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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내의 국립민속박물관의 야외전시장 추억의 거리는 옛날을 회상하기에 무척 좋은 곳이다. 모든 물자가 풍부한 요즘의 어린이들을 위해 공부거리로 만들어진 추억의 거리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중장년의 어른들을 위해서도 많은 도움이 되는 곳이다.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 국립민속박물관 추억의 거리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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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여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은 도시의 뒷골목에서 사람 사는 냄새가 정겹게 느껴지던 과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어쩌면 그것들은 60~70년의 고도 성장기에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 부모 세대가 살아오신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으로 아름다운 추억의 장면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진화해온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상과 공간들을 어른과 어린이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경험해보는 공간, 수백 년은 지나지 않았지만 근현대사의 추억 속 공간을 현실화하는 장소였다.

기억에서 새록새록 피어나는 가까운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서 이발소, 만화방, 다방. 양장점, 국밥집, 사진관, 국산자동차 포니 등이 추억을 뒤돌아보기에 좋은 건물과 물품들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이발소의 풍경
▲ 국립민속박물관 이발소의 풍경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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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한겨울이면 가게 중앙에 연탄난로를 놓고, 철사 줄에는 손님이 쓴 수건이 걸리고, 연통에는 비누거품을 뭉갠 흔적, 그리고 한쪽 벽에는 열댓 마리 새끼 돼지에게 젖을 먹이는 싸구려 그림이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하는 푸슈킨의 시가 걸려 있던 이발소의 풍경이 좋다.

60~70년대의 남자들도 자신의 장발머리 치장을 위해 들르는 유일한 곳으로 당시 남자들의 멋 내기도 여성들 못지않게 유행을 탔음을 알 수 있는 공간이다.
           
민속박물관 사진관
▲ 민속박물관 사진관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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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은 단순히 커피를 판매하던 공간은 아니었다. 젊음과 문화의 성역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당시의 다방, 다방의 간판명은 약속다방이며, 이는 역전 다방과 함께 당시 가장 많이 썼던 다방 이름 중의 하나였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던 음악다방은 문화를 공감하고 유행을 만들어냈던 시대 흐름의 한 축이었고, LP음반을 들었던 세대에게 있어 낡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타임머신과도 같았다.

양장점의 간판명은 노라노 양장점이다. 한국 최초의 패션쇼를 열었던 노라노 여사는 '노라노의 집'이라는 양장점을 열었고 고급 의상실 시대를 열었다. 그 후 양장점은 종로와 명동을 중심으로 크게 늘어났고 쇼우 윈도우에 매력 넘치는 마네킹이 등장하였으며 화려한 옷차림의 젊은 여인들이 유행을 만들어내며 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민속박물관 추억의 만화방
▲ 민속박물관 추억의 만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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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다란 가게와 불편한 나무 의자, 연탄난로. 흑백TV, 오징어와 쥐포 냄새, 라면, 과자, 오뎅 등은 방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달려갔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던 만화방 풍경이다. 단행본도 재미있지만 역사와 스포츠 연작은 만화방을 가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했다.

후편이 나왔다는 소문이 돌기가 무섭게 만화방 문을 밀치고 들어가 진열대에서 꺼내 볼 때 그 호기심이 충족된 짜릿함은 지금도 묽어지지 않았다. 만화책장을 넘기면서 한 입씩 먹던 라면 땅과 오징어, 쥐포 맛 또한 잊을 수 없다.
            
국립민속박물관  국밥집
▲ 국립민속박물관 국밥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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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밥집을 지나면서 내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시골의 장터 국밥집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친구인 진복이는 군청 앞에서 따로국밥집을 하는 부모님 덕에 맛있는 국밥을 매일 먹었다. 나는 간혹 그 국밥 국물이 좋아 진복이를 졸졸 따라 다니기도 했다.

서울의 종로에서 가끔 먹는 선지국밥은 그 맛은 아니지만, 그 때의 추억을 다시 떠오르게 하는 데는 충분하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추억의 거리에는 나는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옛 추억을 생각했다.

박물관을 둘러 본 일행은 동십자각 방향으로 길을 잡고 나온다. 옛 기무사 터를 본 다음 동십자각과 인근의 란(蘭)스튜디오를 지나 종로문화원을 둘러 본 다음, 한국일보 터를 지나 인사동 방향으로 이동했다.

거의 매주 인사동에 가지만 요즘은 바닥 공사를 하고 있는 관계로 너무 어지럽다. 7~8년 전 인사동 길을 정비한다고 바닥에 전부 바꾸는 공사를 했는데, 너무 약한 소재를 사용한 탓인지 보도블록이 부서지고 깨져 특히 여성들의 하이힐이 끼는 경우가 많이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보도블록은 이번에는 부서지지 않는 큰 돌로 바꾸는 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10년도 되지 않는 미래를 보지 못한 한심한 행정의 탓도 있지만, 애초에 차가 다니는 길을 약한 보도블록 시공으로 설계하여 공사한 무능한 설계자의 탓도 큰 것 같다.

아스팔트 포장이야 곤란하겠지만, 애초에 부서지지 않는 큰 돌을 바닥재로 사용하여 차와 사람이 다니도록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었는데 말이다.
           
인사동 역사 문화의 거리 인사동에서
▲ 인사동 역사 문화의 거리 인사동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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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인사동 길을 걸어 사거리 부근에 있는 인사동이라는 전통찻집으로 갔다. 입구에 있는 홀에서 차를 마시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오늘은 일행이 많아서 안쪽에 있는 한옥으로 갔다.

찻집 안쪽에 조그만 한옥이 있고 방과 마루, 마당이 있다. 마당에 작은 소나무와 풀꽃들이 몇 그루 있어서 이곳까지 들어온 적이 없는 사람들은 놀라는 곳이다. 인사동에 이런 별천지가 있다니 하고 말이다.

주인 아주머님은 안동이 고향이고, 영주가 외가라 내가 가면 외가 동네 사람이 왔다고 반가워한다. 영주에서 외삼촌이 국회의원을 두 번 지내셨고, 친 오빠가 안동에서 행정고시 출신으로 차관을 지낸 다음 국회의원을 하고 있으니 집안이 대단하다. 난 늘 "조상님 묘 터가 좋은 모양이죠" 라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인사동  찻집 인사동에서 오미자 냉차를
▲ 인사동 찻집 인사동에서 오미자 냉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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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더운 날씨라 팥빙수와 오미자 냉차를 시켜 마신 다음, 인근의 갤러리를 두어 곳 돌아 본 다음 해산했다. 갤러리 라메르에서 본 충청도 출신의 조각가 도일 선생의 '몸의 비원(秘苑)'이라는 전시회는 아주 볼만했다. 숟가락을 이용한 도일의 조각은 밥과 인생에 관한 철학적 문제를 다룬 재미있는 작품들이었다.

6시간 정도 걸린 산책이었지만, 피곤하다. 운동 삼아, 역사공부 삼아 다니는 이번 북촌, 삼청동, 인사동 도보 여행은 추억을 되 세기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 걷기 모임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daipapa
10월 걷기 모임은 31일(토) 단풍이 좋은 창경궁과 종묘입니다.
(집결지는 오전 9시 30분 창경궁 정문 앞)



#인사동#국립민속박물관#역사, 문화와 함께 하는 서울 걷기 모임#추억의 거리 #조각가 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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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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