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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나보다. 한 집 건너 옆집 할머니께서 오셨다. 관절염으로 걷지도 잘 못하고, 허리도 거의 구십도 가까이나 구부러졌으면서도 농사일을 놓지 못하고 고추다 고구마다 심지어 논농사까지 손수 관장을 하시는 할머니다.

큰딸한테 고추 몇 근, 작은딸한테 고구마 얼마, 며느리가 강냉이를 좋아하니 고추밭 옆으로는 강냉이를 심고, 비탈진 곳에는 호박을 심어서 즙을 내 손녀딸 이뻐지게도 해야겠고, 쌀가마니는 누구한테 몇 개 누구한테는 또 몇 개. 해도 해도 지치지 않고 지치기는커녕 언제나 새롭기만 한 이런 계산만으로도 할머니는 아마 겨울밤이 하나도 길지 않고 당신이 늙었다는 생각은 해볼 틈도 없을 것이다.

"내가 머시냐 거, 쩌그 혹시 수세미 있는가 해서, 여그는 별것별것 다 있응게 혹시나 해서 그려요 잉?"
"수세미? 약으로 쓸 거라면 수세미는 인제 늦었는데, 왜에?"

미안스럽고 염치없다는 듯 합죽이 웃음을 흘리는 할머니에게 나는 거의 반말로 한다. 할머니들은 그것을 좋아하신다. 전혀 낯선 사람이 반말을 깔고 들어오면 "저런 호로상놈의 새끼"라고 나중에 반드시 인물평을 하지만 일단 낯이 익었다 하면 깍듯한 존칭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하신다.

"아이 그렁게 딸년이, 머시냐 그 머라더만,"
"아, 애들이 기침을 자주 하는 모양이군요. 아니면 어른 가운데 누구 어깨가 많이 아프다거나."
"잉, 잉 그려, 그려, 야튼간에 수세미가 있어야 한다고, 그것이 그렇게도 좋다고 안 하요."

큰딸이 서울에 사는데 아마 어디어디가 어떻게 안 좋으면 무엇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다는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주변에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아니라 인터넷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녀는 정보를 입수하면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해서 구해달라고 한다. 나는 그 따님을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짐작컨대 그녀는 아마 어머니에게 자꾸 뭔가 주문을 하고 귀찮게 하는 방식으로 어머니를 원격조정하는, 이를테면 운동을 시키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집간 딸이 뭔가를 해달라고 보채고 조르는 것만큼 신나고 보람찬 일도 할머니에게는  달리 없을 것이다. 할머니는 시집간 딸로부터 뭔가 생뚱한 주문을 받으면 일단 내게로 오신다. 내가 원체 게을러서 사백여 평이나 되는 텃밭에 마을 어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돈 될 만한 것은 하나도 없고" 도라지에 더덕에 엉겅퀴다 벌개미취다 뭐다 이런저런 온갖 잡새 같은 꽃씨들이나 뿌려두었기 때문이다.

값비싼 소나무가 심어진 본격적인 정원도 아니고, 잡초 우거진 그야말로 무슨 황무지 같은 마당을 보면서 마을 사람들이 저게 무슨 빌어먹을 짓이냐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 때 할머니 역시 나를 비난하는 쪽이었지만, 한 번 보고 두 번 보는 동안 정이 들어서 이제는 뭔가 당신에게 없는 것이 있으면 내게로 달려오신다. 작년 추석에는 흰접시꽃 뿌리를 좀 캐달라고 하시더니, 그 전년 추석 즈음에는 흰봉숭아 누구 주지 말고 아꼈다가 당신 달라고 하시더니, 금년에는 수세미 있으면 달라고 오신 것이다. 내년쯤이면 혹시 당뇨에 좋다는 먹딸기 다른 사람 주지 말고 추석에 오는 '딸년' 주게 당신 달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

완숙기에 접어든 수세미 이렇게 익은 수세미의 표피를 벗기면 아래와 같은 그물 형태의 알갱이 수세미가 나온다.
완숙기에 접어든 수세미이렇게 익은 수세미의 표피를 벗기면 아래와 같은 그물 형태의 알갱이 수세미가 나온다. ⓒ 김수복

진짜수세미 이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면, 철 수세미나 플라스틱 제품과는 완연히 다른 부드러운 맛을 당연하게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수명이 짧다는 흠이 있다.
진짜수세미이 수세미로 설거지를 하면, 철 수세미나 플라스틱 제품과는 완연히 다른 부드러운 맛을 당연하게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수명이 짧다는 흠이 있다. ⓒ 김수복

어쨌거나 수세미를 약용으로 쓰기에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 큰딸이 수세미의 효능을 어디서 듣고 친정어머니에게 주문을 할 때는 필경 오이 수세미일 텐데 이 시기의 수세미는 태반이 익어 버려서 씨앗이나 얻을 수 있고, 씨앗을 뺀 뒤에 남는 그물망은 설거지할 때 그야말로 수세미로나 써야 한다.

그래도 가을이면  바빠져서 앞다퉈 열리는 애호박처럼 젊은 것들이 찾아보면 더러 있기도 할 것이다. 이파리들 속에 숨어 있을 그것을 한 번 찾아봅시다, 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소리도 크게 키득키득 웃어댄다.

"허허허이 참, 내가 시방도 생각하믄 서거퍼서."
"아니 왜요? 뭐 있어요?"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다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웃는 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할머니의 눈가는 벌써 젖어 있다. 뭐지? 왜 갑자기 저러시는 거지? 은근 긴장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는데 할머니는 한참이나 입맛을 쩍쩍 다시다가는 겨우 말문을 연다.

"아니 그렁게 쩌그 저 아래, 재작년이던가, 설 지나 바로 돌아가신 할마씨네, 알지라?"

