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09대학가요제 금상 수상자 황유정씨.
 2009대학가요제 금상 수상자 황유정씨.
ⓒ 김솔미

관련사진보기


"예전에는 박정현처럼 부르려고 무진장 애썼죠. 이제 비슷하다는 소리 듣기 싫어요. 저만의 색깔을 찾고 싶어요."

당돌하게 '제 목소리'를 찾겠다고 말하는 그는 지난 9월 25일 인천대학교 대운동장에서 열린 <2009 MBC 대학가요제>에 출전해 금상을 거머쥔 황유정(23)씨다. 대학가요제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난 지금, 그는 무얼 하고 있을까. 9일 낮, 의류학을 전공하는 유정씨를 만나기 위해 경북대학교 캠퍼스를 찾았다. 

생머리를 차분하게 늘어뜨리고 운동화에 간편한 차림으로 학교 내 커피 전문점으로 들어서는 황유정씨는 여느 대학생들과 다름 없었다. 오히려 튀지 않는 옷차림과 옅은 화장이 수수해 보인다. 무대에서 풍겼던 제법 '프로'같은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2천 원짜리 커피 두 잔을 시켜놓고 한 시간이 넘도록 그와 '수다'를 떨었다. 

"접수하기 일주일 전에 곡을 받은 거 있죠. 가사가 안 떠올라 결국 이틀 전에 완성하고 녹음했어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었는데 어쩔 수 없었어요. 다른 참가자들이 많으니까."

하마터면 황유정씨가 부른 매력적인 재즈풍의 '아프리칸 찰리(African Charlie)'는 세상에 고개를 내밀지 못할 뻔했다. 그는 "원래는 셋이서 힙합을 할 생각으로 1학기 내내 준비했다"며 "후에 같은 팀이 학교가 다르면 안 된다는 참가 자격을 알고서 포기했다"고 아쉬워했다. 대학가요제 출전 자체가 무산됐었으나 뒤늦게 작곡자 이상호씨를 만나게 된 것.

"아프리칸 찰리 가사, 대회 이틀 전에야 완성했어요" 

그가 부른 '아프리칸 찰리'는 뻔한 사랑 얘기도, 이별 얘기도 아니다. 아프리카의 카카오 농장에서 강제로 노동을 착취 당하는 아이들, 하지만 그들은 평생 초콜릿 한 번 먹어보지 못한다. 유정씨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면서 자신의 필리핀 여행을 떠올렸다.

"아프리카에는 가 본 적도 없고, 카카오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몰랐죠.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는 가사를 쓰면서 필리핀으로 어학연수 갔을 때 봤던 모습이 생각났어요. 말로만 듣던 빈민촌이었는데, 아이들은 학교도 안 가고… 친구들과 돈 모아서 그 애들에게 빵 사서 나눠주고 그랬었어요."

황유정씨는 요즘 나오는 대중가요에 대해 "너무 자극적"이라며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 대중에게 보여지기 위한 곡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음악이란 건 듣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의 환한 얼굴에는 단호함이 서려있었다

"그런 면에서 대학가요제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고, 제 곡처럼 인권 문제를 다루거나 이번에 대상 받은 곡처럼 20대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 수 있지요."

유정씨는 이어 "대학가요제의 심사기준에 대해서도 말이 많은데 가창력 보다는 참신성, 대학생 다운 발상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아프리칸 찰리'도 아마 그래서 후한 점수를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수줍게 웃으며 "예선을 통과한 모든 팀들이 훌륭해서 누가 상을 받을지 알 수 없었다"고도 했다.

"이대나온여자, 마땅히 대상 받을 만한 팀"

2009대학가요제에서 '아프리칸 찰리'로 금상을 수상한 황유정씨. 본선 당시 모습이다.
 2009대학가요제에서 '아프리칸 찰리'로 금상을 수상한 황유정씨. 본선 당시 모습이다.
ⓒ MBC

관련사진보기


황유정씨는 '이대나온여자' 팀이 부른 대상 곡 '군계무학'의 표절시비에 대해 "본선 진출자들 모두 함께 대회를 준비하며 서로의 곡을 들었지만 표절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한 적 없다, 우리도 음악이라면 많이 들은 사람들이 아니냐"며 "대상을 받았기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물론 상은 부럽지만, 마땅히 받을 만한 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계속해서 여유롭게 농담을 건넸다.

