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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넘게 제대로 된 밥벌이-돈벌이도 하지 않는 불효자는 지난 일요일 저녁 나이드신 부모님이 다음날 고구마를 캔다는 말을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 밭에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일지 모르는 논일, 밭일에 신경쓰지 못한 죄스러움에 수확의 계절 가을 일손이라도 돕기 위해, 헌옷을 챙겨입고 작년 내내 어머니가 모아둔 종이박스를 수레에 싣고 윗밭으로 향했습니다.

 

올해 풍년도 한스러운 농심처럼 앙상한 철골만 남은 낡은 비닐하우스 사이사이에 심어놓은 고구마밭에는 아버지가 먼저 나와계셨습니다. 아버지는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인기좋은 고구마 줄기를 낫으로 한편으로 걷어내고, 고구마 이랑에 씌워두었던 비닐을 걷어냈습니다.

 

서둘러 집에서 가져온 종이박스를 만들어 놓고 고구마 캐기에 들어갔습니다. 종이박스는 캔 고구마를 담기 위한 것입니다. 박스에 담아 화장실 등 집안에 옮기지 않고 잘 놓아두면 겨울내 고구마가 썩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호미질을 하는거라서 손에 착착 감기지 않았지만, 역시 농군의 자식이라 그런지 금새 호미에 힘이 붙었고 놀란 지렁이, 굼벵이와도 반갑게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거추장스러워 목장갑을 끼지 않았더니 호미를 잡은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쥐도새도 모르게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쓰라림과 계속되는 삽질, 호미질에 허리가 아팠지만 평생 이렇게 밭일을 해온 부모님을 생각하면 사치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고구마를 캐는데 어머니는 "작년보다 고구마 캐기가 더 힘드네" 하시더군요.

 

작년에는 철쭉을 심어놓은 윗쪽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땅도 그렇고 고구마가 참 잘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땅은 좋은데 고구마가 한없이 땅속으로 길쭉하게 자라 곡괭이와 삽이 아니면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를 캐는 것이 여간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고스럽게 고구마 밭 고랑을 곡괭이로 파내야 했는데, 그 모습을 아침일을 나가는 동네이웃들은 보고 "아이고! 곡괭이로 고구마 캐는 사람 첨봤네!!" 하고 한마디씩 인사말을 건냈습니다. 마치 칡뿌리를 캐듯 고구마를 캔다고 말입니다.

 

그렇게 캔 고구마는 오가던 이웃주민들이 보고 사가곤 했는데, 호박고구마와 밤고구마를 각각 10KG과 20KG으로 나눠 상자에 가득 담아 팔았습니다. 허나 작년에는 캐는 족족 고구마를 사람들이 사갔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 어머니는 답답해 했습니다.

 

고구마도 벼농사도 풍년이라는데 농부들의 마음은 그렇게 편치만은 않은 것입니다. 화요일인 오늘도 못다 캔 고구마를 캐다 난데없이 쏟아진 비로 집에 돌아왔는데, 도깨비 같이 오후에 다시 날이 개자 부모님은 다시 고구마밭에 나가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구마, #가을, #부모님,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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