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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혼란한 시기에 숨은 영웅으로 은거하며 상갓집 개처럼 살던 흥선군 이하응은 때를 기다리며 야망을 키웠다.

 

유약한 임금 철종의 승하가 임박한 시점, 흥선군은 장동(안동)김씨 문중의 인물이지만 자신에게 호의적인 김병학을 찾아가 "만약 왕실의 후사 문제가 나오면 제 아들에게 왕위가 승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면 내 당연히 판서의 따님을 왕비로 책봉할 것입니다"라고 약조한다.

                 

또한 왕실의 최고 어른인 조대왕대비에게도 찾아가 "소자의 둘째 아들 명복(고종의 어린 시절 이름)이를 대비마마의 양자로 들여 후사를 잇는다면 저로서는 영광이옵니다"라며 형식상으로 철종의 수양동생 자격으로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다음 임금으로 확약 받게 된다.

 

이렇게 미리 준비를 마친 흥선군에게 바로 기회가 다가온다. 병약하던 철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조대왕대비는 중신회의를 열어 순식간에 흥선군의 둘째 아들을 자신의 양아들로 삼고, 후계자로 결정하게 된다.

 

이에 흥선군과 밀약관계에 있었던 김병학과 원로대신 정원용으로 도움으로 후사는 이명복으로 급하게 결정된다.

 

아들이 왕에 오르고 흥선군은 조선역사에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살아있는 왕의 아버지로 조대왕대비의 명을 받아 수렴청정의 자리에 오른다. 이후 3년 흥선대원군은 고종의 비를 간택하는 과정에서 오랫동안 외척들의 부정부패를 익히 보아온 터라 김병학과의 약속을 파기하고 선혜청 창낭과 영주 군수를 지낸 민치록의 외동딸을 며느리로 맞이한다.

 

민치록의 외동딸 민정호는 여덟 살에 부친을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안국동 감고당(感古堂)에서 외롭게 자랐다. 일가친척이 거의 없는 그를 왕비로 선택한 이유는 대원군의 외척세력에 대한 경계의식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이로써 흥선대원군과 그의 둘째 아들 고종 그리고 그의 부인인 명성황후와의 끝없는 정치적 암투와 질시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논픽션 명성황후>(이지출판)는 '일본 국가권력의 시해범죄를 추적한다!'는 부제를 달고 최근 새롭게 개정판으로 나왔다.

 

이 책은 아들 고종을 등에 업은 흥선대원군의 3번의 집권과 착한 아들이었지만, 무능했던 임금 고종, 그리고 고종의 아내로 처음에는 착한 부인이자 아내로 살았던 명성황후가 대원군의 실정과 천주교 탄압, 양 오빠인 민승호에 대한 음해 등으로, 왜 시아버지와 원수관계가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고종이 집권 10년이 되어, 왕비와 외척들의 도움으로 대원군을 몰아내고 친정체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대원군의 부하들은 왕비의 양 오빠인 민승호 가족을 폭발물 테러로 몰살시켰고, 이후에는 자신들의 재집권을 위해 왕비를 시해하려는 모반을 계획하기도 한다.

 

이에 왕과 왕비는 대원군과 끝없는 갈등의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세상은 단순하게 왕과 왕비, 왕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싸움을 그대로 보거나 가만두지 않는다. 내치에만 충실하면 되던 이전의 안정되었던 조선의 정국은 이미 위기 속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와 일본, 영국, 미국, 러시아 등은 조선을 그들의 손아귀 안에 넣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대원군은 집권 10년 동안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외국과의 문호를 막고 있었지만, 동북아는 이미 일본이 거의 모든 정치, 경제 권력을 손아귀에 틀어진 상황이었다.

 

흥선대원군과 고종 그리고 명성황후는 다가오는 청과 일본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이이제이(以夷制夷)로 이용하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또한 구식 군인들은 임오군란으로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다시 대원군의 재집권을 돕게 되고, 고종은 숨을 죽이고 왕비는 충주의 한 농가로 피난을 가게 된다.

 

이후 청나라는 대원군을 나포하여 청나라로 귀양을 보내고, 왕이 정권을 다시 잡게 되지만 이미 실권을 잃은 지 오래다. 왕도 왕비도 나라를 다시 반석 위에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해보지만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은 갑신정변을 통하여 일본의 힘을 끌어 들인다.

 

이후 귀국한 대원군이 또 다시 일본의 도움으로 잠시 정권을 잡기도 하지만, 결국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무사들의 손에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것으로 조선은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사실 명성황후는 무능한 고종을 대신하여 극변하는 국제정세와 일, 청, 영, 미, 러시아 등을 적절히 이용하는 뛰어난 재주를 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16세의 어린나이에 왕비가 되어 45세의 나이에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된 구한말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던 명성황후를 <논픽션 명성황후>에서는 망국의 위기에서 탁월한 지략을 발휘한 국가 경영자로 그리고 있다.

 

또한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단순한 낭인들이 아니라 대부분 일본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로 나중에 일본 정부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으며, 아직도 일본 정부는 일본 제국주의가 치밀하게 계획한 국가 범죄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팔도를 호령하던 일국의 국모가 외세 부랑집단과 그와 결탁한 동족 반대 정치집단에 의해 한밤중에 수치스런 죽음을 당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외면할 수 없는 한국사의 한 장면임이 틀림없다.

 

아쉽게도 <논픽션 명성황후>은 명성황후 시해 당일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 전개와 묘사는 부족한 점이 많은 소설이며, 전반기에 흥선군과 그의 가족, 중반부의 대원군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계획 등에서 반복적인 표현과 중요인물에 대한 인명 표기에 상당한 오기가 있어 혼동을 주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소설치고는 방대한 자료와 충분한 시간의 공을 들인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는 것이 논픽션 다큐멘터리 소설다운 맛이 있는 작품이다.  

 

<논픽션 명성황후>의 저자 유홍종 선생은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문예지 <월간문학>시 부문 신인상과 <현대문학> 소설 추천을 거쳐 문단에 데뷔, 장편소설 <불의 회상>으로 대한민국 문학상 신인상을 받았고, 중편소설 <서울에서의 외로운 몽상>으로 소설문학 작품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몽상과 판타지의 관념 세계를 현실과 접목시켜 구상화한 <불새>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북가시나무> <슬픔의 재즈> 등 창작집이 있고, 구조적 폭력에 희생되는 인간상을 휴머니즘의 시각으로 다룬 장편소설 <서울무지개> <추억의 이름으로> <조용한 남자> <유리 열쇠> 외 다수가 있다.

 

저자는 기독교방송과 동아일보 등 언론계의 경력을 거쳐 인간 붓다의 생애와 가르침을 쓴 <논픽션 붓다>와 한국 초기 천주 교회사를 다룬 <나무십자패> 등 본격적인 논픽션 작품들을 내놓았다.


태그:#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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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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