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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슬고슬 쌀 익는 가을이 오면 저는 그 풍요로운 황금빛 들녘이 그리워 자전거를 타고 경기도 철원 평야로 달려가곤 합니다. 그렇게 몇 번을 지나다 보니 드넓게 펼쳐진 저 평야에서 나오는 쌀이 유명한 오대쌀이며 인근 동네 이름이 민북마을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민북마을은 휴전선을 따라 비무장지대(DMZ) 바로 밑 민통선(민간인 출입 통제선) 안에 있는 동네들 이름입니다. 그중 철원군 양지리 민북마을은 철원평야를 '애마'를 타고 달리고 달리다 지쳐 쉬다가 길 위에서 알게된 마을로 초병이 지키는 특별한 동네이기도 합니다.

 

경원선(서울-북한의 원산항) 기차에 애마를 싣고 종점인 신탄리역에 내립니다. 경원선 기차를 타려면 1호선 전철 동두천역에서 내려 천원짜리 기차표를 끊고 갈아타면 됩니다. 철새들의 보금자리 동네답게 신탄리역 안뜰에는 철새들 모양의 솟대들이 정겹게 서있습니다.

 

경원선 기차를 타면서 보니 신탄리역뿐만 아니라 다른역들도 작고 아담한데다 역 주변을 나름대로 소박하고 예쁘게 꾸며놓아 모두 포근한 간이역 느낌이 나네요. 경원선 기차는 신탄리역에서 끊겨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나 기차길만은 북쪽으로 계속 나있더군요. 차마 들어내지 못하고 놔둔 기차길을 보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 ♬'이라는 노래가 가슴속에서 울려 나오네요.

 

신탄리역 부근 고대산에 등산하려는 사람들과 헤어져 역 앞에 난 국도를 타고 중간 휴식처로 정한 노동당사를 향해 달립니다. 2차선 좁은 국도길이지만 오가는 차들이 많지 않아 안전하며, 차도 양옆에 펼쳐진 황금빛 들판을 눈이 노랗게 되도록 담으면서 달리기 좋습니다. 길 중간 중간에 초병들이 지키는 초소와 군부대 검문소 등이 있으니 양지리 마을 다왔냐고 물어보면서 찾아가면 됩니다. 신탄리역 출발 후 얼마 안있어 오르막길이 나오지만 그리 급경사의 긴 언덕길은 아니며, 나머지 길에서는 힘든 오르막길이 없이 평탄하여 자전거 타고 달리기 좋은 코스입니다. 

 

주말이었지만 끝도 없이 펼쳐진 것 같은 철원 평야길은 가끔씩 오가는 차들 외엔 한적하기만 합니다. 페달을 밟을 때 나오는 제 숨소리와 체인 돌아가는 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습니다. 길가엔 어느새 억새꽃들이 자라나 손을 흔들며 저를 응원해 주는 것 같네요. 가끔씩 저 멀리서 다가오는 자전거족들이 반가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 흔들어 인사를 나눕니다. 그러고 보니 고슬고슬하게 익은 알알이 귀여운 벼들도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를 하네요. 위 사진속 유난히 노랗게 익은 때깔 고운 벼들이 바로 철원 오대쌀입니다. 휴전선을 따라 경기도와 강원도의 민북마을 사람들이 경작하는 농지는 1200만평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봄에 모내기할 때는 인근 부대 장병들이 대민지원을 나와 도와주는 모습이 뉴스에도 나올 정도지요

 

중간 휴식처로 삼은 노동당사 건물에는 옆에 매점도 있어 간식거리를 사먹으며 체력을 보충할 수 있습니다. 6.25 전쟁 당시 포탄과 총탄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노동당사는 언제 봐도 전쟁의 공포와 폐해가 느껴지는 살아있는 건물입니다. 한반도 DMZ 관광의 필수 코스로 외국사람들도 많이 찾아오더군요. 노동당사를 지나가니 제2땅굴 표지판과 군부대, 검문소 등이 나타나 민북마을에 가까이 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월하리라는 동네를 지나니 길 위 인적은 점점 끊기고 가을 들판에서 추수를 하는 농부님들과 논 일하는 차량 이외엔 보이지 않네요. 한적한 가을 길을 혼자 달리는 기분이 좋기도 하고 쓸쓸하기도 해서 길 중간에 서있는 초소에 들러 앳된 얼굴의 초병에게 양지리 마을이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어보기도 합니다.   

