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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정마을을 찾다

 

 

 서울 강남구 도심, 번화한 거리와 대형아파트들 사이로 비닐하우스나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집 아닌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있다. 서울시 강남구 포이동 187-4번지. 아직 제 주소를 갖지 못한 마을, '수정마을'이다. 공식적인 주소지는 없지만 각 집마다 문패가 달려있고 마을 담벼락에는 예쁜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현재 이곳에는 총 64가구가 모여 산다.

 

 수정마을의 역사는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합판을 파는 가게와 고물상이 모여 있는 동네였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공장, 개인사업 지역이었지만 상권이 점차 사라지고 살림집만 남게 됐다. 사업실패로 등으로 인해 80년대 후반부터 이곳으로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일자리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강남일대에 주거를 마련했고 마을이 생겨났다.

 

 공감 홍보팀이 취재를 갔던 날, 마을 입구에 자리한 마을회관에 자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정덕주씨를 비롯해 부녀회장, 마을 서기, 노인 회장 등 주민들이 모였다.

 

 주민들이 그동안 겪은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과연 승소 판결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2. 비닐하우스촌 주민으로 살아간다는 것

 

비닐하우스촌에서 주민들이 겪는 문제점들은 정말 다양하다. 먼저 주민등록 전입미등재로 인해 기본적인 행정서비스부터 제대로 받을 수 없었다. 예상치 못한 화재, 붕괴의 위험, 개발로 인한 강제철거와 이주에 대한 걱정으로 늘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

 

"주소를 갖고 싶다"

 

 동사무소에서는 '불법 거주'를 이유로 주민들의 전입신고를 받아주지 않았다. 주소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권리마저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수정마을 주민들은 우편물을 제때에 수령하지 못해서 과중한 연체료를 부담하거나 소송에서 패하는 일을 수시로 겪었다. 또 아이들 학교를 거주지 주변으로 배정받지 못해 위장 전입한 다른 구에 있는 학교로 매일같이 통학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거리가 먼 학교에 아이를 입학시킬 때 통학 중에 교통사고 나도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까지 쓰고 학교를 보낸 사례도 있었어요. 더 무서운 것은 이러한 불편함이 당연한 듯 익숙해지는 것이었어요." 이번 승소판결로 얼마나 이들의 삶이 바뀔지 주목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수도와 전기 시설은 갖춰졌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불편"

 

 예전에는 마을 공동 우물에서 지하수를 퍼다 이용했으나 2004년도에 수도 공사를 마쳐 각 집마다 수도시설이 갖춰졌다. 공동 우물을 사용할 때에는 가구 수가 늘어나면서 수질오염이 심각해져 흰 티를 빨아서 못 입을 만큼이었다고 한다.

 

전기의 경우, 선을 끌어다 전기를 쓰고 한국전력공사에 비공식적으로 직접 전기요금을 납부하는 형태로 공급을 받다가 작년에 전기공사를 실시해 개량기가 설치됐다.

 

"그 전에는 전기선이 늘어져 있어 크고 작은 화재위험이 있었고 갑자기 전기가 차단돼 고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지요. 특히 겨울철 난방을 열효율이 낮은 판넬, 전기합판으로 하고 있어 공사 이전에는 전기세가 19만원이나 나올 때도 있었지만 현재는 만 6천 원 정도 전기요금이 부과되고 있어요. 마을에 전신주가 생겼을 때의 기분은, 전셋집에 살다가 내 집 마련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난방 문제의 경우 서울시가 가구당 백만원 지원사업을 통해 보일러공사를 지원했지만 비기술자가 공사를 맡아 보일러와 배선이 따로 설치되는 문제점들이 발생했다. 주민들은 "좀 더 실효성이 있는 제도가 절실하다"며 "예산집행 시기 때문에 겨울철에 난방공사를 해야 하는 불편이 따라 공사기간 동안은 겨울철 추운 마을 회관에서 묵어야 해 공사를 꺼리는 분위기였다"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수도와 전기는 형편이 나아졌지만 화장실은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가장 크게 불편을 겪는 문제 중 하나다. 재래식 화장실을 보통 3~5세대가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어 위생문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이용하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3. 주소를 갖기 위한 소송 "전입신고를 받아달라"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7년부터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는 참여연대, 민변과 함께 수정마을에 거주하는 정덕주씨의 주민등록전입신고를 거부한 강남구 포이제4동장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이에 지난 6월 대법원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이 있다면 전입신고를 받아줘야 하며 거주 목적 이외에 다른 의도가 있는지의 여부, 무허가건축물의 관리, 전입신고 수리로 인해 지방자치단체에 미칠 영향과 같은 사유는 주민등록전입신고의 수리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는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비닐하우스촌에 실질적으로 거주하면서도 주소지가 없었던 주민들에게 주소를 가져다 줄 의미 있는 승소였다.

 

정덕주씨는 바로 판결문을 가지고 전입신고 신청을 하러 동사무소를 찾았다. 하지만 신고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행정상 3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려 아직은 전입신고가 수리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시간은 좀 더 걸리겠지만, 의미 있는 값진 승리였다. 꿀벌마을을 비롯한 다른 비닐하우스촌에서도 승소 소식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제 이들에게 주소지를 갖는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전입신고로 인해 무엇이 달라질까

 

마을 사람들은 이제 '진짜' 자신의 주소지를 갖게 된다는 마음에 들 떠 있었다. 개인적인 우편물을 이제 포이동 수정마을 주소로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주소지가 생김으로써 여러 가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전했다. 마을사람들이 가장 큰 불편함을 겪고 있는 재래식 화장실 문제도 복지혜택을 받으면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단순히 주소지를 가졌다는 의미 외에 원래 '사람이 거주하고 있었던 공간'이 실질적으로 '사람 살 만한 공간'이 된다는 의미가 더해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어요."

 

- 계속                                                             


태그:#비닐하우스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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