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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라는 책을 접했다. 제목과 표지에서 드러나는 청바지의 푸른 이미지와 노란색의 제목은 산뜻하면서도 건강한 이야기를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낳게 했지만, 그것은 나의 선입관에 불과했다.

 

모든 이들이 즐겨 입고, 여러 벌씩 소유하고 있는 청바지. 그토록 인기가 많고 아름다운 패션아이템인 청바지에 아름답게 표현해낸 이 책의 표지는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가는 세계 경제를 이야기하는 내용과의 불협화음. 즉, 겉과 속의 불일치를 상당히 잘 표현해냈다고 생각한다.

 

잘못된 방향으로 돌아가는 세계 경제? 즉 그것을 간단히 이야기해본다면 <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는 청바지가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들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현재 청바지를 제조하는 나라들의 여러 가지 고충을 한데 엮어 냈다고 이해하면서 읽어볼 수 있겠다.

 

솔직히 말해서 자동차나 기타 여러 제조업 관련 분야들 중에 불만사항이 하나도 없는 곳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업종 중에서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그 불만들을 파헤치고 있는 분야는 바로 섬유산업. 의류 제조업이다.

 

청바지로 설명되는 이 업종에 관련된 전 세계의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찬찬히 뜯어본다면, 우리가 추구하려는 자유무역이라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서 조금 더 신중한 선택을 내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샘솟을 것이다.

 

아제르바이잔의 원료 생산자들

 

청바지의 주 원료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목화였다. 문익점이 붓통 속에 숨겨온 바로 그 목화가 생산하는 면섬유가 바로 청바지의 원료가 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는 목화재배가 갈수록 거대화 되는 산업구조로의 변화 때문에 설 자리를 잃고 있는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의 가족 단위 목화 재배의 현실을 알려준다.

 

목화 재배만이 이런 기업형 농장에 잠식되는 것은 아니다. 커피나 담배와 같은 작물을 포함해 거의 모든 농작물들이 목화와 같은 운명에 처해있다. 갈수록 농장이 거대화 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거대화를 통해, 그리고 재배기법이나 농작물의 개량으로 얻어지는 작물들이 같은 면적당 재배효율이나 가격을 극대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때문에 희생되는 소작농들이나, 기업형 농장에서 일하면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저개발국가의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접하는 신문 보도에서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 커피 원료 수입 같은 경우엔 공정무역이라는 기치를 내세우고, 제3국가들의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자는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다. 그렇지만 그런 움직임은 아직도 극히 미미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청바지의 원료가 되는 목화재배에 관련해서는 아직도 한참이나 요원해 보인다.

 

이탈리아의 패션업계

 

아르마니, 베르사체, 구찌, 프라다의 진원지. 전 세계인들의 패션을 프랑스와 양분하는 이탈리아에서도 자유무역 때문에 많은 불만사항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조원가의 절감에 대한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운동화 전쟁>이라는 책을 보면, 과거 업계 점유율 1위를 차지하던 아디다스가 <나이키>의 생산비용 절감 전략에 의해 어떻게 무너졌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탈리아의 업계들도 이처럼 중국공장으로 대표되는 제3국의 저렴한 노동력으로 인한 자국내의 제조업 이탈현상에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었다. 자국 노동자의 일자리 상실 뿐만 아니라 이런 제조업 이탈현상은 실제로 중국공장에 찍어내는 저렴한 상품들과 소위 '짝퉁'이라고 불리는 가짜 상품의 유통으로 한 단계 더 진화하여, 이탈리아의 '명품'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생산해낸 소비재들을 무작위로 복제하여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짝퉁' 청바지나 아무런 상표가 부착되어 있지 않은 청바지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환경오염물질과 관련한 것이라고 한다. 청바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면을 짜서 이은 청바지에 인디고라는 염료와 화학약품을 함께 사용하여 물을 들이고, 왁싱을 하기 위해서도 많은 광물조각이 사용된다고 한다. 