"사실 화면에 너무 안 예쁘게 나와서 악플이 달릴까봐 걱정했다. 그런데 하나도 없더라. (웃으며) 아마도 표절시비 때문에 묻힌 것 같다."

한 시간이 넘는 수다의 막바지. 졸업을 앞둔 그에게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유정씨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면서 "패션 일러스트, 미술 교사, 가수 모두 즐거울 것 같다"며 "하지만 노래 부르는 일을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스물 넷, 꿈 많은 대학생이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큼은 흔들림이 없다.  

"한 가지 장르를 고집하는 것도, 인권 문제만 다루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이 살아가며 겪는 사소한 일상,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인권뿐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노래하고 파"

다음은 일문일답 전문.

- 늦었지만 수상 축하한다. 금상에 네티즌상까지 받았는데 기분이 어땠나.
"당일 목소리가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결과가 좋아 다행이다. 기분 좋았다. 주위 사람들도 많이 축하해 주고."

- 상 받을 것으로 예상했었나.
"본선 진출자들과 함께 얘기한 적 있다. 그런데 아무도 예상 못했다. 다들 너무 훌륭했고, 장르도 워낙 달랐다."

- 수상 이후 달라진 게 있나.
"달라진 것 없다. 여전히 학생이고, 수업 듣느라 바쁘다. 음반 발매하자는 제의가 오긴 했는데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

- 수상곡의 가사를 직접 썼다고 들었다.
"곡은 나왔는데 가사를 못써서 쩔쩔매고 있었다. 처음에는 음악과 꿈이라는 주제로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카카오 농장의 아동 노동 착취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바꿨다."

'아프리칸 찰리'로 금상을 수상한 황유정씨를 경북대 캠퍼스 안 카페에서 만났다.
 '아프리칸 찰리'로 금상을 수상한 황유정씨를 경북대 캠퍼스 안 카페에서 만났다.
ⓒ 김솔미

관련사진보기

- 작곡자 이상호씨와는 어떻게 같이 작업을 하게 됐나.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 영남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데 아직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실력 있는 작곡자라고 생각한다."

- 장르를 재즈로 택한 이유가 뭔가.
"원래는 R&B와 소울을 좋아한다. 내 목소리에 재즈가 어울릴 것 같다고 하셔서 처음 불러봤는데 많이 어색했지만 재미있었다."

- 가수 윤건씨가 멘토가 되어 주던데, 무슨 도움을 받았나.
"곡의 흐름이 바뀌었다. 나는 아예 생각도 못했던 부분인데 곡이 훨씬 나아졌다. 시간을 더 많이 갖지 못해 아쉽다."

- 노래를 언제부터 불렀나. 이 전에 무대에서 노래 부를 기회가 자주 있었나.
"초등학교 때부터 양파노래를 부르며 컸다. 머라이어 캐리와 스파이스 걸스 노래로 연습하고. 박정현, 김윤아도 좋아한다. 결혼식 축가도 부르고 지역 행사에도 나가봤다. 대학 와서는 가요제 때 박정현의 '편지할게요'를 불러 상 받았다."

- 전공이 의류학이다. 무대의상도 직접 제작한 건가.
"사실 코디 분들이 준비해준 의상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평소에 입지 않던 스타일이라 노래 부르기에 너무 불편했다. 마땅히 입을 게 없어서 리폼한 내 옷을 입고 올라갔다."

- 본선 진출자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대회 준비하면서 자주 만나서 친해졌다. 특히 '이대나온여자'언니들과 친하다. 이번에 표절시비가 있고 나서 위로도 했다. 모두 속상해 하고 있다. 언니들이 내게 농담으로 '아프리칸 찰리로 논란을 잠재워달라'고 하기도 했다."

- 24살, 진로에 대해 걱정이 많을 텐데 앞으로 계획을 말해달라.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일단 음악이 우선이다. 작곡과 악기 공부를 더 하고 싶다. 머릿속에 맴도는 걸 표현해 내는 게 항상 너무 힘들다. 작곡 공부하고 악기도 연주해서 내 스스로 내가 생각한 것을 만들어 내고 싶다. 나 혼자 다."

'아프리칸 찰리'로 빈민촌 아이들의 희망을 노래하는 그가 앞으로 하게 될 음악은 무슨 색깔일까. '혼자 다'하겠다는 유정씨의 귀여운 욕심이 희망을 넘어서 '따뜻한 변화'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태그:#황유정, #대학가요제, #아프리칸찰리, #금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