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나를 보자마자 큰손자는 "할머니 눈 감고 나만 따라와. 내가 손 잡아 줄게"하더니 잠시 후에 "자 눈 떠 봐. 짜잔~~ 할머니 이젠 할머니 자전거 나 안줘도 돼. 고모네 누나가 자전거 안 탄다고 나 줬어. 봐봐 이거야"
"어머나! 할머니 자전거보다 훨씬 좋은 자전거다. 우진이는 정말 좋겠다." "그런데 할머니 이 자전거, 엄마가 타고 싶어 해. 저 다리가 다 되면 나는 내 자전거 타고, 엄마는 이 자전거 타고, 우협이는 우협이 자전거, 아빠는 아빠 자전거 타고 안양천에 가자고 그래."
"그래서 우진이는 뭐라고 그랬어?" "안 된다고 했어" "왜 안 된다고 했어. 4식구가 자전거 탈 때만 잠깐 엄마 빌려주면 되잖아. 4식구가 자전거 타고 달리면 정말 멋있겠다" 잠시 손자는 생각하는 듯했다. 손자에게 새 자전거가 생기기 전이었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내 자전거를 탐내던 손자였다.
우리 집에만 오면 언제부터인가 내 자전거를 타고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자전거를 다 타고 들어오면은 "할머니 할머니 자전거 나줘!" "우진이 자전거 있잖아" "내 자전거는 기어가 없어서 재미없는데 할머니 자전거는 기어가 있어서 재미있어" "그럼 할머니는 자전거 어떻게 타?" "할머니는 팔 아파서 요새 자전거 안 타잖아?"
"그런데 우진아 할머니가 요즘 조금씩 연습하고 있거든. 그래도 잘 안되면 그때 줄게. 그리고 할머니가 자전거 잘 타면 우진이 하고 같이 자전거 타기로 했는데 그건 어떻게 하고" "응 알았어. 그럼 할머니가 자전거 타기 힘들면 그때 나 줘야 해"라고 약속을 했었다. 약속의 표시로 도장도 찍고 복사까지 했다.
그래도 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큰 자전거를 하나 사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2007년 12월 31일 팔목 골절상을 입은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어 자전거 타기가 그렇게 용이하지 않은 것이다. 그때 막 자전거 타기에 재미를 붙일 무렵이라 아직까지도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기도 하다.
작년에는 단 한 번도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일 년이 훌쩍 지나가고 말기도 했다. 깁스는 풀렀지만 완전히 회복 되지 않아 감히 자전거 탈 생각이 나질 않았다. 김치를 한다거가, 청소를 한다거나 등 집안일에 조금만 무리하게 팔을 사용하면 팔이 아파 오기가 일쑤라 파스를 붙여주거나 주물러 주어야 괜찮지곤 했었다. 하니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한 달 전쯤부터는 자전거가 타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 시간이 날 때마다 20~30분정도 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타니깐 마치 처음 배우는 것 같더니 조금 타니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몸으로 익힌 것은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하더니 그 말이 새삼 실감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다시 어딘가 다칠까봐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여, 자전거 탈 때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파트 단지 안에서만 타고 있다. 조금 더 익숙해지면 그땐 아파트밖을 나갈 계획인 것이다. 그런 실정인지라 손자가 자전거를 달라고 하기 전에도 자전거를 다시 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이 되기도 했었다. 그러다 조금만 더 타다가 정 겁이 나면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새 훌쩍 커버린 녀석이 할머니 자전거를 탐내다니. 녀석은 요즘 학원에 갈 때 셔틀버스를 안 타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녀석이 배낭을 메고 새로 생긴 자전거의 잠금장치를 풀고 자전거에 오른다.
난 "우진아 이 자전거는 기어가 8단이야?" "아니 7단이야" "보기에도 참 좋아 보인다. 그런데 우진이한테 안 높아?" "안 높아""우리 우진이 정말 많이 컸구나. 자 자전거 위에 올라가서 멋지게 포즈 좀 취해봐. 할머니가 사진 한 장 찍게" "할머니 다 찍어서. 그럼 나간다. 할머니 안녕!" 하며 녀석이 신나게 달린다. "그래 차 조심하고 우진이도 학원 잘 갔다 와."
녀석의 뒷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녀석과 함께 신나게 달려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자 괜스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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