 

양지리 마을입구에도 동네 이름을 쓴 표지판이 있으나 한가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마을 어귀에 세워진 알록달록한 군복 무늬 검문소가 그것인데 지나온 초소와 달리 군부대 입구처럼 여러 명의 헌병들이 오가는 차량들을 막고 서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찾아온 저를 쳐다보며 어색하게 맞이하던 병사가 안되겠는지 선임인 듯한 고참을 부르네요. '어떻게 오셨습니까!' 다행히도 친절하게 용무를 물어보는 선임에게 '자전거 타고 양지리 동네 한바퀴 둘러보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좀 당황한 기색을 띄더니 개인 용무로는 들어갈 수 없다고 하네요. 개인 방문도 괜찮다고 알고 왔는데요 하려다가 괜히 신경전을 하면 불리할까 싶어 자전거 여행에서 배운 '자전거를 이용한 반(半)애걸 신공'을 발휘합니다. "양지리 가보려고 서울에서 여기까지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달려 왔는데 좀 봐주세요! 동네 한바퀴 휙 둘러보고 금방 갈께요." 이번에도 이 방법이 먹혀들어갔네요.      

 

양지리 민북마을

1953년 휴전과 함께 대한민국 행정구역으로 편입된 양지리는 전쟁이 할퀴고 간 상처만을 간직한 버려진 황무지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하고, 1972년 정부 시책에 의해 민북마을 개척이 시작되면서 1973년 100가구가 이곳에 삶의 터를 잡았다. 이들 1세대는 버려진 땅에 희망을 심기 시작했고, 숱한 고생과 피땀으로 오늘날 국내 최고의 청정농지와 철새마을로 재탄생시켰다.

검문소에 신분증을 맡기고 마을에 들어가자니 저같은 외지인은 일몰전인 6시 이전에는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민족 분단의 산물이기도 한 민통선 안에 들어가보기는 처음이라 자전거를 타고 마을로 들어서는 기분이 얼떨떨합니다. 1970년대 정부에 의해 이 마을이 생길때 양지리 주민들은 9평의 가로형 단독주택에 2가구씩 입주했다고 합니다. 당시 100호였던 마을에 현재는 79가구가 남았으며 반씩 나눠 쓰던 단독주택 옆집을 사서 위 사진처럼 넓혀 쓰고 있더군요. 주택들은 오래 되었으나 활짝 피어난 꽃들도 많고 담장도 낮고 마당도 넓어서 푸근한 느낌이 드는 집입니다. 

 

동네에는 '철새 보는 집'이란 민박집과 이름도 재미있는 '두루미' 펜션도 있네요. 마을 옆의 큰 토교 저수지에 가을과 겨울에 두루미, 독수리, 쇠기러기 등 많은 철새들이 날아와 내년 봄까지 터를 잡고 사는 동네라서 그런가 봅니다. 마을 안에 양지리의 별칭으로 보이는 표석도 있는데 '철새마을'이라고 새겨져 있더군요. 양지리 민북마을에서 철원평야 쌀은 사람만 먹는게 아니라 철새들도 먹으며 겨울을 나네요.

 

보통 농촌마을에 가보면 아이들은 물론 젊은이들도 보기 힘든게 대부분인데 양지리 노인정 회관앞에서 자전거 타는 귀여운 아이들을 만나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동네 어귀길에서 유모차처럼 생긴 보행기를 밀며 뭐라뭐라 칭얼대는 손자 녀석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걸어가는 할머니 뒷모습도 그리 외로워 보이지 않았구요. 동네에 유일한 가게 혹은 마트격인 양지리 구판장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사먹으며 들으니 철원평야에는 청정 유기농법과 기계화 영농이 성공적으로 잘되서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구판장 주인 할머니께 농담으로 '동네 입구에서 군인들이 지켜주니 도둑은 없겠어요' 하니 여기가 이래봬도 청와대보다 안전하고 좋은 마을이라 하며 웃으시네요. 그도 그럴 것이 양지리 주민들은 주민증을 제시하면 무사통과지만 외지인은 검문소에 주민등록증을 맡기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출입해야 하니까요. 그 이후에는 마을에 연고가 있거나 관광 등의 목적으로 미리 군사단의 허가를 받아야 마을에 더 있을 수 있다고 합니다.

  

DMZ가 가까워 마을에 검문소와 군인들이 들어서 있지만 양지리는 생각보다 삭막하거나 경직되지 않고 여느 농촌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는 평범한 마을입니다. 저같은 외지인이 와도 경계하기는커녕 동네에 많기도 한 밤나무에서 밤을 같이 따자고 해 어떤 할아버지를 도와 한시간여를 긴 장대로 밤나무 가지들을 털었네요. 매년 양지리를 찾는 철새들처럼 많은 사람들이 민북마을을 고향처럼 찾아가면 좋겠습니다. 

 

가을 추수가 끝날무렵부터 벼의 낱알을 먹으러 오는 20만 마리의 쇠기러기들을 시작으로 두루미 950마리, 재두리미 1만 2000마리가 날아든다니 늦가을과 겨울에도 철새들을 보러 들려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버스타고 양지리 민북마을 가기 : 전철 수유리역 앞 수유리 버스터미널 - 동송읍 버스터미널 - 양지리


태그:#민북마을 , #철원, #동송읍, #양지리, #자전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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