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대표적인 책을 꼽아보자면 우리는 가장 먼저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산업 혁명 이후의 근대화. 그 한 가운데에 서서 세계를 진두지휘하던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소로우는 점차 인간들의 삶에서 여유라는 즐거움이 빠져버리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또 하나의 책을 꼽아보자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법정스님이 말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소유에 얽매이면 결국 주와 객이 전도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야기였다.
즉,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대출해서 구입한 집이나 자동차를 소유하기 위해 돈을 벌게 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는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일러주었다.
그 두 사람은 인간을 인간으로서 바라보지 않고, 노동력이나 경제력으로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 속에서 벗어나서 자연을 친구삼아 그들만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고 현재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선우야, 바람보러가자>를 펴낸 한지공예가 이종국님(마불)과 명상가 이경옥님(메루) 또한 그들처럼 자연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마블과 메루가 살아가는 자연 속의 삶은 소로우와 법정스님이 가지고 있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 녹아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두 사람은 부부의 연을 맺은 사람들이고, 특히나 그들 사이에는 선우라는 아이가 있기에 이 책은 그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한 가족이 자연 속에서 알콩달콩 살아가는 인간미가 물씬 풍겨져 나온다.
그렇지만 선우네는 자연에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깊은 마을 속의 울타리 안에서 혼자 있음에 익숙한 선우를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말처럼 자연은 곧 책이요, 친구이므로 선우가 현재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키워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아내의 말처럼 친구들을 접하고 어느 정도 사회성을 키워야 할 필요성이 있기에 선우를 학교를 보내서 또래친구들과 어울리도록 해야 하는 것인지.
"두 분은 부부싸움도 안 하실 것 같아요. 이런 무릉도원에서 화가랑 명상가랑 사는데 싸울 거리가 뭐 있겠어요?"
많은 사람이 선우네를 만나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또한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교육방식이나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들. 이와 같은 여러 가지의 문제들에 대한 의견충돌이 있지만, 그들 부부는 서로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그들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서 인정함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해당 문제에 대해서 토론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가 좋았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모든 것이 평온할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 역시 인간인지라 일치하지 않는 문제와 힘든 순간이 찾아오면 서로 짜증내고 화낼 때도 있지만 그때마다 서로의 마음을 달래주고 공통점을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이 역력하게 비쳐지고 있는 책 속의 편지들은 나에게 매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연에 그저 순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선우네 가족은 현실적으로 필요한 경제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었고, 그런 경제적인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법과 경제적인 문제를 풀어가기 앞서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에 대해서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존경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선우네의 삶에 있어서 인간의 존재란 자연을 정복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것에 모자라서 그것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있었으며, 꾸준하고 지겹도록 오랜 시간 동안의 노력으로 선조들의 한지를 더욱 발전시켜 빚어낸 독창성 있는 한지공예작품들.
그것이 내포한 우리 문화의 신비함을 무기로 여러 나라에 전시회를 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까지 이른 선우네를 보고 있으니, 우리가 매일 '영어'만을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독특한 우리들의 것을 더욱 갈고 닦아 무기로 삼을 수 있는 재주를 키우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앞과 뒤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오지였지만 하늘은 열려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고 이야기하는 선우네. 겨우내 온 몸이 찌릿찌릿 할 정도로 시리게 만드는 강추위를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겨울 뒤에 만물이 태동하는 봄의 마력에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선우네. 산 속 곳곳에 있는 먹을거리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면서 살고 있는 선우네. 곡식을 아끼는 마음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귀하기 때문임을 알고 있는 선우네.
도시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일반 사람들에게 일주일 정도 살아보라 한다면 며칠 있지 못하고 곧바로 짐을 챙겨 떠날 준비를 하게 될지도 모를 그 곳 벌랏마을. 그 멀고 깊은 곳에서 우리는 그들의 주위에서 항상 친구처럼 존재하고 있는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만족하고, 우리의 선조들의 문화에 가슴이 뛰는 선우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즐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