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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무함마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교회

 

지난 9일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는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간 대화 및 공존 가능성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모임은 이슬람선교를 위해 이슬람에 대한 접근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논의했다.

 

참석자 중 일부는 기존 한국교회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견해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한 선교의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아시아신학대학교 김영남 교수는 기독교와 이슬람은 삼위일체 사상을 비롯한 예수의 신성과 구원관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유일신 사상 ▲신의 절대적 초월성 ▲만물의 창조자이며 심판자인 신의 성격 ▲피조물인 인간의 유한성 등에 있어서는 비슷한 점이 있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은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며 전도 대상에 불과하다는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과거처럼 일방적이고 물량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고 무슬림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전략적 변화를 꾀했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슬람과 그들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무슬림의 존경대상인 무함마드를 필요 이상으로 공격하는 발언도 나와 모임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한 참석자는 무함마드는 아내가 10명이었으며 실수와 허물이 컸던 인물로 신의 아들로 흠없는 예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했다.

 

기독교 중심적인 세계관에서는 당연한 발언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 정도 인식이라면 이슬람교와의 대화는 물론이고 선교 활동 자체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최고의 예언자이기는 하지만 그가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와 비교해서 그를 깎아 내리는 것은 온당한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억지로 신으로 모셔진 예수보다는 신격화되지 않은 무함마드가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용이하고 인간적인 인물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인간 예수는 324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공식적으로 신이 되었다. 당시 공회의에는 예수의 신성문제와 관련해 두 개의 안이 올라왔는데 예수가 신과 동일본질이라는 알렉산더의 주장과 예수는 위대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신은 아니라는 아리우스의 주장이 대립했다.

 

두 사람의 논쟁은 콘스탄티누스의 지원을 받은 알렉산더의 승리로 끝났고 아리우스는 발칸반도 북서쪽의 일리리쿰으로 유배당했다. 콘스탄티누스와 체제지향적인 성직자들이 예수를 신으로 만든 것은 인간예수를 섬기는 것이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수의 인성이 강조되면 예수는 단순히 예배대상이 아니라 삶의 모범으로서 스승이자 친구가 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스스로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이럴 경우 신자들은 예수와 같이 어떤 것에도 거리낌이 없는 자유인으로 체제 비판적이 되고 성직자들도 제한적인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예수가 신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세기말에서 2세기 초에 작성된 요한계 문서(요한복음, 요한 1,2,3서)를 통해서였다. 역사적 예수에 근접했던 공관복음서(마가, 마태, 누가)와 복음서 이전의 바울서신에서는 예수를 신과 같은 위상으로 묘사하지 않았다. 요한계 문서가 예수를 신으로 묘사한 것은 기독교가 지중해세계로 영역을 넓혀가면서 신으로 승격된 로마황제, 미트라와 같은 제국 내 다른 유력신들과 경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무함마드,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

 

성소피아사원 이스탄불에 소재한 소피아사원은 기독교도의 예배장소였으나 15세기 이슬람세력이 점령한 후에는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알라(왼쪽)와 무함마드라고 씌여진 대형동판이 걸려있다. 대부분의 모스크에는 유일신 알라와 그의 사자인 무함마드를 기리는 글들이 새겨져 있다.
성소피아사원이스탄불에 소재한 소피아사원은 기독교도의 예배장소였으나 15세기 이슬람세력이 점령한 후에는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내부에는 알라(왼쪽)와 무함마드라고 씌여진 대형동판이 걸려있다. 대부분의 모스크에는 유일신 알라와 그의 사자인 무함마드를 기리는 글들이 새겨져 있다. ⓒ 백찬홍

예수가 정치·종교적 이유로 신이 된 것에 비해 무함마드는 철저하게 인간의 길을 걸었다. 유대교의 영향을 받은 그는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알라 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마드는 그의 사자라고 증언한다. 일부 수피 신비주의자들은 무함마드를 신의 가장 완전한 피조물이자 우주적 인간으로 보기도 하지만 보통 무슬림들은 인간 이상의 존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육신의 몸을 입은 무함마드의 일생은 어떤 면에서는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이 될 수 있다. 무함마드는 실제 10명의 아내와 2명의 첩을 두었으며, 그 중에는 6살 소녀에게 청혼해 9살에 결혼하기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양자의 옛 아내와 결혼한 것 때문에 비판이 일어나자  양자의 아내가 이혼하면 양부와 결혼해도 무방하다는 알라의 계시를 전하기도 했다. 다소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여인에 대해 사랑을 멈출 수 없었던 무함마드의 재치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행적에 대해 역사적으로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비난했고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이를 핑계로 이슬람교를 종교로 인정하지 않았다. 2002년 6월 미국 근본주의의 기반인 남침례교의 제리 바인스 전 총회장은 "기독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만들어진 반면 이슬람교는 12명의 부인을 둔 귀신에 사로잡힌 무함마드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의 마지막 부인은 9세짜리 어린 소녀였다"고 주장하면서 반이슬람 정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바인스는 또 "이슬람교의 신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하나님과는 전혀 다르다. 알라는 여호와가 아니다. 여호와는 기독교인을 테러리스트로 만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바인스의 발언이 있은 직후 이슬람교는 물론 유대교 지도자들과 진보적 기독교 단체들이 즉각 해명을 요구하며 강력히 반발했지만 발언 직후 열린 남침례교 회에서 신임 총회장으로 선출된 텍사스 출신 잭 그레이엄도 "바인스 목사의 발언은 정확한 것이었다"며 바인스를 두둔했다.

