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미국을 비롯해 유럽연합, 인도, 호주 등과 동시다발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FTA의 경제적 효과를 둘러싼 논란도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국회에 계류 중인 한미FTA 비준안의 경우, 최근 국책 연구기관의 연구에서조차 경제적 이익이 당초 예상과 달리 크게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지난 6월에 알고도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민간 연구기관인 국제통상연구소(TDI)가 확보해 지난 18일 공개한 내용을 보면, 한미FTA 발효 후 15년에 걸쳐 무역적자만 71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확인됐다. 또 TDI가 분석한 한미FTA의 GDP 증가율은 0.13%에 불과해, 이를 1년 단위로 환산하면 사실상 제로에 불과했다. GDP 증가율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한EU FTA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 GDP증가율이 0.14%에 불과했다. 한미FTA와 한EU FTA가 동시에 발효돼도 0.1~0.15% 증가에 불과했다.
반면 정부는 그동안 한미FTA로 10년간 GDP 6% 증가, 한EU FTA의 경우는 GDP가 3.08% 증가한다고 전망해왔다. 두 FTA를 합칠 경우 GDP 증가율이 7.6%에 달한다고 했었다. TDI의 분석과는 너무 차이가 나는 셈이다.
정부의 이상한 한미FTA 경제 효과 분석
도대체 누구의 말이 맞을까.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한미FTA에 대한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지난 2007년 4월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등 11개 국책연구기관이 합동으로 연구한 '한미FTA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다.
보고서는 한미FTA로 인해 10년간 6%의 실질GDP가 오르고, 일자리 34만 개 증가, 후생수준은 약 209억 달러 늘어날 것, 또 관세인하로 인해 향후 대미 무역수지 흑자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에 대해 국내 학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고,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세계 경제환경이 급변하자, 정부는 올해 초 KIEP쪽에 FTA 경제 효과 분석을 다시 맡겼다.
이해영 국제통상연구소 소장(한신대 교수)은 "KIEP가 최신 연구버전으로 GDP 증가율 분석작업 등을 진행하다가 지난 3월에 갑자기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KIEP의 이번 조사에선 GDP와 고용 부문 등 거시경제효과 부문이 빠진 채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KIEP쪽은 그동안 통용돼왔던 일반균형(CGE) 모형 분석 대신 부분균형 모형 분석 방법을 채택했다. CGE 모형 분석은 가능한한 모든 시장을 동시에 동시에 분석해, 시장과 시장간 상호연관성과 파급효과 등을 분석하는 기법으로, 전세계적으로 FTA 경제효과 분석에 널리 쓰인다. 지난 2007년 정부의 분석도 CGE 모형에 따른 것이다.
반면 부분균형 모형 분석 방법은 소수의 시장만을 분석대상으로 하고 있다. KIEP쪽은 보고서에서 "CGE 모형 분석에서 사용하는 국제무역분석프로젝트(GTAP)의 제6버전은 최근 경제상황이 반영돼 있지 않았고, 최근에 출시된 제7버전은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아 분석에 한계가 있다"면서 "현실적으로 선택가능한 부분균형 모형 분석방법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예상밖 큰 폭의 대미 무역수지 적자... 정부, 보고서 공개 미뤄
이해영 교수는 "그동안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일반균형모형 분석 방법으로 FTA 효과와 전망을 내놨는데, 갑자기 부분균형모형 분석을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이처럼 분석방법까지 바꿔서 한미FTA의 무역수지를 계산했지만, 결과는 정부의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그동안 관세인하에 따른 수출입 제품 가격 하락, 수출증대에 따른 무역수지 흑자와 일자리 창출 등을 강조해 왔던 정부였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KIEP의 '기발효 FTA와 한미FTA 발효시 경제적 효과분석' 보고서를 보면, 한미FTA 발효 후 15년에 걸쳐 대미 무역수지 적자가 70억7785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쌀을 제외한 농업분야에서만 적자 폭이 63억 달러를 넘어섰다.
장기적으로 무역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분야는 섬유와 직물(1억99만 달러), 자동차 등 수송기기(1억1137만 달러), 반도체 등 전자(91만 달러) 뿐이었고, 흑자 규모도 크지 않았다. 나머지 화학-고무-플라스틱, 철강-금속, 기계, 기타 제조업 등 전분야에 걸쳐 대미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같은 결과에 대해 KIEP는 "이번 분석은 여러 가정과 기준, 자료 등의 차이가 있어 2007년 경제적 효과 결과와 다른 접근법으로 도출한 것"이라며 "기존 연구 결과를 인정하고, (이번 보고서는) 이를 보완하는 연구 결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며 다소 궁색한 설명을 적어 넣었다.
이 보고서가 언론에 일부 공개되자, 기획재정부는 "이 연구는 생산성 향상과 생산효과, 소비자 후생 증대 등을 반영하고 있지 않은 추정치에 불과하다"면서 "최신 자료를 가지고 다시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이번 KIEP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정부의 FTA 경제효과는 뻥튀기?... TDI "GDP증가는커녕 오히려 감소"
이처럼 정부가 FTA 경제효과의 정확한 분석과 공개를 꺼리고 있는 가운데, 민간 연구기관이 직접 조사에 나섰다. 국제통상연구소와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는 최근 CGE 모형 분석방법으로 한미, 한유럽연합 FTA 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해냈다.
이번 작업을 진행한 신범철 경기대 교수는 "지난번 정부가 사용한 것과 같은 CGE 모형에 최신버전인 2004년 기준 데이터를 입력해 FTA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했다"면서 "이같은 조사는 국내에선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쌀을 포함해 관세철폐가 이뤄질 경우 한미FTA의 실질 GDP 증가율은 0.13%였고, 한EU FTA는 0.14%에 불과했다. 미국과 EU 동시에 FTA가 발효되더라도 GDP 증가율은 0.15%였다.
또 쌀을 제외하고 관세철폐가 이뤄졌을 때는 한미FTA의 GDP 증가율은 0.08%로 더 떨어졌고, 한EU FTA는 0.14%였다. 동시에 발효될 경우에도 0.10% GDP 증가율을 보였다. 이같은 수치는 그동안 정부가 예상한 GDP 증가율 수치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
신 교수는 "이번 조사를 보면 한미, 한EU FTA 모두 실질 GDP 증가율로 보면 거의 '0%대'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는 한미와 한EU FTA가 동시에 발효되면 시너지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했지만, 조사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였다"면서 "동시발효시 GDP 증가율이 각각의 FTA (GDP) 증가율보다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최규엽 새세상연구소 소장은 "현 정부는 미국 이외 EU와 호주 등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밀어붙이면서 경제성장과 일자리창출 등을 말하고 있지만, 이번 조사를 보면 전혀 근거가 없고, 타당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해영 교수는 "미국의 한미FTA 비준 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우리가 먼저 비준안을 처리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서 "국책연구기관에서조차 무역수지 이익이 없는 것으로 나온 만큼, 이제라도 FTA 비준안 처리를 연기하고, 민간과 정부가 합동으로 철저한 재검증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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