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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소송으로 온 언론이 시끄럽습니다.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이번 사건을 딱 두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박원순 : 국정원 민간사찰 때문에 시민단체 힘들다'
'국정원 : 우리가 언제? 너 콩밥 먹을 준비해라'

박원순이 위클리 경향과 인터뷰를 하며 국정원을 비판했는데 이걸 가지고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실제 고소를 '때려버린' 거지요. 그러니까 박원순이 죄를 지었으니 심판을 받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는 뜻입니다.

재밌게도 원고가 '대한민국'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 소장에 원고(소송을 건 사람) '대한민국', 피고(소송을 당한 사람) '박원순'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자, 이 뜻은 무엇일까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오늘도 찬찬히 분석 들어가 봅시다.

 국정원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박원순을 고소한 소장
국정원이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박원순을 고소한 소장 ⓒ 원순닷컴

첫째, 왜 원고가 대한민국일까? 이 사건을 전혀 모르는 제 3자, 그러니까 외국인이 이 소장을 봤다고 칩시다. (참고로 소장이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하여 법원에 내는 문서를 말합니다.) 피고란에 적혀있는 박원순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일단 놀랄 겁니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피고는 세계적으로도 드물테니까요. 아마 극악한 범죄를 일으킨, 히틀러 정도의 사람으로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이 정도 소장이 작성되려면 적어도 그 나라에 속한 국민들 대부분이 공공의 적이라고 생각해야 할테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그렇습니까? 대한민국 국민들 대부분이 박원순을 입에도 꺼내기 힘든 범죄자라고 생각하고 있나요? 그 나라의 수준이 곧 그 나라 시민단체의 수준과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저는 박원순에 대해 굉장히 긍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박원순은 시민단체의 선봉장격인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재단 같은 경우엔 한국의 경제 발전에 비해 한참 떨어지는 건전한 기부문화 조성을 살려보자고 만든 단체이지요. 박원순은 거기서 파생된 여러 가지 활동을 인정받아 공공봉사 부문에서 막사이사이상까지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정부 비판 좀 했다고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걸고 고소를 했습니다. 왜 하필 원고가 대한민국이냐구요? 이 소장에는 자신들을 비판하는 자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 정서가 깔려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감히 원고에 '대한민국'이라고 써 놓을 배짱은 발휘할 수 없지요.

저는 이 오만함의 근원이 어디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아니, 사실 너무 황당해서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이런 일은 태양왕 루이 14세 때나 가능한 일 아닌가요? 정부가 곧 대한민국입니까? 국정원이 곧 대한민국입니까? 그들 대부분은 우리가 일 잘하라고 뽑아준 공무원에 불과한 사람들 아닌가요? 우리가 뽑은 사람들이 아니라면 우리에게 봉사를 다짐하고 선서한 사람들 아닌가요?

도대체 이 일을 벌이시는 분들이 언제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인지 궁금합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남산에 데려가 사람을 고문하고 나라 이름 팔아서 국민 괴롭히는 시대가 그립나 봅니다.

 원순닷컴 홈페이지
원순닷컴 홈페이지 ⓒ 원순닷컴

둘째, 왜 이런 짓을 하는 걸까요? 당연히 2억 때문에 하는 소송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송, 100% 원고인 '대한민국'이 질 거라고 봅니다. (어감이 좀 이상하군요.) 재밌는 건 상대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그들이 바보도 아닌데 왜 지는 소송을 할까요.

미네르바 사건과 본질은 똑같습니다. 당시 정부는 미네르바가 유죄임을 확신하고 잡아 갔을까요? 전 아니라고 봅니다. 전 국민적인 위축효과를 노린 거죠.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본보기 효과라는 게 있지요. 일일이 불러서 떠드는 것보다 한 명을 '확실히' 조져 놓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대부분은 알아서 기지요.

악법보다 무서운 건 그 법이 가져오는 위축효과입니다. 이렇게 박원순이라는 한 개인을, 속된말로 완전히 조져 놓으면 과연 누가 대놓고 정부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유무죄 여부는 상관 없습니다. 한번 이런 일을 경험한 사람들은 웬만하지 않고서야 세상만사가 다 허무해지기 마련입니다. 평생 사회를 위해 몸바쳐 왔는데, 정부 비판을 했다고 고소를 하다니요. 그것도 국가의 이름으로. 여러분 같으면 모든 걸 털어버리고 떠나고 싶지 않을까요?

이런 사건이 계속되면 폭발적인 계기가 일어나지 않는 한, 소수의 용기있는 자들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침묵하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아니, 어쩔 수 없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에 무죄가 입증된다 할지라도 고소에서 오는 정신적 충격과 엄청난 비용, 그리고 사회적 시선과 개인적인 시간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데 누가 정부를 비판할 수 있을까요. 직장인은 해고당하지 않더라도 그 스트레스로 제대로 된 업무처리를 할 수 없을 테지요. 누군가는 가정이 깨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런 일들이 아직 순수한 정의가 살아있는 어린 친구들의 시야를 넓혀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창시절 물렁한 학생회 회장이었던 저는 고작해야 투닥거리는 수컷들의 서열놀이나 말리고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는 친구들을 닥달하는 정도였습니다. '적'이라고 해봤자 내일이면 금세 화해할 친구들이었죠.

하지만 '박원순 소송'과 같은 일들을 보고 자란 지금의 학생들에겐 그 '적'이 '그들만의 국가'가 되어 버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신념을 가지고 정부를 비판하거나 촛불집회에 참가하면 수업 중에 잡혀갈 걸 각오해야 하는 현실이지요. 어마어마하게 스케일이 달라질 우리 어린 친구들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그들만의 대한민국이 '박원순'을 고소했지만 이 일로 태어날 제2, 제3의 박원순과 싸울 준비를 하셔야 할 겁니다. 대한민국을 바꾼 건 항상 그들이었으니까요.  


#박원순#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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