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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삼성상은 중간의 부처상과 좌우로 문수·보현보살상이 석탑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입상 사이에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수십 존의 불상을 새겨놓아 이채롭다.
 화엄삼성상은 중간의 부처상과 좌우로 문수·보현보살상이 석탑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입상 사이에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수십 존의 불상을 새겨놓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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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편불보은경변상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부모가 베푸는 사랑과 은덕을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묘사했다.
 대방편불보은경변상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부모가 베푸는 사랑과 은덕을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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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는 둔황이, 남에는 다주가 있다.'(北有敦煌, 南有大足)

중국은 석굴의 나라다. 인도에서 불교가 전래된 이래 중국 역대 왕조는 수많은 불탑과 석굴을 조성했다. 중국 각지에 현존하는 석굴만 수백여 곳에 달한다. 각지에 널린 불교 석굴유적 가운데 산시(山西)성 다둥(大同)의 윈강(雲崗),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의 룽먼(龍門), 간쑤(甘肅)성 톈수이(天水)의 마이지산(麥積山)과 둔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그리고 충칭(重慶)의 다주(大足)가 중국 5대 석굴로 손꼽힌다.

다주는 충칭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80여㎞ 떨어져 있다. 8세기 당나라 때 오늘의 지명으로 등장한 이래, 오늘날 총면적 1392㎢, 24개의 진향(鎭鄕)을 거느리고 있다. 2007년 현재 인구 93만여 명, 지역총생산 101.9억 위안(한화 약 1조8342억원)을 기록하고 있어 중국 내에서 그리 크지 않은 현 소재지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한 다주지만, 그 명성은 중국 전역에 자자하다. 다주에 특별난 문화유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 12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다주석각'(大足石刻, Dazu Rock Carvings)이 바로 그것이다.

다주석각은 둔황의 막고굴, 쓰촨(四川)성 러산(樂山)의 러산대불과 더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불교 석굴·석각이다. 다주석각은 일반적인 석굴·석각 유적과 전혀 다르다. 한 곳에 한정된 불교유적이 아닌 다주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각 유적을 통칭한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바오딩(寶頂)산과 베이(北)산을 비롯하여 난(南)산, 스하오(石籇)산, 스먼(石門)산 등은 중국 국보로 지정된 5대 석각이다. 그 밖에 충칭시 문화재로 지정된 4곳, 현급 문화재로 보호받는 기타 66곳 등을 합쳐 무려 75곳에 10만여 존의 석각이 남아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는 다주를 '석각의 고향'(石刻之鄕)이라 부르고 있다.

바오딩산석각으로 들어가는 길 앞에 세워진 석패방.
 바오딩산석각으로 들어가는 길 앞에 세워진 석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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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사 앞에서 바라본 다포완의 석가열반성적도. 석가열반성적도 앞 구곡황하는 석가모니가 일으킨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상징한다.
 성수사 앞에서 바라본 다포완의 석가열반성적도. 석가열반성적도 앞 구곡황하는 석가모니가 일으킨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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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주는 중생과 불교 석각이 공존하는 땅이다. 이런 다주에 처음 석각이 조성된 시기는 당나라 말기 무렵이다. 베이산 일대의 사찰을 중심으로 민중들이 깊은 불심을 석각으로 새겨나갔다. 송나라 때 가장 번성했던 석각 조성은 원·명·청 등을 거치면서 중국 남방불교예술의 정화로 꽃피웠다.

다주석각은 승려와 일반 불자가 자발적으로 나서 돌을 쪼개 만들었다. 이는 황실에서 후원한 윈강·룽먼석굴, 변방지역의 귀족과 토호·장군이 조성을 주도한 막고굴과 다른 점이다. 북방 석굴은 불교 흥성기인 남북조나 수당시기 유물로, 거대하고 화려한 예술적 특징을 보여준다. 반대로 다주석각은 남송시대의 작품이 많고 소박하고 민중의 삶과 생활을 잘 드러내고 있다.

비록 다주석각은 뛰어난 벽화와 희귀한 문헌자료가 쏟아져 나온 막고굴에 비하지 못하지만,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교의 사상을 담거나 유·불·선 3교를 합쳐 형상화한 석각까지 존재한다.

다주석각 중에서 바오딩산·베이산·스하오산의 석각은 예술적 가치가 가장 뛰어나다. 지난 천여 년간 중국 사회·문화·종교·철학의 발전과 변화를 보여주는 예술품이다. 특히 다주현청에서 동북쪽으로 15㎞ 떨어진 바오딩산석각은 그 중 백미다.

