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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홈스 10주년을 축하하러 온 한국팀(수원영락교회 봉사팀, 이하 한국팀이라고 부르겠다)은 또 하나의 행사로 '마을 체육대회'를 준비해왔다. 우리가 주최측은 아니지만 4개 마을이 함께 하는 큰 행사에 손 놓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니라 한국팀을 찾아갔다.

"체육대회 때 저희가 도울 만한 게 있을까요?"
"음... 그날 아이들이 많이 몰려 올 것 같아요."
"한국에서 아트풍선을 준비해 왔어요. 그걸로 강아지나 칼을 만들어줄 수 있어요."
"페이스페인팅 물감과 매니큐어도 가지고 왔어요. 아, 비눗방울도 조금 가지고 왔구요."
"오, 좋아요. 그럼 우리는 어른들을 위한 게임을 준비해 볼게요."
 

비록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는 처음 본 어색한 사이였지만 '조이홈스를 위한 일'이라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함께 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조이비전스쿨 운동장에서는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고아원 아이들이 천막을 치고, 한국팀은 줄넘기나 돼지몰이, 계주, 축구 등 어른들을 위한 체육대회 준비를,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을 위한 좌판을 깔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이 부산스러움은 뭘까?' 하며 행사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찾아온 아이들이 하나, 둘 우리 곁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준비를 완전히 하기도 전에 우리는 아이들을 줄 세워야 했다. 아직 줄서고, 차례를 지키며 순서를 정하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에게 먼저 온 사람이 우선권이 주어진다는 것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너는 이 친구 뒤에 가서 줄 서."
"밀지 마, 얘들아!"
"go back one step!"

새치기하는 것이 당연하고, 새치기당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곳 아이들. 사소한 일이지만 '옳고 그름'을 이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교육 또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하루 종일 아이들을 줄 세우며 뼈저리게 느꼈다.
 

 
흭과 조은이는 페이스 페인팅을, 니콜은 매니큐어를, 그리고 까만땅콩은 풍선아트를 맡아 아이들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어주었다. 평소엔 그저 허허벌판에 학교 하나 고아원 하나 세워져 있고, 드문드문 집이 보였는데, 도대체 이 많은 아이들은 어디서 뿅, 하고 나타나는 것일까. 그날 아이들은 300명이 넘게 왔고, 끝없이 줄을 섰으며 오전 9시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아이들 얼굴에 손에 그림을 그려 넣고 풍선을 만들었지만, 결국 아이들 모두에게 이 혜택이 돌아가진 못했다.
 

까만 아이들에게 진한 원색과 강렬한 형광색은 참 잘 어울렸다. 우리는 작은 일이지만 감사의 인사를 하는 법을 가르쳐줬고, 아이들이 수줍게 "아싼떼(고마워)" 하면 "까리부 싸나(천만에)"로 답해주었다.
 
우리가 아이들을 맡아 정신없이 일하는 동안, 운동장에서는 하하호호 깔깔하며 웃음소리가 멈추질 않았다. 워낙에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프리칸들은 긴 팔다리를 이용해 줄넘기도 폴짝폴짝, 계주도 껑충껑충 물 만난 물고기처럼 신나게 대회를 즐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 아프리카인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 축구! 나무 기둥으로 세워진,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골대에 그야말로 허허벌판인 운동장에 공 하나만 있으면 지치지 않고 달리는 검은 사람들. 예선전부터 준준결승, 준결승까지 사람들은 아무도 가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경기에 집중했다.
 

 
드디어 결승전!

그러나 아뿔싸,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흔한 가로등 불빛도 없는 데다 가뜩이나 피부가 검어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결국 결승전은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곳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약속을 해놓고도 일이 생기면 지키지 않는다. 내일 와달라고 하면 알겠다고 해놓고서는 일주일 뒤에 어슬렁어슬렁 오기도 한다. 왜 그날 안왔냐고 화를 내면, 되려 왜 화가 났느냐고 반문하며 그때는 자기가 다른 일이 있었다고 느릿느릿 말한다. 가장 중요한 축구결승전은 다음 주 토요일로 정해졌지만, 그날 운동장은 텅 비어 있었다.
 
결국 축구 결승전을 못한 이유로 네 마을의 1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한국팀에서 준비한 상품들은 공평하게 나눠 가졌다. 품에 가득 선물을 안고 돌아가는 그들의 입가에는 오늘 하루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처음 이곳에 올 때 우리가 정했던 목표가 생각났다.
 
"우리가 그곳에서 큰일을 하고자 하는 게 아니잖아. 우리 그곳에 가서 거창한 목표 잡지 말고, 그냥… 그 사람들이 평생 웃을 시간이 우리로 인해 10분 더 연장되길 원하는 마음. 그것 하나면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 하루, 체육대회로 인해, 아이들의 얼굴에 그려진 사자며 코끼리로 인해, 그리고 품에 안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선물로 인해 웃었던 그 웃음은,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우리에게 더없는 큰 선물이었다. 마치, 뭐랄까, 물이 가득 든 유리컵이 햇빛을 받아 동그랗게 무지개가 걸린 느낌? 그래서 그 무지개가 담긴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느낌이랄까.

글. 니콜키드박(http://askdream.com)
사진. 니콜 외 여러 명

덧붙이는 글 | 2009년 7월~9월까지 아프리카 케냐 봉사활동 여행기입니다. 나의 세 번째 대륙은 나만 즐거운 여행이 아닌, 남도 즐거운 여행이 되고파 여러 가지 재미있는 놀이거리와 함께 아프리카에 다녀왔습니다.


태그:#아프리카, #여행기, #박진희박, #박진희, #니콜키드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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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담도 순식간에 뒤집어 즐겁게 살 줄 아는 인생의 위트는 혹시 있으면 괜찮은 장식이 아니라 패배하지 않는 힘의 본질이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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