 

무함마드가 다수의 여성과 결혼한 것은 오늘날 관점에서는 부도덕한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이해 가능한 일이었다. 일처다부제 사회의 관행도 있었고 아라비아 반도를 지배했던 현실 정치와 종교지도자로서 부족 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것은 한국사에서 고려 태조 왕건이 국가와 권력안정을 위해 여러 지방호족의 딸과 결혼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함마드는 비록 많은 여성과 결혼하기는 했지만 여성학대나 편애 금지 등을 통해 여성들의 지위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이에 비해 생전에 철저한 종교인으로서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둔 야인으로 살았고 죽어서는 완전무결한 신적 존재가 된 예수에게 인간적인 냄새를 찾기란 쉽지 않다. 물론 성서 일부에서 십자가에서 처형되기 전에 겟세마네에서 피땀을 흘리며 고뇌하는 모습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신이 되기 위한 과정을 묘사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영웅신화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예수와 관련해 그의 인간적 면모와 허물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자료들은 영지주의 복음서에서 발견된다. 마리아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에게 다른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지혜를 전하고 그녀와 연인 관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도마의 유년기 복음서는 예수의 어린 시절을 증언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어린 예수가 자신이 만든 물웅덩이의 물을 빼버린 아이를 나무처럼 말라붙게 하고 이 아이의 부모가 아버지인 요셉에게 항의하자 화풀이로 길에서 어깨를 부딪친 아이를 죽이기도 한다. 또 이 광경을 지켜보던 몇몇 아이들이 수군거리자 그들마저 소경으로 만들었다. 예수가 금욕적이고 완전한 존재라고 가르친 정통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불경스럽기 그지없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통기독교는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기적과 생애를 입문과 깨달음을 위한 상징과 은유가 아니라 사실인 것처럼 말하면서 예수를 문자 그대로 신화의 틀 속에 가두어 버렸다. 그나마 제우스나 아폴로 같은 그리스의 신들에게는 인간적인 냄새가 나지만 예수신화에서는 그마저도 생략해 버렸다. 문자주의자들은 예수 신화를 진실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대교는 물론 이슬람교를 이단으로 간주하면서 기독교를 유일한 계시 종교로 만들었다. 지배자의 종교가 된 기독교는 마녀사냥을 통해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수많은 영적 저술들을 소각해 버렸다. 이 같은 내용들은 티모시 프리크, 피터 캔디가 공동 저술한 '예수는 신화다'(미지북스)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인간존중과 다원화, 열린 종교를 강조하는 오늘날 여전히 예수의 신성성을 강조하는 것은 오히려 예수를 박제화된 존재, 금관의 예수로 만드는 것이다. 그가 완벽한 존재가 되면 될수록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없는 무능한 존재가 되고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가능성은 점점 낮아진다. 일상에서는 체제에 순응하게 되고 신앙적으로는 신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성직자들에게 의존하게 된다.

 

그에 비해 이슬람교는 성직자에 대한 의존도가 낮은 편이다. 무함마드는 신과 인간 사이에 어떠한 영적 매개체도 인정하지 않았다. 14세기 이후 이슬람교가 쇠락의 길에 접어들고 오늘날에는 이슬람 근본주의자, 세속 통치자들이 무함마드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지만 그가 걸었던 인간적인 삶은 일상의 소소한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보통 사람에게 교훈이 될 수 있다. 인간 내부에는 선과 악, 모순이 공존하고 믿음은 그 안에서 갈등하면서 성장한다. 21세기 종교는 관념(신화)이 아닌 현실에서 찾아야 하며 교리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그것이 신이 아닌 인간 예수와 무함마드가 가르친 교훈이다.


#이슬람 #무함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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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모.함석헌 선생을 기리는 씨알재단에서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씨알정신을 선양하고 시민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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