바오딩산석각은 남송시대 조지봉(趙智鳳) 대사가 밀종(密宗)의 대도량으로 불사를 건립하면서 만들어졌다. 바오딩산석각은 다포완(大佛灣)을 중심으로 사방 2㎞에 걸쳐 펼쳐져 있다. 크진 않지만 조 대사와 그 제자들이 1179년부터 1249년까지 7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조성했다.

성수사(聖壽寺) 아래 자리 잡은 석각은 웅대한 규모와 정교한 조각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다. 입구부터 500여m나 이어지는 석각 배치는 한 폭의 입체 그림과 같다. 단순히 석각만 판 것이 아니라, 배수·채광·역학·방충 등의 시설도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졌다. 석각은 'U'자 형태로 계곡 내에 배치되어 있어 '다포완'이라 불리게 됐다.

좌우로 문수·보현 등 12명의 보살이 석가모니에게 가르침을 받아 성불에 이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원각도장. 앞에 무릎 굻고 앉아있는 이는 성불하기 전의 석가모니다.
 좌우로 문수·보현 등 12명의 보살이 석가모니에게 가르침을 받아 성불에 이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원각도장. 앞에 무릎 굻고 앉아있는 이는 성불하기 전의 석가모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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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도는 어리석은 소가 사려 깊은 목동을 만나 서로 교류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묘사한 석각이다.
 목우도는 어리석은 소가 사려 깊은 목동을 만나 서로 교류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묘사한 석각이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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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딩석각을 들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석굴은 원각도장(圓覺道場)이다. 원각도장은 높이는 9m, 넓이가 9m, 깊이는 12m에 달한다. 다주석각 중 가장 규모가 큰 석굴이다. 다른 다주석각이 석면을 정으로 깨서 석각을 새겼다면, 원각도장은 자연동굴에 석굴을 조성했다. 이 때문에 달리 '원각동'이라고도 불린다.

원각도장은 당나라 때 조판된 불경인 <대방광원각수라료의경>(大方廣圓覺修羅了義經)의 내용을 형상화한 것이다. 줄여서 <원각경>이라 불리는 불경은 성불한 석가모니가 문수·보현 등 12명의 제자를 받아들여 가르침을 주고 불문을 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원각도장 중앙의 세 불상은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석가모니를 묘사하고 있다. 좌우로는 각각 6보살을 배치했는데, 원형처럼 둘러앉은 모습이다. 삼불상 앞에 무릎 굻고 앉은 이는 성불하기 전 석가모니 본인이자, 석가모니에게 가르침을 받는 불자이기도 하다. 조각은 생동감 넘치고 정교할 뿐만 아니라 채색도 잘 보존되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원각도장을 나와 마주치는 석각은 목우도(牧牛圖)다. 목우도는 총 길이가 27m에 달하는데, 한 목동과 소의 교류와 사랑을 10폭의 석각으로 묘사했다. 목우도는 본래 송나라 때 유명한 시인 양걸(楊杰)의 '목우송'(牧牛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목우송은 들판을 떠돌던 어리석은 소가 사려 깊은 목동을 만나 서로 교류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노래했다. 이는 단순한 한 편의 시가 아니라 불교 선종의 '이심위주'(以心爲主) '견성성불'(見性成佛) 사상을 투영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중생이 석가모니를 만나 깨달음을 얻고 만물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갖추게 됐다는 것이 목우송의 본뜻이다.

이런 목우도를 원각도장 옆에 배치한 것은 성불하기 전 석가모니가 겪어야 했던 혼돈, 불문에 들어서기 전 중생의 어리석음을 표현했다. 바오딩석각은 불자들에게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도장인 셈이다.

불국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호법신들이 늘어선 호법신상.
 불국을 지키는 무시무시한 얼굴을 한 호법신들이 늘어선 호법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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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도윤회도는 인간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육도윤회도는 인간이 살면서 누릴 수 있는 즐겁고 아름다운 세상과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세상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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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우도 맞은편에는 호법신상이 있다. 호법신들은 불교의 나라(佛國)를 지키는 수문장이자 수호신이다. 호법신들의 얼굴은 한결같이 우락부락하고 위협적이다. 비록 무시무시한 그들이지만 호법신 사이마다에는 부처와 8명의 보살이 있다. 부처와 보살들의 모습은 온화하고 평온하다. 호법신들이 불국을 지키기 때문이다.

호법신상을 지나면 육도윤회도(六道輪回圖)가 눈에 들어온다. 육도윤회도는 높이 7.8m, 폭 4.8m로 이른다. 도깨비 형상의 사람이 거대한 원형도를 들고 있다. 원형도 안은 육도로 나눠지는데 위는 삼선도(三善道), 아래는 삼악도(三惡圖)라 불린다.

