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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연휴가 시작되면 바쁘므로 전날인 10월 1일 저녁에 용산을 찾았다. 7시인데도 사람이 거의 없어서 매일 한다는 미사가 없는 줄 알았다. 주위나 둘러보고 조문이나 하고 가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드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개신교 촛불예배가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천주교 신자이지만 용산을 생각하는 마음은 다 같으므로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렸다.

한가위 연휴 전날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예배를 진행하는 한 목사는 오늘 자리가 사람이 없어서 무척 초라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 밖으로 많이 와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예배의 중심은 뭐니 뭐니 해도 '시대의 증언' 시간인데, 유가족 한 명과 목사 한 명이 나와서 용산참사와 관련해서 좋은 말을 해주었다.

먼저, 돌아가신 이상림씨의 부인인 전재숙씨가 나와서 말했다. 그녀는 한가위 명절 전에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력했는데 아직까지 아무런 효과가 없다며 마음 아파했다. 그리고 10월 18일 국민법정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서명을 해주어서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녀는 검찰이 내놓지 않고 있는 3천 쪽을 공개할 때까지, 그리하여 진상이 낱낱이 밝혀져서 고인들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많은 시민들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역설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을 한강로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취임에 즈음한 유가족 범대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을 한강로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취임에 즈음한 유가족 범대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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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앞두고 용산참사 유가족을 찾은 사람들

그녀는 이어 그동안 8개월이 넘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온갖 정성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며 그 사람들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의 끊임없는 기도와 관심이 자신들의 큰 힘이 된다며,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오늘 송편을 빚었는데 여기에 온 사람들 꼭 한 개라도 먹고 가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함께하는교회의 방인성 목사가 증언을 했다. 그는 설날에 이어 한가위까지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상복을 입은 채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현실을 비통한 심정으로 안타까워했다. 좀 일찍 와서 유가족들이 눈물로 빚은 송편을 먹었는데 목이 멨다고 했다. 공평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을 비판하며, '공평'은 재판을 제대로 하는 것을, '정의'는 합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곳이야말로 공평과 정의가 짓밟힌 곳이라며, 공평과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국가가 반드시 해결해야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운찬 총리도 언급했다. 인사청문회 때에 용산 문제를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으니 꼭 실천하라고 했다. 그는 정운찬 총리가 취임사에 단 한 마디도 그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아 퍽 아쉬웠다고 했다.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과 정운찬 총리가 이번 한가위 차례를 가족과 함께 지내기 전에 용산 현장을 방문해 유가족을 위로하는 깜짝 이벤트를 보이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참석자들의 얼굴은 조금도 밝아지지 않고 어두웠다.

그러나 그 문제가 전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희망의 끈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나는 느꼈다. 전재숙씨도 어떤 일이 있더라고 절망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해결될 때까지 투쟁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했고, 방인성 목사도 유가족들에게 실망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라고 위로했다. 그는 그들 희생자의 거룩한 피가 반드시 승리할 날이 올 것이라며 지금 캄캄하고 답답하기 이루 말할 수 없지만 힘을 내라고 격려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손에 든 컵초를 앞에 차려진 영정 앞에 바치며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기독교방송 노조도 참석해서 격려의 말과 성금을 내고, 촛불예배를 주관한 쪽에서도 정성껏 모은 성금을 유가족에게 전달했다. 특히 기독교방송 노조위원장은 '함께 살자'는 메시지를 가슴에 늘 담고 살겠으며 언론인으로서 정말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주어진 역할을 다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드디어 송편을 먹는 시간이 왔다. 유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 종일 만든 송편이 참석자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졌다. 조그만 비닐주머니에 담긴 송편을 받으며 무엇인가 속에서 울컥 솟아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런 기분은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참석한 사람들 거의 다 비슷했을 것이리라. 우리가 그들을 위로하며 격려해야 하는데, 우리가 송편을 빚어 와서 그들과 나누어야 하는데 수개월째 몸과 마음이 파김치가 된 그들이 우리를 대접한 것이다.

물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아무 경황이 없을 때 뜻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서 그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올바른 해결을 위해 노력을 해주었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로 생각하고 불철주야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신부들과 목사들이 나서서 매일같이 참사현장을 지키며 미사와 예배, 그리고 각종 문화행사로 그 문제를 국민들에게 환기해 주었다. 그 마음이 고맙고 감사해서 마음을 다해 송편을 빚은 것이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을 한강로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취임에 즈음한 유가족 범대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총리가 스스로 용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만큼 서둘러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현장을 찾아 유족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사죄해야 한다"며 촉구하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30일 오전 서을 한강로 용산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 앞에서 정운찬 국무총리 취임에 즈음한 유가족 범대위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총리가 스스로 용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힌 만큼 서둘러 해결방안을 제시해야 하며 현장을 찾아 유족들에게 정부를 대표해 사죄해야 한다"며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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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에도 상복을 벗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정말 송편을 맛있게 먹었다.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며 송편을 먹었다. 그 송편은 근처에 있는 가게, 그들을 지키고 있는 전경들에게까지 전해졌다. 그 송편을 먹으며 사람들의 바람은 한결같았을 것이다. 유가족들이 간절히 소망하는 것과 똑같을 것이다. 한가위 전까지 해결되면 참 좋겠지만 이번에 안 되더라도 가능한 한 빠른 시일 내에 해결되기를 바랐으리라.

문득 용산 참사 유가족 일동이 9월 30일 내놓은 글이 생각났다 다음은 그 글의 몇 대목이다.

야속하게도, 추석이 돌아왔습니다. 설날 직전 남편들이 무참히 살해당한 남일당에서, 이번에는 추석을 맞아야 하다니, 끔찍합니다. 눈앞이 캄캄합니다. 추석 전에 고인들의 장례를 치르겠다는 소망은 정녕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인가요?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돌아가신 분에게 따뜻한 차례상을 올리겠다는 희망은 과욕이었나요?

참 지독한 정부입니다. 참 나쁜 대통령입니다. 다섯 가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아직도 묵묵부답이라니요. 죄 없는 우리들에게 아내 노릇, 어미 노릇, 자식된 도리 못하게 해 놓고서 자기들은 고향 찾고 부모 찾다니요. 이러고도 한 나라를 책임지는 위정자입니까, 이러고도 국민들을 보살피는 나라님입니까.

정운찬 총리님, 추석에도 상복을 벗지 못할 것 같지만, 곧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수 있도록 하루빨리 용산에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목사 말대로 그들의 정성과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눈물로 빚은 송편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밤이라서 그런지 날이 무척 쌀쌀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속을 많이 넣은 송편처럼 배부른 달이 환하게 우리를 비쳐주고 있었다. 그 달이 그들의 눈뿐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까지 환하게 비쳐주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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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즈음 큰 기쁨 한 가지가 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오마이뉴스'를 보는 것입니다. 때때로 독자 의견란에 글을 올리다보니 저도 기자가 되어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우리들의 다양한 삶을 솔직하게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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