 

하지만 제3국의 제조업체들은 이런 유해물질들을 환경 기준 초과량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생산비 절감을 위해 그런 폐기물을 처리장치 없이 방류하기 때문에 그것을 소비하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지역 환경에 미치는 부작용이 상당히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설명한다.

 

이런 환경오염이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피해를 야기하는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지구 온난화'와 같은 것들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만 해당될 수 있는 국지적인 예로는 우리나라의 봄철만 되면 일어나는 '황사현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캄보디아의 제조업체 현황

 

그렇다면 캄보디아와 같은 노동력이 싼 국가들은 유리한 것이 아닐까? 왜 캄보디아의 상황이 책 속에 들어있을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이 책에서는 말해준다. 캄보디아와 같은 극도로 가난한 국가의 산업구조는 거의 대부분이 제조업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이런 국가들의 수출을 할당해주는 '섬유쿼터제'가 폐지될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다.

 

지금까지는 세계무역에서 캄보디아가 차지하는 할당량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사회의 구조가 유지되었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캄보디아에 진입했으며, 책에서 이야기되는 것처럼 여성노동자들의 인권도 가족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신장되었지만, 쿼터제의 폐지 이후엔 부패한 정부와 물류 수송의 불편함 때문에 많은 사업가들이 극빈국의 제조공장을 떠나서 노동력이 싸고, 운송이 편리한 중국의 '선전' 같은 곳으로 전부 몰려든다고 우려한다.

 

이것이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유무역이라면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 아닌가? 모든 투자자와 공장은 가격이 저렴하고 이익이 높은 시장으로만 찾아 나선다면, 그런 혜택을 줄 수 없는 시장이나 국가들은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혹자는 자유시장의 경쟁력에 뒤지는 산업은 과감히 포기하고 지식집약적 산업이나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업종으로의 집중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나에게는 이러한 주장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은 빨리 접어버려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곧이 곧대로 따른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 다양성은 존재하지 않으리라는 걱정이 생긴다.

 

생각해보자. 몇 십년간 자신의 길이라고 걸어온 수 많은 농부들과 노동자들에게 가격경쟁력에서 뒤지니까 그만두고 반도체업계나 친환경연료 개발 쪽으로 진로를 바꾸라고 이야기하면서 관련 직업교육을 받으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만약 당신이라면 이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가 내게 준 것

 

이 책은 청바지 하나로 전 세계 경제의 문제점을 조명하고 있는 상당히 뛰어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바지를 다른 어떤 것으로 바꿔본다 하더라고 아마 이 책의 결과와 같은 결과가 벌어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유무역만을 추구하고 있는 불공정한 세계무역의 환경에서 어떤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이 책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점들을 억제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서는 청바지업계의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룸스테이트'라는 청바지 브랜드의 디자이너 로건의 사례를 싣고 있다. 그는 유기농 섬유를 수입하고, 제품을 만드는 공장도 엄격한 근로기준을 충족시키는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공정무역을 외치고 있는 경영자중의 한 사람이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비자 개개인이 무턱대고 낮은 가격만을 추구하는 소비에서 벗어나서 로건과 같은 경영자들이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제품을 적극 구입할 의사를 보임으로써 공정한 제품에 적당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값싼 제품만을 찾아나서는 당신이 많을수록 점점 더 싼값만을 추구하는 기업가들은 늘어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조금 더 당신의 소비생활에서 적당한 선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명품을 제 값 주고 구입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적당한 상품을 선택할 줄 아는 지혜를 기르자고 이야기 하고 싶을 뿐이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그런 지혜를 기르는 것이 완벽한 결과를 불러오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어떤 제품을 구입하기 전에 '이것이 과연 공정한 가격인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최지향 옮김, 부키(2009)


태그:#블루진, 세계 경제를 입다, #레이철 루이즈 스나이더, #부키,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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