삼선도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즐겁고 아름다운 생활상을 묘사했다. 이에 반해 삼악도는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체험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중 가장 즐겁고 아름다운 것을 천도(天道), 가장 고통스러운 것을 지옥도라 한다. 육도 중앙에서는 부처상이 있어 인간 만물사를 주관하는 주체임을 상징한다.

육도윤회도 바로 옆은 광대보루각도(廣大寶樓閣圖)다. 광대보루각도는 당나라 때 번역된 불경의 내용을 근거로 조성됐다. 한 보물산(寶山)에 살던 세 신선이 불문에 귀의하여 불법을 닦아 성불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세 신선 아래 새겨진 글자에서 보듯, 바오딩산석각의 유래가 광대보루각도와 관련된 불경에서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광대보루각도을 지나면 거대한 입상 세 개가 있다. 중간의 부처상과 좌우로 문수·보현보살상인데, 이를 통틀어 화엄삼성(華嚴三聖)상이라 부른다. 화엄삼성상은 높이가 m, 폭이 2.9m에 달한다. 부처는 독경하는 모습이, 문수·보현보살은 <화엄경>이 들어있는 불탑을 들고 있는 형상이다.

입상 사이와 주변에는 각기 다른 가부좌 모습을 한 88존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모든 좌상의 높이는 정확히 0.76m로 일치한다. 화엄삼성상 또한 높이가 모두 똑같다.

바오딩산의 천수관음상은 중국 내 천수관음상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다. 천수관음상의 손은 각기 다른 세상의 만물을 표현하고 있다.
 바오딩산의 천수관음상은 중국 내 천수관음상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정교하다. 천수관음상의 손은 각기 다른 세상의 만물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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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와불상이 중심을 차지하고 지상세계 중생들의 심오한 불심을 바탕으로 석가모니가 열반하는 모습을 묘사한 석가열반성적도.
 거대한 와불상이 중심을 차지하고 지상세계 중생들의 심오한 불심을 바탕으로 석가모니가 열반하는 모습을 묘사한 석가열반성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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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삼성상을 보고 나면 다포완 내 유일하게 있는 전각이 찾는 이를 맞이한다. 전각 안에는 천수관음(千手觀音)상이 있다. 천수관음의 정식명칭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千眼觀世音菩薩)로, 불교 육관음 중 하나다.

중생이 인생사에서 겪는 고난과 번뇌가 다양하듯, 일상사에서 필요한 만물 또한 여러 가지다. 중앙에 자리 잡은 부처에서 뻗어 나온 천개의 손에는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사물을 담고 있다. 부처와 사물의 모습도 정교하고 생동감 넘친다.

본래 천수관음상은 당나라 말기 때부터 집중적으로 조각되었다. 중국 내 다른 지역은 거의 대부분 파괴됐지만, 쓰촨 일대는 보존과 가치가 뛰어난 불상이 지금도 남아있다. 이중 바오딩산의 천수관음상은 예술적 가치가 가장 높다. 높이 7.2m, 넓이 12.5m나 달해, 현존하는 천수관음상 중 가장 크다.

다포완 정중앙에 자리 잡은 석가열반성적도(釋迦涅槃聖迹圖)는 계곡 내에서 가장 큰 조각품이다. 높이가 6.8m, 길이는 31m에 달해 중국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와불상이기도 하다.

석가열반성적도는 불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기재된 석가모니의 열반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반열반경>에는 '석가모니가 머리는 북쪽에 두고 다리를 남쪽에 뻗어, 배를 서쪽으로 등을 동쪽을 향해 누운 채 열반했다'고 적혀있다. 눈은 지그시 감고 얼굴은 평온하며 잠을 자는 듯하면서도 정신은 또렷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석가열반성적도 앞에는 각기 다른 모습의 여러 불상과 문무대신(文武大臣)상이 늘어져 서있다. 석각 천장에도 다양한 벽화가 그려져 있어 그 아름다움을 더한다. 흥미로운 것은 석가열반성적도 앞에 파헤친 수로 구곡황하(九曲黃河)다. 이것은 석가모니가 일으킨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을 상징하는 배치 구조다.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를 형상화한 구룡욕태자도.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를 형상화한 구룡욕태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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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은중경변상은 부모가 아이를 잉태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부모은중경변상은 부모가 아이를 잉태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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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열반성적도 바로 옆에는 구룡욕태자도(九龍浴太子圖)가 있다. 구룡욕태자도는 높이 7.2m, 너비 12.5m에 달하는데, 석가모니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를 형상화한 석각이다.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어느 날 아기가 코끼리를 타고 오는 꿈을 꾸었다. 꿈 이야기를 전해들은 석가모니의 아버지는 점술사에게 해몽토록 했는데, 신성한 아이가 수태하는 길몽이라는 것이었다. 며칠 후 마야부인은 수태를 했고 석가모니를 낳게 됐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스스로 일어서 걸음을 걷었다고 한다. 이어 왼손은 하늘을, 오른손을 땅을 가리켰다. 그 순간 하늘에서는 아홉 용이 날아와 왕궁 뒤 한 계곡 물 속으로 사라졌다.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야부인은 그곳으로 가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물에 석가모니를 씻겼다.

