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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드라 블록이 킬힐을 신고 등장하는 영화 <프로포즈> 한 장면
산드라 블록이 킬힐을 신고 등장하는 영화 <프로포즈> 한 장면 ⓒ 소니픽처스 제공
장면 하나. 최근 상영된 영화 <프로포즈>에서 보면 산드라 블록이 15센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구두를 신고서 배를 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던 위장결혼 연인의 할머니 왈, '아이고 눈 찌르겠네'하면서 며느리 되는 이와 귀엣말을 했었다.

평소와 같은 도회의 생활도 아니고 장시간 비행기타고 알래스카로 날아오는 상황을 보여주는 장면이건만, 그렇게 높은 굽의 구두를 신어야 하나 극중이라 해도 어이없었는데 남자주인공의 할머니가 꼬집어주니 속이 다 시원하였다.

그러나 다행히 이 영화에서 산드라 블록은 내내 그런 높은 굽만 신고 나오진 않았다. 때로는 굽이 전혀 없는 신발을 신고도 나왔기에 어지럼증이 진정되어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최근, <리얼스토리 묘>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킬 힐, 그 참을 수 없는 유혹>편을 보았다. 15센티 이상의 높은 굽의 구두를 말한다는 킬 힐.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그런 신발을 왜 여성들은 좋아할까. 킬 힐은 물론 하이힐도 오래 신으면 허리디스크, 척추측만증, 무지외반증(엄지 발가락이 검지 쪽으로 굽어지는 현상) 등이 걸릴 확률이 매우 높다는데 그러한 신발을 싣는 여성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을까.

여가수는 왜 '킬 힐'을 신고 춤을 춰야하나?

알면서도 무시하는 것일까. 아니면 신체가 적응이 되어 견딜 만한 것일까. 주변 지인들의 경우를 보면 어쩌다 5센티 정도의 구두만 신어도 '아이고 발이야' 입에서 저절로 신음소리가 나오던데 댄스가수들은 그보다 두 배 세 배 높은 굽을 신고 춤을 추었다.

춤도 그냥 한번 추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고 거의 매일 일상적으로 춤 연습을 한다고 하였다. 평소에도 힐을 신고 연습을 해야 몸이 적응이 되어 실제 공연에서도 실수 없이 할 수 있기에 그런다고 하였다. 때문에 그들의 발은 늘 껍질이 까지고 굳은살이 박이고 발톱 모양이 기형이 되는 등 보는 것만으로도 내 발이 다 아픈데 그러한 발로 춤을 추는 당사자들은 오죽할까.

그냥 좀 굽 낮은 구두나 예쁜 색색의 운동화를 신고 춤을 추면 안 될까. 얼마 전 어느 프로에서 백지영씨와 그녀의 백댄서들이 모두 운동화를 신고 신곡을 선보이는 것을 보았다. 그 장면을 보자 내 마음이 다 푸근해졌는데 다음의 어느 프로에 보니 다시 힐로 돌아와 있었다. 

남자는 넥타이에 구속되고 여자는 하이힐에...

하여간, 아무리 인간이 미를 추구하는 동물이라지만 그 '미'라는 것이 보편적 상식을 넘으면 재고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 어느 종족이 귀를 뚫어 귓밥을 축 늘이거나 입술을 뚫어 나무판을 끼우고 하는 것을 보면 아름다운가. 미얀마 어느 소수민족이 목을 가늘게 한다며 목에다 수십 개의 링을 감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아름다운가. 아름답기는커녕 안타까울 뿐이다. 

마찬가지로 뾰족하고 위태위태한 높이의 구두를 신고 곡예하며 걷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그러나 오지사회에서 그러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가타부타 말할 수가 없다. 그들 나름으로는 이유가 있을 터이니. 그에 반해 우리들은 그들 보다는 그래도 문명국가 아닌가. 문명국가에서 왜 그런 비합리적인 미를 추구하는가 말이다.

영화 <코코샤넬>에서 보면 샤넬은 그녀의 언니와 달리 재봉에 소질이 있었다. 바느질에 소질이 있다 보니 자연 당시 귀부인들이 입고 다니던 의상이며 모자, 가발 등에 관심이 많았는데 샤넬은 그들의 과장된 의상을 늘 안타까워하였다, 몸이 혹사당하는 것이 훤히 보였기에.

'코르셋으로 허리를 저렇게 조이면 얼마나 불편할까. 모자에다 저러코롬 장식을 하면 얼마나 목이 아플까.'  하여, 샤넬은 스스로 자신의 옷은 그런 쪼임 없이 편안하게 만들어 입었고 또,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바지에 조끼도 역시 만들어 입었다. 뿐인가. 손수 가벼운 모자도 만들어 귀부인들에게 선물했는데 한번 써본 사람들은 너도 나도 그녀의 모자에 유쾌하게 중독되었다. 목이 뻐근하고 머리가 띵한 상태에서 해방되었음은 물론이고.

아무튼, 20세기로 넘어오며 여성들은 그 사정없이 조던 코르셋이라든가 과장된 가발, 모자 등으로부터는 확실히 해방되었다. 한발 더 나아간 작금의 21세기는 그렇게 신체의 일부를 결박하는 듯한 치장을 할 필요가 더더욱 없어졌다. 그러나 새로운 부분에서 여전히 그러고들 있으니, 그 백해무익의 대표는 바로 넥타이와 하이힐(혹은 킬 힐)이 아닐까 싶다. 남자는 넥타이에 구속되고 여자는 하이힐에 구속되고. 서로서로, 피차 동시에 그것을 벗어 던지면 안 될까.

마무리...

유난히 댄스 그룹 가수들이 가요계를 휩쓴 올 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각선미 쥑이네, 보는 눈이 다 시원하네 하던 그 순간 그녀들은 속으로 울면서 그 춤들을 춘 것이었다. 생각해보라. 내 딸이, 내 누이동생이 그런 신을 신고 춤을 춘다고. 그러면 무심히 볼 수 있을까. 마냥 즐거이 볼 수가 있을까.

그리고 소위 유행을 선도한다는 연예인들이여. 너도 나도 높은 굽을 신기전에 당신들이 그러한 것을 신으면 바로 따라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임을 상기했으면 싶다. 예전에는 먹고살기 힘들어 따라하고 싶어도 못 따라한 사람들이 많았다지만 지금은  처지가 다르다. 물건이야 진품을 따라하진 못해도 높이(굽)는 충분히, 누구나 따라할 수가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워 해야 할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알라딘 서재에도 싣습니다.



#킬힐#넥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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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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