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3일)은 '아시아의 친구들'에서 자원활동가로 일한 이후 처음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매주 두 번 대화동 사무실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한국어 공부를 하던 나였지만 오늘만큼은 '아시아의 친구들'의 이름을 걸고 화성 외국인 보호소에 다녀온 것이다. 사무국장인 대권씨와 함께 였다.
지난 10월 9일 오전 10시 30분, 한 네팔인이 미등록 외국인으로 단속반에게 붙잡혔다는 기사를 접했다. 1992년 관광비자로 한국에 온 그는 노동자, 다국적 밴드인 '스탑크랙다운'의 보컬, 다문화 강사, 문화운동가, 그리고 이주노동자 방송 MWTV의 공동대표 등 다양한 경력과 이력의 소유자였다.
38세의 미노드 목탄(Minod Moktan), 그는 스물 하나에 한국 땅을 밟은 이후 한번도 네팔에 가지 못했다. 심지어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조차도. 18년을 한국에서 한국인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대권씨와 면회신청을 하고 5번 면회실에 가서 앉았다. 곧이어 파란 트레이닝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활짝 웃으면서 면회실 안으로 들어왔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낯설지 않았다.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었다. 한국 사람과 달라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그를 보고 적잖이 놀랐다.
-미누씨,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나요?
"네, 마음은 많이 안정됐구요. 이번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못 만났던 분들이 다 왔더라구요. 한사람 한사람 차분하게 만나고 있어요. 저는 스물 한 살에 한국 와서 벌써 서른 여덟 살이네요. 마흔을 바라보고 있어요. 내 인생을 다 바친거잖아요. 한국 사회의 한 사람인 나에 대해서 한국 정부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동안 이주민의 희망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에게 활력소가 되고 싶었고, 희망과 웃음을 주고 싶었어요. 지금 저는 앞길이 막막하고 이런 식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답답하고 죽을 것만 같죠, 사실은."
밝게 웃으며 말하던 미누씨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앞으로 조용히 한국을 떠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저 자신이 힘들 거예요. 제가 한국을 떠난다고 끝은 아니지만 그렇게 된다면 제게는 죽음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어요. 여기 보호소 들어 오기 전에 진주 MBC에서 다큐를 찍고 있었어요. 12월 28일 이주민의 날에 방송될 예정이었는데… 영남지역의 이주노동자 센터와 다문화 가정을 방문하고 어시장의 활발한 활동을 둘러보기도 했어요. 5일장과 농촌지역 다문화가정,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는 공장도 방문했어요. 촬영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잡혔어요. 그래서 방송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미누씨는 이주노동자들을 위로하고 희망과 웃음을 선물한 전도사예요.
"힘들지만 넉넉하고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영향을 주기 위해 애썼는데… 조용필의 노래에 '웃고 있지만 눈물이 난다' 이런 가사가 있잖아요. 내 삶이 힘들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거죠.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했어요. 비자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하고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동안 저 자신의 안전에 대해 한번도 생각을 못했어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내 이익을 지키기 위해 뭔가를 했다면 제대로 활동도 못했을 것에요. 지금은 여기서 쉬고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싶어요.
-시간싸움이에요. 강제 출국이 걱정이 되는군요. 변호사가 이의신청을 했지만 아직 답변이 없는 상태예요. 여러 단체들이 성명을 내고 탄원서를 쓰고 있어요. 그리고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고 문화계 인사들과 연계하고 해외에도 알리도록 할거에요. 이주노조가 농성을 할 때 있잖아요. 송년의 밤이 기억나네요. 경복궁 노인복지회관에서요. 이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기죽지 말고 당당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국의 언론들은 이주민들의 불쌍한 모습만 부각시켰잖아요. 그런데 미누씨는 이주민들의 밝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저는 우리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람들과 같이 당당하고 동등한 친구로 지냈으면 좋겠어요. 나도 술 한 잔 사주면서 진정한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 아닌가요? 이런 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한 사람 한사람의 노력이 필요해요. 늘 받는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도울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면 좋겠어요."
-인터넷에 미누씨 카페가 생겼어요. 그런데 하루만에 200명 가까이 가입을 했대요.
"대단하네요. 저를 좋게 봐주고. 난 혼자가 아니구나, 헛 살지 않았구나 싶어요. 생각해보면 세상은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지금 저는 자신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여기서 미누씨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 할 거같아요. 미누씨, 가장 좋아하고 즐겨 부르는 한국 노래가 있나요?
"'사노라면'이에요. 평소에도 불렀고 공연할 때도 자주 불렀어요. 그리고 우리 밴드의 2집에 나오는 '자유'라는 노래가 있어요. 제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인데 아직 한번도 공연에서 불러보지 못했어요."
-그래요? 그럼 다음 면회 왔을 때 불러주세요.
소주, 그중에서도 참이슬을 좋아한다는 미누, 그는 영락없는 한국인이었다. 철들고 난 후의 인생의 절반을 한국에서 살아온 그. 경제적인 여건이 그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만들었지만 새로운 땅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그였다. 그는 피부색이나 언어로 사람을 가르지 않고, 서로 소통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노래를 불렀을 뿐이다. 그와 소주잔을 기울이며 그의 꿈에 대해 얘기하고, 다시 '자유'를 비롯한 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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