력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 콘텐츠 강국을 위한 첨병을 양성하는 '사관학교'가 훈련과정이 부족하다고 하니 무슨 일이랍니까. 한국예술종합대학과 함께 각종대학으로 분류돼 석박사 대학원 과정이 없어 대학교란 이름도 못쓰고 있다니. 문화첨병의 자부심은 고사하고 총도 없이 전쟁터로 내몰고 있는 것과 같은 현실이 어이가 없습니다.

마침 어제 기자들과 만나 학교 운영방침을 나눴다는 보도를 접했습니다. 그 덕에 제 글이 짧아졌습니다. 모쪼록 이번엔 대학교 명칭 사용과 석박사 과정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설치법이 국회를 통과되길 바라겠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부여의 가을을 보러 오란 말씀을 마음에 담고 오는 길 서해로 내달리는 작은 산들 뒤로 해가 뉘엿거리며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무수한 날 동안 태양의 지고 떠오름이 반복되는 가운데 전곡리 구석기 유물부터 63빌딩까지 켜켜이 쌓인 유형의 문화와 그것을 창조하고 궁리한 무형의 문화가 어우러진 한반도. 그 한반도의 옆구리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세계의 문화중심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여보란듯 키워주시길 기원합니다. 


태그:#배기동총장, #한국전통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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