표정으로는 웃으면서도 우는 목소리를 내며 손을 들어 바로 아래 울타리 건너를 가리킨다. 금년 봄에 철거된 빈 집터, 물론 나도 안다. 모를 리가 없다. 내가 이 마을에 이사를 왔을 때 할머니 혼자 계셨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전주에서 온 중년의 아주머니가 그 집을 샀다. 그런데 그 해 여름 구렁이가 싱크대 밑에 도사리고 앉아 혀를 낼름거리는 사태가 벌어졌고, 정나미가 떨어진 아주머니는 집을 팔고 돌아가 버렸다. 새로 집을 산 사람은 집이 목적이 아니라 땅이었던 까닭에 그 집은 이제 사라지고 뽕나무가 자라는 중이었다.

"그 할마씨가 살아생전에, 허허허이 참, 생각만 하믄 웃음이 먼첨 나온당게."

할머니는 여전히 웃음 반 울음 반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인 채로 듣는 사람 애를 태운다. 이렇게 되면 나도 어쩔 수 없다. 자리를 깔고 앉아야만 한다.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돌아가신 할머니는 아들 하나 딸 하나 두 자녀를 두었다. 딸은 서울에서 그럭저럭 살아가지만 아들은 아니었다. 아들도 처음에는 제법 잘 나갔다. 말단이나마 공무원으로 이십 년 근속을 했고 표창도 몇 번이나 받았다. 그런데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보증을 서 주었다가 패가망신의 길을 걷게 되었다.

월급을 차압당하고, 대안도 없이 착하기만 한 남자와는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아내의 결정에 따라 이혼도 당하고, 미래가 없는 남자에게 아이들을 맡길 수 없다는 역시 아내의 일방적인 결정을 존중해서 아이들까지 넘겨준 채로 할머니의 아들은 노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들은 부끄럽고 죄송해서 고향에는 얼굴도 내밀지 못하고 소식을  끊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그런 일은 으레 알고 싶지 않아도 소문이 먼저 퍼지기 마련이라, 하루아침에 아들 며느리에 손주들까지 다 잃어버렸다는 것을 할머니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은, 해마다 명절이면 아이들 소리에 웃음꽃이 피곤하던 집안에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고 마을 사람 몇몇이 밥이라도 함께 먹자고 데리러 온 뒤에서였다.

이때부터 할머니는 거의 완벽한 침묵으로 들어갔다.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를 가능한 한 피하려 했고, 어쩌다 사람을 만나도 "어서 죽어야지" 한 마디뿐이었다. 그러면서도 콩 심을 때가 되면 콩을 심고, 깨를 수확할 때가 되면 깨를 털어 항아리에 저장했다. 필경 아들 며느리가 내려오면 보따리 보따리 싸주겠다는 계산속이었겠지만, 며느리는커녕 아들조차도 일 년이면 한두 번 전화나 겨우 걸려올 뿐인 채로 이 년여 세월이 게눈처럼 사라져 갔다.

그렇게 돌아가시기로 작심을 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을까.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그 할머니가 전화를 해서는 얼른 좀 와달라고 하더란다. 마실은커녕 이쪽에서 찾아가도 응대를 안 해주니까 민망해서 거의 왕래를 끊고 지내던 참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야심한 밤에 전화가 온 것이었다. 한밤중에 자다가 말고 무슨 큰일이 벌어지나보다 해서 허둥지둥 달려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겨우 한다는 말이 "항꼬 좀 울고 자퍼서"하더라는 것이었다.

혼자는 이제 눈물도 안 나와서, 울고는 싶은데, 울고 나면 속이 좀 풀릴 것 같은데 울어지지가 않아서, 그래서 아마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친구처럼 지내온 이웃에게 전화를 걸었을 터이었다.

"아따 참말로 그런 소리를 하는디, 내 속이 어찌케나 폭폭한지, 내가 먼첨 눈물이 나오더랑게. 아 그리서 밤새 손 잡고 울지를 않혔겄소. 손을 잡으니께 그 손을 놓을 수가 있어야제. 그리서 얼굴 한 번 보고 울고, 손 한 번 보고 또 울고, 아 그렇코롬 울다가 본 게 창호지가 퍼렇더랑게. 허허허이 참말로, 내 생전 그렇게도 날이 샐 적까지 울어본 것도 처음이었는디...... 오늘 내칼없이 그 생각이 다 나네......"

할머니는 이슬비가 뿌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보며 또 한 번 허허허이 하고 풍선에서 바람 빠지는 것 같은 소리로 웃는다. 대나무 이파리들 부딪는 소리도 소슬한 겨울밤에 두 할머니가 손을 맞잡고 앉아 눈물을 흘리는 그림 한 점이 허공에 걸려 있다는 느낌인 채로 나는 크게 아주 크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아이고 참, 잘 하셨네. 정말로 잘 하셨네. 그런 시간도 없이 돌아가셨으면 얼마나 외롭고, 돌아가신 뒤에는 또 얼마나 억울하셨겠어요."
"그랬을랑가?"
"그럼요."

울고 싶을 때, 혼자서는 차마 무서워서 못 울겠을 때 부를 만한 사람이 있고, 그 부름에 즉각 달려와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다운 것이 아닐는지, 사는 맛이 아닐는지, 어쩌고 그런저런 맥락도 없는 생각을 나는 아마 한참이나 뒤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바람에 나는 수세미 찾는 것을 잊어버렸고, 할머니 또한 내 집에 온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어리둥절한 채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냥 내려가셨다. 그리고 한 시간여 쯤 뒤에, "하이고 참말로 내 정신도..."하고 합죽이 웃음을 흘리며 구부러진 허리를 주먹으로 탁탁 때려가며 할머니는 다시 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노년의고독#울고싶을때#더불어사는삶#오이수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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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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