이 석가모니의 탄생설화는 오랫동안 회자되어 내려와 중국 불교미술에 자주 애용됐다. 바오딩석각 외에 막고굴의 벽화와 룽먼석굴의 석각에도 구룡욕태자도가 담겨져 있다.

다포완의 중심인 석가열반성적도를 지나면 부모은중경변상(父母恩重經變像), 대방변불보은경변상(大方便佛報恩經變相) 등이 연이어 펼쳐진다. 바오딩산석각은 중국 내 다른 불교 석굴·석각과 달리 효를 주제로 한 조각이 많다. 부모은중경변상은 부모가 아이를 잉태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자식에게 쏟는 사랑을 10폭의 석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대방편불보은경변상도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부모가 베푸는 사랑과 은덕을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묘사했다. 대방변불보은경변상과 대비되는 점은 불효자에게 처해지는 판결과 형벌을 새겨 보는 이에게 경종을 울리게 하고 있다.

부모은중경변상과 대방변불보은경변상에서 표현하는 핵심사상은 효도다. 이는 중국 전통 유교사상을 불교 예술을 빌어 형상화한 것이다. 송대 불교는 중국화 하여 효도를 중시하고 강조했다. 두 석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송나라 시대 전형적인 중국인으로, 당시의 인물상과 생활상을 잘 보여준다.

생전의 악행을 사후에 혹독하게 치루는 인간 군상을 묘사한 지옥변상의 하단부.
 생전의 악행을 사후에 혹독하게 치루는 인간 군상을 묘사한 지옥변상의 하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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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와 도교적 색채가 엿보이는 류본존행화도. 다주석각은 불교 석각으로는 드물게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
 유교와 도교적 색채가 엿보이는 류본존행화도. 다주석각은 불교 석각으로는 드물게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와 도교의 사상이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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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포완 마지막 부분에 자리 잡은 지옥변상은 보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지옥변상에는 생전의 악행을 사후에 혹독하게 치루는 인간 군상을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래 중국 불교미술에서 지옥변상이 등장한 것은 육조 시대부터다. 중국 곳곳에 지옥변상의 석각과 벽화가 조성됐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공포감을 주는 것은 투르판(吐魯番) 베제클리크석굴과 바오딩산석각 뿐이다. 오늘날 서구 열강에 의해 베제클리크석굴의 벽화는 파괴됐지만, 바오딩산석각은 보존 상태가 완벽하다.

규모도 높이 13.8m, 길이 19.4m에 달해 중국에서 가장 크고 웅장하다. 내용도 가장 다채롭고 생동감이 넘쳐 예술적 가치가 아주 높다. 실로 다포완 계곡에 새긴 석각 한 존 한 존은 불심 깊은 조각가의 강인한 예술혼에 의해 정교하게 승화된 것이다.

하지만 다포완 내 석각과 달리 사찰 성수사는 옛 영화를 잃어 벼려 아쉬움을 준다. 한때 천여 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대사찰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철저히 파괴된 뒤 1980년대 후반에야 초라히 복원됐다. 그나마 바오딩산석각이 홍위병의 겁난을 피한 것이 천우신조라 할 수 있다.

# 여행Tip

충칭 시내에서 다주로 가는 고속버스는 두 곳이 있다. 하나는 차이위안바(菜圓壩)시외버스터미널로, 아침 8시에 첫차가 출발한다. 차 값은 약 40위안(약 7200원) 안팎이다. 또 하나는 천자핑(陳家坪)시외버스터미널로, 아침 8시 반에 첫차가 출발한다. 버스비는 인민폐 37위안(약 6600원) 안팎이다.

두 곳 다 오후 4시까지 1시간마다 한 번씩 다주로 향하는 버스가 있다. 버스는 충칭―청두(成都)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승차감이 좋고 쾌적한 편이다. 차표 구입시 주의할 점은 '보험은 사지 않겠다'고 매표원에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며 2위안의 보험료가 포함되어 차표를 사게 된다.

충칭에서 다주현까지는 대략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다주현청에 도착하면 바오딩산석각까지 운행되는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그 버스로 다주현청에서 바오딩산석각까지는 대략 20여분이 걸린다. 바오딩산석각의 입장료는 80위안(약 1만4500원)으로, 단일 유적지로는 비싼 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BS U포터,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중국, #충칭, #중경, #다주석각, #대족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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